망고

세히 :: 2017. 2. 17. 02:49

망고 by.은화

카백

 

 

 

형이 결혼해 집을 나갔다. 아 이렇게 말하니까 조금 이상하게 들리네. 정정하겠다. 형이 형수와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고 모든 짐을 싸서 같이 살던 오피스텔을 떠났다. 일부로 남자 두명이 산다기에 큰 오피스텔로 계약을 해주었던 부모님의 의견이 헛수고가 되는 순간이였다. 그래도 괜찮다. 난 좀 쓸쓸해지고 밥도 혼자먹고 청소도 내가 다 해야되고 개콘도 나혼자 보고 축구도 나혼자보고 해야되지만 형이 행복하다면 괜찮다. 정말이다.

 

 

 

 

왜 결혼식을 겨울에 하는건가. 원래 결혼의 달은 3월달이라 했는데 형과 형수는 이상하게도 3월달에 결혼식을 올렸다. 후에 물어보니 닭살스럽게도 3월이 형수가 태어난 달이라서 그렇단다. 허....아무튼 결혼식장에선 난 날씨가 너무 추워 눈물이 찔끔 나왔다. 절대 형이 날버리고 형수를 택했다는 애같은 마음에 눈물을 보인게 아니다. 결혼식장은 너무나도 추웠다. 눈물이 나올만큼.

 

 

 

 

빨개진 손으로 짐을 가지고 떠나가는 형과 형수에게 크게 인사를 해줬다. 엄마와 아빠는 바쁘다는 이유로 이제 나혼자살게될 오피스텔에는 들리지도 않고 떠나갔다. 나빴어. 섭섭한 마음에 입이 뎃발 나온채로 소파로 가서 엎어졌다. 형이 이렇게 소파에 누워있지말랬는데…. 잔소리하는 형은 없지만 소파에서 일어나 자세를 똑바로 하고 앉았다. 조용하다. 박찬열이라도 부를까싶은 마음에 핸드폰을 들었지만 그냥 던졌다. 어차피 내일이 개학인데.

 

 

 

 

"아 조용한거 싫어..."

 

 

 

 

잠이나 잘까. 아직 하늘은 노란빛을 띄고있었지만 기어가다시피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또 침울해졌다. 2개의 침대가 꽉 차있었던 침실엔 1개의 침대가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침대에 철퍽 누우니 새 이불과 베개냄새가 훅 끼쳐왔다. 형수가 바꿔준것이였다. 그러고보니 형수의 배려때문에 오피스텔에 대부분이 바뀌어있었다. 날 아에 혼자로 만들어버리는구나. 그리운 형냄새조차 나지않았다.

 

 

 

 

 

-

 

 

 

 

 

6:00

 

6시정각에 일어나는건 형과 같이 살면서 가지게된 버릇이였다. 회사는 가까웠지만 워낙에 반듯한 형이라 항상 6시에 일어나 준비했었다. 자연스럽게 몸을 침대밖으로 이끌고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 계란 두개를 꺼내려다가 멈칫했다. 아...한개지. 깨질까 조심조심 한개를 냅두고 한개만 꺼냈다. 그러고보니 이 곳에 이사오고 처음으로 혼자먹는 아침밥이였다. 부지런한 형제는 아침밥을 거른적이 없었으니까.

 

 

 

 

밥을 먹고 씻고 나오니 시간은 7시를 가르키고있었다. 널널하다. 머리는 대충 수건으로 턴다음 교복을 입었다. 음 멋지다. 적당히 줄인 바지와 살짝 헐렁한 와이셔츠를 입고선 전신거울을 보고 만족했다. 내가 키는 좀 작지만 허벅지와 어깨는 꽤나 남자답지 고럼고럼. 키가 180인 형도 내 어깨랑 허벅지는 탐난다고 얼마나 칭찬했었는데.

 

 

 

 

설거지를 하고 넥타이를 맨다음 다시한번 머리정리와 옷정리를 하고나니 정확히 7시 30분이 되었다. 아 완벽해 완벽해! 칼같은 시간에 싱글벙글 웃으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동시에 옆집문도 열렸다. 아, 시간개념이 철저한건 이 오피스텔에 나뿐만이 아니였다. 옆집. 뭐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1년 반...?전에 이사온 한 남자였다.

 

 

 

 

진짜 웃긴게 저사람과 나는 한번도 아침에 안만난적이 없는데 말한번 아니 인사한번 해본적이 없었다. 원래 살던 사람하고는 가끔씩 만날때마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정도의 인사는 나눴는데. 언제는 한번 말을 걸려고 살짝 눈을 돌려 그사람을 쳐다봤는데 존나 무섭게 날 쳐다보길래 바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키도 180이 넘는게 피부도 까무잡잡하고 덩치도 있고..., 내 예상 아마 무서운 일을 하는 사람일것이다. 조금 오버를 더한다면 정말 눈깜짝안하고 사람처리하고 그럴것같이 생겼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1층과 지하 1층이 같이 눌러졌다. 형은 옆집남자를 이야기할때 형또래처럼 보이는데 차도있고 대단한것같다고 말했었다. 하긴 지하1층으로 매번 간다는 소리는 차가 있다는 소리겠지. 새삼 나도 나중에 저런 어른이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물론 조폭을 말하는게 아니라 돈을 말하는거다.

 

 

 

어색함과 함께 닫힌 엘리베이터문이 한층 내려가자마자 다시 열렸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도경수쌤. 선생이 된지 얼마안된 새내기 국어쌤이였다. 안녕하세요. 내 인사에 헐레벌떡 자켓을 입던 도쌤이 입을 하트모양으로 만들고 웃었다. 오 우리 백현이! 도쌤이 아직 쌤이 아니라 형일때부터 알아서 그런지 도쌤은 학교가 아니면 날 학생보단 동네동생으로 대해줬다.

 

 

 

도쌤하고는 가끔씩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이였다. 원채 사람이 느긋한 성격이라 지각을 많이해서 빨리 등교하는편인 나하곤 잘 안마주쳤다. 근데 가끔씩 마주치는 오늘같은 날이면 도쌤은 날 향해 웃어주다가 옆에있는 남자를 보고 더욱 얼굴에 화색을 띄었다. 뭐야… 처음엔 아는사인줄 알고 호기심있게 지켜봤지만 둘은 인사한번 하지않았다. 그저 눈빛만 주고받았다. 그 눈빛속에서 나는 백퍼 둘이 아는사이라는걸 눈치챘지만 딱히 둘이 말도없고 그러니 물어볼수도 없었다. 아나 젠장...답답하다.

 

 

 

1층에 딱 도착하고 어김없이 내리는 사람은 나혼자뿐이였다. 도쌤도 차가 있는 걸까. 선생된지도 별로 안됬는데 차가 있을정도로 선생이 돈을 잘버는 직업인가 생각했지만 도쌤의 학교에서 보자는 밝은 인사에 다시한번 고개를 숙이고 그냥 나왔다. 집이 잘사나보지 뭐. 가방을 고쳐매고 밖으로 나오니 벤치에 반가운 얼굴이 앉아있었다.

 

 

 

"변백현!!"

"어 왠일로 먼저 와서 기다리고있대?"

 

 

 

 

박찬열. 잠많은 도비가 왠일로 날 기다리고있는건지. 항상 기다리는건 내 몫이였는데

 

 

 

 

"오늘 개학식이잖아. 누구랑 같은반일지 두근거려서 잠을 설쳤다"

"나랑 같은반된게 그렇게 설랬어?"

"꺼져"

 

 

 

 

여자말하는거잖아 여자. 박찬열의 말에 나는 웃으며 박찬열의 옆구리를 찔렀다. 야 이관데 여자가 많겠냐? 내 말에 박찬열은 모르는 소리하지말라며 요즘 이과가 얼마나 좋고부터 시작해 이과에 대한 예찬론을 시작했다. 아 그래그래. 결론은 여자가 많을거라는거잖아. 내말에 박찬열은 그렇지 그렇지 거리며 내 어깨에 팔을 얹었다. 무겁다. 박찬열은 안그래도 키가 커서 내게 팔을 올리며 기대오면 정말 찌부되서 죽을것같다.

 

 

 

 

"야 팔치워. 장담컨대 내 키의 원인엔 너가 90%일거야"

"아냐 너의 운명이 100%인거지"

"꺼져 10%는 유전자야"

"헐 양심없냐...백훈이형 키 180이잖아"

 

 

 

 

썅! 그나마 있는 내 키의 핑계거리에 시비를 거는 박찬열의 정강이를 발로 까줬다. 아 시발놈아 아파! 박찬열이 정강이를 부여잡고 나를 째려봤다. 뭐뭐 어쩔껀데? 최대한 얄밉게 웃어준다음 정문까지 뛰어갔다. 야 존나 죽었어! 박찬열이 긴다리로 뛰어오는걸보고 더욱 빨리 달렸다. 야 내가 이래뵈도 발빠르다고 소문난놈이야. 낄낄웃으며 교문에 서있는 학생부친구들에게 대충 인사를 해주곤 달렸다.

 

 

 

 

그리고 나는 교실에 헤드락당한 상태로 올라와야했다. 하나님 나빠요. 나한테 몇개없는 자랑거리가 달리기인데 다리가 길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잡히다니. 박찬열은 자기가 달리기를 잘하는거라 했지만 내가 보기엔 120% 다리덕이다. 넌 달리기에 기술이 없어. 그 말을 했다가 박찬열에게 목이 좀더 심하게 졸렸다.

 

 

 

 

 

교실창가쪽에 박찬열과 나란히 앉아있으니 어색한 얼굴을 잔뜩 품은 아이들이 하나둘씩 반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정말 박찬열 예상대로 여자애들도 꽤 많이 자리잡고있었다. 방금 카톡한 종대는 남자밭이라면서 욕문자를 잔뜩 보내왔었는데. 그러길래 너도 생물-화학반 선택하지. 남자면 물리 라는 말도 안되는 선입견때문에 물리반가더니 꼴좋다. 낄낄웃으며 비웃는 카톡을 잔뜩 날려줬다.

 

 

 

 

"야 근데 박찬열"

"왜"

"우리 담임 누군지 알아?"

"어 얼굴은 모르는데 뭐담당인줄은 알아"

"뭔데"

"수학"

 

 

 

 

어이구야. 갑자기 뒷골이 쫙 당기는 느낌이였다. 수하아아악? 담임이 수학이라고? 세상에나....

 

 

 

 

 

수학은 내 성적표에 유일한 수치였다. 1등급과 2등급 사이에서 강렬하게 빛을 내고있는 그 이름이야 말로 5등급. 수학을 공부안하는것도 아닌데 수학은 항상 제자리였다. 한때는 학원강사에게 홀려 학원도 다녀보고 인강도 들어보고 했지만 수학은 정말 지조가 쩔게도 움직이지않았다. 수학은 5등급과 사랑에 빠진게 분명하다.

 

 

 

 

"이제 좆되셨네요 변백현씨. 그러게 왜 이과를 오셨어요"

"남자는 자고로 이과지..."

"...넌 김종대를 욕할 처지가 아니다"

 

 

 

 

박찬열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하던 스마트폰게임에 다시 집중했다. 아 그래도 너잘나셨어요 흥선대원군씨. 내 말에 박찬열이 핸드폰을 던지고 확 째려봤다. 미친놈아 그따위로 부르지말라고. 하지만 나는 그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더 놀렸다.

 

 

 

"애국심이 너무 충실해서 영어등급만 6등급인 박찬열씨~"

"시발 닥쳐"

"흥선대원군의 환생이시죠"

 

 

 

수학좆밥이! 박찬열이 다시한번 헤드락을 걸어왔다. 아 존나 아파 시키야. 박찬열의 팔안에서 벗어나려고 안달을 부리고있을때 종이 딱 쳤다. 그제서야 날 놓아준 박찬열을 미친듯이 째려보며 헝크러진 머리를 정리했다. 아 새끼... 힘만 드럽게 쎄다. 괜히 박찬열의 팔뚝을 퍽퍽치며 시선은 문에 두었다. 담임이 누굴까. 여자일까 남자일까. 뭐 여자면 수학이라해도 조금정도는 용서해줄수있을것같은데.

 

 

 

 

한참을 뚫어지게 문을 보고있자 드르륵하고 앞문이 열렸다. 헐 왔나보다! 눈을 땡그랗게 뜨고 기대에 찬 마음에 쳐다보니 여자가 맞았다. 그래 여자는 맞았는데 그게...

 

 

 

 

"변백현! 박찬열!"

 

 

 

 

왜 정수정이냔 말이지. 옆에서 박찬열도 시발이라며 욕을 읊조렸다. 자기는 신세대여성이니 이과를 갈거라며 하긴했었는데 같은 반이 될지는 몰랐다. 정수정은 우리의 심정을 아는지모르는지 신난 표정으로 다가와 우리 앞에 털썩 자리를 잡았다.

 

 

 

 

"미친 아는 사람없을까봐 개 쫄았었잖아"

"개쫄았던애가 이렇게 당당하게 지각을하냐?"

"뭐 어때서?"

 

 

 

환히 열어놓은 앞문도 안닫고. 니눈엔 저기 문옆에서 널 죽일듯이 째려보는 애들의 얼굴이 안보이니. 문옆에 앉는게 얼마나 빡친건데 넌 그 빡침에 기름을 드리부운거야.

 

 

 

 

정수정의 등장에 정신없이 이야기하느라 문에 고정시켰던 시선을 거둘수밖에 없었다. 박찬열과 정수정은 만나기만하면 겁나게 싸운다. 옆에서 지켜보는건 매우 재밌지만 가끔씩 날아오는 불똥에는 빡치기도 한다. 지금 딱 그상태. 둘이 겁나 싸우더니 화제는 나로 넘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어제 형을 떠나보낸 나에게.

 

 

 

 

"우리 브라콤...형없어서 어떡하냐"

"맞아....백훈이 오빠는 갈때 오빠인형한개라도 만들어줄것이지"

"닥쳐"

"백현이는 이제 잠을 잘때마다 눈물을 흩뿌리고"

"외로움에 형을 울부짖고"

"시발것들이 진짜..."

 

 

 

 

저 개놈들을 어제 형 결혼식에 부르는게 아니였다. 썅. 난 정말 추워서 운거였는데 오해하잖아. 계속 놀려대는 정수정과 박찬열을 한대씩 때릴까 진지하게 고민하고있을때 다시한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민에 빠져있어 고개도 들지않은 상태로 계속 있자 박찬열이 툭툭 쳤다. 야 선생님왔어. 그 말에 고개를 들어 교탁을 쳐다봤다.

 

 

 

 

 

"반갑다"

 

 

 

 

 

 

 

 

"1년동안 너희 담임을 맡게됬다. 과목은 수학이고 이름은..."

 

 

 

 

저기 교탁앞에 서있는 남자는 분명

 

 

 

 

 

"김종인. 1년동안 잘 지내보자"

 

 

 

 

 

우리 옆집사는 조폭-이라 예상되는- 그 남자다.

 

 

02

 

 

 

 

 

 

 

너무 놀래 입이 안다물어질 지경이였다. 허...조폭이 아니라 선생이였어?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우리학교 선생인데 1년이 넘는 기간동안 모를수있었지? 멍을 때리고 있으니 뭔가 앞뒤가 짝짝 맞는 느낌이였다. 나와 같은 시간대에 계속 나온것도 매번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것도 도쌤이 왜 얼굴이 밝아졌는지도.

 

 

 

 

김종인이라 자신을 소개한 담임쌤은 출석을 부르겠다며 출석부를 집어들었다. 1번 강한수 2번…

 

 

 

 

 

"....10번 변백현"

"..."

"뭐야 변백현 없어?"

"아..아뇨!! 여기요!"

 

 

 

 

출석번호 10번을 부르기도 전에 이미 날 바라보고있는 담임에 놀래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렇게 대놓고 날 쳐다보면서 변백현없냐고 묻는건 또 뭐야. 아니 그것보다 내 이름 알고있었어? 별의별 잡생각이 머리속으로 흘러들어왔지만 일단 마주친 눈을 피하지않고 고개를 살짝 꾸벅였다. 이건 옆집사는 이웃으로서의 인사였다. 내 인사를 받은 옆집남자..아니 담임은 살짝 입고리를 당겨 웃은다음 다음 번호를 불렀다. 11번 박찬열.

 

 

 

 

"네"

"...야 박찬열 대박"

"뭐가?"

"담임있잖아"

"어"

"우리 옆집살아"

 

 

 

 

미친 대박 소름돋지않냐? 나 1년만에 알았어. 내 말에 박찬열은 가만히 날 보다가 푸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담임이 쳐다보자 내가 급히 입을 막긴했지만 박찬열은 눈물까지 그렁그렁 달고있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

 

 

 

 

"벼엉신 그것도 몰랐냐?"

"니는 꼭 알았던 사람처럼 말한다?"

"당연히 알았지 븅아. 니네집 놀러갔을때도 몇번 마주쳐서 인사드렸었는데"

 

 

 

 

헐?!! 눈이 도쌤만큼 동그랗게 커졌다. 박찬열하고는 1학년때도 같은 반이여서 박찬열이 아는 선생님을 내가 모를리가 없는데. 아니 그것보다 내가 교무실을 몇번을 들낙달락 거렸었는데 담임은 머리카락한올도 본적이 없었다. 그저 타이밍차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소름돋게 몰랐다.

 

 

 

"담임쌤 우리 가르친적없잖아. 내가 까먹은거야? 나 돌대가리인거야?"

"눈치없는것만 따지면 돌대가리 맞는듯"

"아 닥치고 내가 묻는말에 답이나해"

"아 그때 언제야...니가 백훈이형이랑 데이트간다고 존나 들떠서 보충쨌을때"

 

 

 

그게 언제지...한참을 고민하다가 딱 떠올랐다. 데이트인줄 알았는데 형수랑 같이 등장했던 그날! 충격의 도가니탕이였던 그날! 근데 그날이 뭐 어쨌다는건지

 

 

 

"그때 보충쌤 아파서 안오셔가지고 담임이 땜빵했었어"

"헐...."

"그 한번밖에 없었으니까 닌 못볼만하다. 그래도 야...항상 같이 등교하고 그랬을텐데 눈치못챈건 너무하지않냐?"

 

 

 

 

한번도 본적이 없으면 모를수도 있지. 근데 어떻게 복도를 지나다니면서도 본적이 없을까. 소름돋게

 

 

 

 

손으로 팔을 감싼채 소름돋는다며 부들부들떨고 박찬열이 그옆에서 비웃어주고 있을때 담임은 출석을 다 부른건지 소리나게 교탁에 출석부를 놓고선 애들의 주위를 집중시켰다.

 

 

 

 

"첫 날이니까 질문받는다. 물어봐"

 

 

 

 

 

정말로 진심으로 손을 번쩍 들어 묻고싶은게 많았다. 여기서 나만큼 담임한테 궁금한거 투성이일 사람이 있을까 싶을정도로. 하지만 오히려 그런 마음에 손이 올라가지않았다. 쌩판모르는 선생님이거나 아에 친한 선생님이면 장난스레 나이가 몇이냐 여자친구는 있냐를 물을수 있게지만 방금전까지 그냥 얼굴만 아는 이웃이였던 선생님이라 그런지 못물어보겠다. 으허...혼자 내적갈등을 무수히 하고있을때쯤 갑자기 앞에있던 정수정이 손을 번쩍 들어 물었다.

 

 

 

 

"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음, 몇살처럼 보이는데?"

"어....26...? 막 선생님된거같아요!"

 

 

 

 

26살이라는 말에 입꼬리를 당겨 환하게 웃은 선생님이 둘다 틀렸다고 대답했다.

 

 

 

 

"나이는 28"

"오...젊네"

 

 

 

 

형이랑 동갑이다.

 

 

 

 

 

"선생된지는 올해로 4년째"

"헐 대박 어떻게요?"

"일단 군대를 안갔고...임용고시 한방에 패스했고"

"대박..."

 

 

 

 

나포함 모든 애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28밖에 안됐는데 4년이라고? 애들의 수군거림이 점점 커지자 다시한번 교탁을 탁탁 치며 담임은 애들의 주위를 집중시켰다. 더 질문없어? 또 한번에 물음에 이번엔 여기저기서 질문이 날라왔다.

 

 

 

 

"군대 왜 안가셨어요?"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셔서. 형이 대신 갔지"

"저 쌤 한번도 본적없는데 올해 오신거에요?"

"아니, 여기 너네보다 오래있었는데....작년같은 경우에는 3학년 담당해서 못본걸꺼야"

"몇년있으셨는데요?"

"내 모교가 여기라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지"

 

 

 

 

오, 담임이 여기가 모교였구나... 나는 애들 질문 하나하나에 성실히 답해주고있는 담임을 좀더 주의깊게 봤다. 내가 상상했던거랑은 좀 많이 다른 모습이였다. 계속해서 얼굴에 미소를 담고있고 말투도 약간 장난기가 있다. 마치 작년 담임선생님이였던 준면쌤하고는 정반대같았다. 준면쌤은 항상 세상에 지쳐있는것같았는데..., 새삼 준면쌤이 생각나면서 킥킥대고 있는데 옆에 박찬열이 손을 번쩍 드는게 느껴졌다.

 

 

 

 

"쌤!"

"어 왜"

"그러면 첫사랑도 이학교학생이였어요?"

 

 

 

박찬열의 물음에 오오~하는 궁금함이 잔뜩 묻어있는 호응이 들려왔다. 찬열의 말에 담임은 마치 물어볼줄았다는듯이 피식 웃었다. 그 반응에 애들은 더욱 소리를 높였고 눈을 똘망똘망하게 떴다. 그래 이나이때는 어른의 사랑이 궁금한 법이지...꽤나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눈을 같이 똘망똘망히 떴다. 나도 이나이때니 궁금하다.

 

 

 

 

"어 이 학교였지"

"대박! 이뻤어요?"

"세상에서 걔보다 이쁜애는 없을걸"

"헐 대박 완전 소오름!! 지금도 연락해요?"

 

 

 

 

첫사랑이란게 그런걸까. 아까와는 뭔가 다른 미소를 입가에 담은채 담임이 답했다. 그리고 이어오는 연락해요?라는 물음에 담임은 언제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냐는듯 잠시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다가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 중국으로 다시 갔거든"

"중국이요??왜요?"

"중국교환학생이였거든. 중국인이였어"

"와 대박 국경을 초월하셨네"

 

 

 

 

박찬열의 말에 애들뿐만아니라 선생님까지 웃음이 터졌다. 그래 그랬었지. 선생님의 대답이 끝나자 이번엔 정수정이 손을 번쩍 들어 물어봤다.

 

 

 

 

"지금 여자친구 있으세요?"

 

 

 

 

그리고 그 말에 선생님은 대답도 하지않고 손을 들어올렸다. 왼쪽 네번째손가락에서 빛나고있는거는 누가봐도 커플링이였다. 와아! 애들은 닭살돋는다며 뒤집어졌고 나는 그 반지를 뚫어져라쳐다봤다. 여자가 드나드는걸 본적이 없는데? 잠시 의구심을 품다가 대충 접었다. 옆집남자가 선생인것도 눈치못챘는데 내가 저런걸 어떻게 눈치채겠어....

 

 

 

 

질문을 하고 답을 하고 하다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 1교시를 끝냈다. 고2니깐 개학식이래도 정상수업인거알지? 담임의 말에 애들은 야유를 보냈다.

 

 

 

 

"수업이래봤자 그냥 다 OT일거야. 자리는 마지막에 정할테니까 오늘만 이렇게 앉아"

"네에.."

 

 

 

 

담임이 앞문으로 나가자 몇명의 애들은 책상에 엎어졌고 몇명은 교실밖으로 나갔다. 박찬열은 스마트폰파였다. 미친새끼 저놈은 백퍼 중독이다. 나는 괜히 옆에서 박찬열핸드폰의 액정을 보다가 그만두고 밖을 쳐다봤다. 내가 그럼 이제까지 학교쌤을 보고도 쌩을 까도 다녔던거구나....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분명 자기학교 교복을 입고있는데...으아아아!! 내 1년간의 만행이 떠오르자 머리를 감싸지고 책상에 엎어지는 수 밖에 없었다. 하필 담임이 될건 또 뭐람.

 

 

 

 

 

"야 똥백,박찬!"

"...뭐야 왜 왔어"

"뭘 당연한걸 물어"

 

 

 

당연히 너보러 왔지이~ 특유의 늘어진 어투로 말하며 달라붙은 김종대를 거칠게 떼어냈다. 약먹었나.

 

 

 

 

"우리 똥백 왜이렇게 울상이야. 너네반은 남탕도 아닌것같은데 시발"

"차라리 남탕인게 나아....썅...진짜로...."

"뭐야 얘 왜이래 박찬열?"

"아핳핳. 야 김종대 너도 그거 알지 변백현 옆집에 선생사는거"

"어 당연하지. 우리 보충때 들어왔던 쌤이잖아"

"그걸 변백현은 1년동안이나 몰랐단다. 오늘 처음알았데. 근데 그 쌤 우리담임 설명 끝"

 

 

 

 

미친 너 완전 넌씨눈이구나. 뭔데. 넌씨눈이 뭐야? 머리를 쥐어짜던걸 잠시 그만두고 김종대에게 물으니 이것도 모르냐고 김종대가 비웃었다. 아 그니까 뭔데

 

 

 

"넌 씨발 눈치도 없냐"

"...개놈아 눈치도 없으니까 알려달라고 넌씨눈이 뭔데"

"넌 씨발 눈치도 없냐!"

"없다고 개새끼야!!"

 

 

 

내가 화를 내자 게임을 하던 박찬열도 김종대도 크게 웃으며 뒤집어졌다. 내 말에 웃긴요소가 있었나? 내가 작정하고 드립을 칠때는 잘만 정색하는 놈들이 왜이러는건지. 당황스러운 마음에 김종대의 멱살을 잡았다. 나 놀리는거지?!! 동네바보도 자기 놀리는건 찰떡같이 알아듣는데!!

 

 

 

 

"진짜 변백현은 최고의 병신이야"

"아 다 죽어버려"

"넌씨눈 뜻이 넌 씨발 눈치도 없냐의 줄임말이야 이 넌씨눈아"

 

 

 

 

아....순간 망치로 머리를 뎅-친 기분이였다. 그...그렇구나...난 정말 넌씨눈이구나. 내 눈치를 인정하게되는 순간이였다.

 

 

 

 

-

 

 

 

 

그래도 양심이 있는지 단축수업을 한 학교를 마치고 양옆에 김종대와 박찬열을 끼고 분식집으로 향했다. 정수정에게도 갈거냐고 제안을 했지만 쿨하게 새로사귄 친구와 쇼핑을 가야한다며 우릴 버렸다. 망할계집애 처음에는 아는애없다고 우리에게 오더니 가차없이 버린다. 나와 박찬열은 긴머리를 찰랑거리며 떠나는 정수정년의 뒷통수에 대고 엿을 날려줬다.

 

 

 

"이제 어쩌지"

 

 

사랑스러운 떡순튀가 등장하고 김종대와 박찬열이 개걸스럽게 먹어치우기시작할때 말을 꺼냈다. 야 나 어떡해. 그리고 내 진지한 물음에 둘은 먹고 이야기하자며 정색을 했다. 시파새끼들. 숟가락을 들어 둘의 머리를 내려치자 그제서야 나야 눈을 맞추는 둘에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 담임한테 존나 찍혔을꺼야...여태껏 인사한번해본적없어"

"나한테도 찍히고싶냐"

"그냥 좀 먹고 말하면안돼?"

"담임하고는 잘지내야된다고 형이 그랬는데....자고로 담임하고는 잘지내서 밑지는게 없다고했다고"

"....시발 이 브라콤을 어쩌냐 진짜"

 

 

떡순튀에 포크를 들이밀때마다 탁탁 쳐대니 빡쳤는지 박찬열이 던지듯 포크를 식탁위에 올려났다. 김종대가 그 삐쭉올라간 입꼬리를 꾹 내리고 날 째려봤다. 그래 차라리 빨리 이 사태를 해결보자 시발. 박찬열이 얼굴을 한번 쓸고는 입을 열었다.

 

 

 

"담임이 너한테 안좋은 마음을 가지고있다는걸 어떻게 확신해?"

"야 너라면 학교학생애가 1년내내 쌩을 까는데 기분이 좋겠냐 드럽겠냐"

"그냥 그럴거같은데"

"나 도쌤한테는 꼬박꼬박 인사했어"

"....백퍼 찍혔네"

 

 

가만히 듣고있던 김종대가 깔끔하게 정리를 내렸다. 너 1년간 좆됐다. 그 말에 머리를 감싸쥐었다. 내가 인사안하고싶어서 안했냐고오...생긴것도 겁나 무섭게 생겨서 이웃간인사도 못했는데 썅

 

 

 

"야 너 1학년때를 생각해봐. 그 무념무상의 담임쌤하고도 친하게 지냈잖아"

"맞아. 우리반에서 담임하고 친했던애 너밖에 없었어"

"....준면쌤....근데 준면쌤하고는 상황이 다르잖아"

"뭐가 달라. 지금 우리담임이 준면쌤보다 공략하기 쉬울것같은데 성격 시원시원해보이잖아"

"...그런가...."

"그래 내일부터 존나 앵겨붙어 니 특유의 애교같은걸 부려봐 준면쌤한테 했던것처럼"

"맞아 준면쌤 니 애교에 껌뻑죽었잖아"

 

 

해결된거지 제발 먹자. 점점 식어가는 떡볶이에 울상을 가득 지은 김종대가 애원하듯 말했다. 그래 알았어 먹자. 내 말에 둘은 다시 걸신이 들린듯 해치우기 시작했다. 야 나먹을거 하나도 없겠다! 둘의 포크질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나도 그 걸신짓에 동참했다.

 

 

 

-

 

 

 

07:45

 

처음으로 집을 나서는 시간이였다. 반에 들어가면 딱 종이 울리는 그런 시간. 부지런하기론 둘째가기가 서러운 내가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하나였다. 옆집남자, 김종인쌤 우리 담임때문에.

 

 

도쌤이 선생님이 되고 처음으로 같이 학교에 갔던 날에는 어색함도 없고 불편함도 없었던것같은데 옆집남자가 담임이라는걸 알자마자 도쌤하고는 다르게 불편한 감정이 어젯밤 온생각을 헤집었다. 아 어쩌지!! 계속해서 침대만 데굴데굴 구르다가 새벽늦게 되서야 잠이 들었다. 근데 습관이 무서운거라고. 정말 몇시간 못잤는데도 6시가 되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썅...담임에 대한 생각과 형의 부재가 같이 생각을 덮쳐오면서 컨디션은 최악으로 떨어졌다.

 

 

7시 30분이 되자 현관문 앞에서 나는 벌벌 떨었다. 시발 나가 말아? 그렇게 계속 고민을 하고있을때 옆집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헐 나왔나보다. 그리고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고 닫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다듣고도 혹시몰라 몇분뒤인 45분에 집을 나섰다. 이러니까 나 겁나게 소심해보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정리하고있을때 바로 아래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춰섰다. 그리고 들어오는 사람은 역시나 느긋한 도쌤.

 

 

 

"어? 백현아!"

"안녕하세요 쌤"

"무슨일이야 너가 이시간에 다 나오고?"

 

 

도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며 물었다. 그냥요...늦잠...잤어요..허허...내 어색한 연기가 티가 났을까. 도쌤은 그냥 날보며 큰눈만 껌벅이다가 푸스스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더이상 묻지않았다. 뭐지 저 다 안다는 태도는.

 

 

 

"근데요 쌤"

"야...섭섭하게 학교도 아닌데 형이라그래 말도 놓고"

"어떻게 그래요"

"예전에는 아저씨라고도 불렀으면서 새끼가..."

 

 

 

도쌤의 말에 나는 풉하고 웃음을 터트릴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도쌤은 근데 정말로 폐인같았다. 임용고시준비생이라는데 수염은 막 삐죽삐죽 나있지 머리는 산발이지 옷은 그냥 다늘어난 츄리닝에...으으....항상 형의 깔끔한 모습만 봐왔던터라 도쌤의 외형은 정말이지 매우매우 컬쳐쇼크였었다. 그래서 왠만하면 형형 거리는 내가 아저씨라고 그랬던거였고

 

 

 

"그때 솔직히 아저씨같았잖아요"

"야 니네형이랑 내가 동갑이야...선생으로서의 명령이다 학교들어가기전까지 말놓고 형이라 불러"

"아...억지 쩔어 진짜..."

"꼬우면 너가 선생하든지"

"와 진짜 얄밉다. 예전에 형보는거같아"

 

 

 

겁나 얄밉게 우리집 반찬을 몇개씩 쌔벼가던 그때의 도쌤..아니 경수형이 생각났다. 우리형이 성격이 좋아서 그렇지 다른사람이였으면 소금뿌렸을꺼야

 

 

 

"아 근데 형"

"응 왜"

"지하 1층으로 안가? 형 맨날 지하로 갔잖아"

"아아...그거? 그거 종인이차 타려고 그런거야. 아 이제 말해도 되겠지. 너 담임 김종인이지?"

"뭐야...형 알고있었어?"

"당연하지. 나보다 몇년이나 일찍 선생된 놈인데"

 

 

 

복도 많지 군대도 안가고...경수형이 잠시 아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나는 경수형의 군대생활을 떠올렸다. 가끔씩 휴가를 나와 군복을 입은채 아련하게 날 내려다보던 경수형. 그때의 형은 날 볼때마다 맨날 그랬다.

 

'너도 얼마 안남았다'

 

아니 그게 아직 중딩인 애한테 할말이냐고. 그때마다 난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보였고 형은 그말이 뭐가 그리 웃긴지 맨날 웃으며 경수형을 데리고 같이 소고기를 사먹으러갔다. 군대를 좀 일찍 갔다온 형이라 그런 경수형에게 동질감도 느끼고 동정심도 느낀다나뭐라나.

 

 

"근데 우리 백현이 어떡해? 백훈이 없어서"

"아 백훈이 형이 뭐가 대수라고 형없어도 괜찮아"

"웃기시네. 너 결혼식장에서 운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

"악!!!"

 

 

손을 들어 두 귀를 막고 경수형을 째려보자 형은 뭐가 웃긴지 빵터져서 웃고있었다. 웃즈므르그... 내 말은 들리지도않는건지 계속 날 놀리면서 느긋하게 가던 형은 정문을 통과할때까지 계속 놀려댔다. 그래 놀려라 나는 내갈길가련다. 개썅마이웨이

 

 

 

"아 근데 백현아"

"왜요"

"학교라고 바로 말바꾸는것봐...암튼 너 진짜 김종인 몰랐어?"

"담임이요? 네.."

"야....하긴 그르지? 너가 얼굴도 아는데 인사를 쌩까고 그럴애가 아니지"

"근데 도쌤"

"응"

"내가 담임쌤한테 인사안한다는거 어떻게 알았어요?"

"어?"

"어떻게 알았냐구요. 내가 어색하다고 말하거나 인사를 안했다고 말한적이 없는데..."

 

 

 

뭔가 의심스러운 부분을 물으니 도쌤의 얼굴이 점점 당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넌씨눈이지만 도쌤의 변화는 눈치챌수있다. 표정에서 저렇게 티가 나는데. 나는 좀더 살쾡이 눈을 뜨고 도쌤을 추궁하려했지만 그때 마침 울리는 종소리에 도쌤도 그리고 나도 당황해야했다.

 

 

"...으아 또지각!!"

"지가아악?!!!"

 

 

세상에 내 학교생활 10년동안 처음으로 오점이 생겼다.

 

 

03

 

 

 

이 상황은 대체 뭐라 설명해야되지. 왜 항상 지각하던 박찬열이나 정수정은 오늘따라 빨리 온걸까. 왜!

 

 

 

"개학한지 하루밖에 안지났는데 지각하고..."

"...죄송해요"

 

 

정말로 식은땀이 줄줄 나는것같다. 이렇게 둘이 대치하는게 어색하고 불편해서 집에서도 늦게 나온건데 결국은 이렇게 되잖아 엉엉. 이럴바엔 차라리 빨리 나오는게 나았잖아 엉엉 이게 다 도쌤탓이다. 나쁜 도쌤. 종이 치자마자 자기는 선생이니 엘베를 타도된다며 날 버리고 엘베를 타고 떠나신 당신. 교장한테 걸려서 대빵 깨져라.

 

 

"늦잠잤어?"

"ㄴ..네?"

"오늘은 제시간에 안나오길래 뭔가 했는데"

"하...하하..."

 

 

설마 날 신경쓸줄이야. 어색하게 웃음을 흘린다음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자습시간은 왜이렇게 쓸데없이 긴건지. 괜시리 손목시계를 한번 슬쩍 쳐다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늦잠잔거야 아니면"

"아...그게..."

"내가 불편해서 피한거야"

"네?!"

 

 

어떻게 알았지 싶은 마음에 마음을 숨겨야한다는 것도 잠시 잊고 고개를 번쩍들어 담임을 쳐다봤다. 담임은 그런 내반응이 웃긴지 살짝 웃으며 어깨만 으쓱했다. 둘중 뭐야? 그렇게 다 안다는 표정으로 물어보면 뭐라 답해...썅...당연히...

 

 

"늦잠이요..."

 

 

라고 대답하지.

 

 

 

"늦잠이라"

"...다음부턴 지각안할게요..."

"그래 뭐. 내일부터 지각하지마라"

 

 

 

들어가자. 담임의 말에 한번 고개를 숙여 담임한테 인사를 하고는 뒷문을 통해 들어갔다. 들어가니 저쪽에 정수정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야 니자리 여기야! 저게 무슨말인가 싶었지만 일단 정수정의 옆자리로 가서 털썩 앉았다.

 

 

"짝 안정했잖아"

"너 나가있을때 정했어"

"그랬구나...근데 왜 나랑 니랑 짝이야"

"그 말투는 뭐냐 죽여버리고싶게?"

 

 

정수정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하지만 주먹은 불끈쥐고 내게 말했다. 아씨 무섭게. 태권도에 유도에 못하는 운동이 없는 정수정의 주먹은 꽤나 아프다. 계집애같지가 않아요.

 

 

 

"박찬열은 뭔데 맨앞이야"

"지 운이지"

"뽑기로 한거야?"

"엉"

 

 

 

뽑기운...나도 참 없는것같다. 내말에 결국 정수정의 주먹이 날라왔다.

 

 

 

-

 

 

 

"야! 준면쌤 옆자리가 니네 담임이야"

"...그게 뭐"

"아이 병신...도와줘도 못 주워먹네. 담임한테 잘보여한다며 그래서 애교부리라고 했잖아"

"...그랬지. 근데 그게 준면쌤이랑 무슨 상관이야"

"아오 넌씨눈"

 

 

박찬열이 들고있던 폰으로 내 머리를 내려쳤다. 아 아파! 머리를 부여잡고 짜증스러운 마음을 잔뜩 담아 박찬열의 정강이를 깠다. 이 개새끼가. 박찬열은 자기의 정강이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그러게 왜 깝치니

 

 

"개학한지 하루밖에 안지났는데 수학한테 엉겨붙으면 완전 이상한애되는거잖아"

"음..."

"그니까 준면쌤보러가는것처럼해서 은근슬쩍 수학한테 말도걸고 애교도 부려보고 그러라고"

"...야 근데 무슨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담임 꼬시는애되는거같은데"

"병신아 그냥 준면쌤하고 정도의 사이만 되라고. 형이 잘지내라고했다며 브라콤아 도와줘도 지랄.."

"음...알겠어 좋아 지금 당장 시행하겠어"

 

 

 

안그래도 지각으로 조금 더 찍힘에 +가 된것같은데.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니 소란스러움에 일어난 정수정이 어디가냐고 물어왔다.

 

 

"1년을 위해 투자하러"

 

 

그래, 담임하고 이렇게 지내다간 1년내내 말라죽을거야. 적어도 학생1 정도는 되야지

 

 

 

-

 

 

 

2학년 교무실에 들어가니 컴퓨터로 일을 하고있는것같은 담임과 옆에서 세상모르게 자고있는 준면쌤이 눈에 보였다. 아 근데 준면쌤은 항상 담임하기 싫어하고 그러면서 올해도 담임을 맡은 모양이였다. 2학년교무실에 떡하니 앉아있는걸 보니.

 

 

"어 백현이!"

"아 쌤 안녕하세여"

"야..백현이 너는 2학년이 되서도 키가 그대로구나"

"헐...무슨소리에요 쌤 저 1cm나 컸는데"

 

 

준면쌤한테까지 가는데 교무실에 있는 안면있는 쌤들이 한명씩 말을 걸어왔다. 으아 정신없어. 쌤들은 항상 나만보면 키가 작다고 놀려댄다. 키를 보지말고 어깨와 허벅지를 봐주세요 쌤들

 

 

교무실이 소란스러워졌는데도 내가 준면쌤앞에 도달할때까지 쌤은 미동도 없었다. 자세히 보니 가방도 풀지않고 대충 옆에 팽게쳐져있었다. 아 쌤 조례땐 들어가셨어요...? 1학년때도 가끔씩 조례때 안와서 내가 찾으러가기도 했는데. 난 안쓰러운 마음에 쌤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선생님 웨잌업

 

 

"아..아..왜..."

 

 

준면쌤은 흔드는게 내가 아니라 교장이였으면 어쩔라고 반말을 하는건지 아직까지 팔에서 고개를 떼지않은채 중얼거렸다. 아 쌤 좀 일어나봐요오~ 일부로 애교를 조금 가미한 어투로 말을 하며 시선은 담임한테 두었다. 뭐에 그리도 집중하는지 내쪽한번 쳐다보지않는다.

 

 

"아...변ㅂ...변백...아나..."

"그래요 쌤 제가 왔어요"

"그래 너..아..흔들지좀..악..."

 

 

준면쌤이 몸을 일으키는게 느껴졌지만 나는 시선을 돌리지않았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제 본목적은 쌤이 아니에요.

 

 

나는 괜시리 담임이 내쪽을 볼때까지 준면쌤의 어깨를 흔들었다. 쌤이 계속 뭐라 중얼거리는것같기는 한데 목소리도 작고 그래서 내귀까지 닿지는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있을때 담임은 그제서야 일을 끝낸건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기지개를 폈다. 그러곤 뻐근한지 목을 돌리다가 딱 내쪽을 쳐다봤다. 오! 겨우 마주친 시선에 나는 병신같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썅 눈마주치면 말하려고했던 대사가 뭐였지 분명히 내가 준비했는데....

 

 

"변백....야..야썅...나 골아ㅍ.."

"아...아..."

 

 

 

준면쌤이 내 손을 잡아오는게 느껴졌지만 그건 나랑 상관이 없었다. 하 시발 내가 수학은 못해도 국어는 잘하는데 1등급인데 왜 대체 왜 말을 못하니 왜! 내가 한참을 시선을 맞춘채 어버버거리고 있자 담임은 그런 나를 보고 그냥 픽 웃고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담임과 시선이 떨어지자 하려던 말이 딱 기억났다. 변백현 병신아 일단 자연스럽게 뭐하시냐고 묻고 그다음 도쌤이야기도 몇마디하기로했잖아. 썅...허탈한 마음에 실소까지 나왔다.허...허... . 아니 아냐 다시한번 시도해볼까. 다시한번만 고개를 이쪽으ㄹ..

 

 

"썩 꺼져"

 

 

아 아파! 나는 아려오는 엉덩이를 부여잡았다. 교무실안에서는 하하 선생님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고 곧이어 교무실 문이 쾅 닫혔다. 아 면쌤!! 교무실문에 대고 소리쳤지만 들려오는건 여전히 웃음소리밖에 없었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교무실밖으로 발로 차서 내쫒을게뭐람. 나는 자다일어나서 부스스한 머리에 풀린 눈을 가지고있던 준면쌤을 상상하며 혀를 내밀었다.

 

 

 

-

 

 

 

"너 면쌤한테 궁둥이 차였다며?"

"어떤쌤이냐. 입 개싸네"

"누구겠냐 노처녀 윤리가 말해줬지. 너 완전 우리반에서 까인애됬어"

"썅..."

 

 

근데 궁둥이차인만큼의 성과는 얻으셨냐? 김종대가 아이스크림을 한번 베어물며 말했다. 미친놈 보는것만으로 춥다. 물론 박찬열만큼은 아니지만. 김종대는 원채 애가 추위를 안타서 좀 괜찮았지만 박찬열은 추위도 겁나 많이타는게 김종대가 먹는걸 자기가 안먹을순없다고 온몸을 벌벌 떨면서 먹고있었다. 왜 사서 고생을 해...난 측은한 눈길로 박찬열을 한번 바라봐주곤 입을 열었다.

 

 

"아니....눈마주치니까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해서 말을 못했어"

"병신이네"

"지금 니 꼬라지가 더 병신같아 도비야. 야 근데 내가 오늘 느낀건데"

"어"

"담임 나한테 별로 화 안난것같기도해...뭔가 태도가 내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한거에 비해서 심각하지않았어"

"뭐 어땠는데 태도가?"

"정색도 안하고...눈마주치면 웃어주고...그냥 일반학생 대하듯하던데"

"그래 야. 어제 떡볶이 먹을땐 너가 너무 완강해서 말안했는데..아 시발 존나 추워"

 

 

야 추우면 그걸 버려. 박찬열 손에있는 하드를 뺏어가려고 손을 뻗으니 박찬열은 내가 안닿게 하드를 번쩍 들어올렸다. 시발놈이....

 

 

"먹을거야 새끼야...김종대도 먹는데..."

"저 병신.. 병신중에 상병신..."

"암튼 너가 어제 너무 완강해서 말안했는데 담임 성격에 너한테 그걸로 화풀이하진않을거같은데"

"그러냐?"

"어. 그리고 도쌤이랑 친구라며. 도쌤이 너가 인사안한이유 다 알려주겠지 설마 안알려주겠냐"

 

 

그런가. 아 그러고보니 아침에 도쌤한테 물어보려고했던것도 못물어봤다. 하루가 너무 정신없게 흘러가서...내일 마주치면 물어보지 뭐. 도쌤에 대한 문제는 일단 넘어가고 박찬열의 말을 생각해봤다. 그래, 담임을 안지는 2일밖에 지나지않았지만 딱봤을때 화풀이할것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태도도 마치 너가 나한테 인사를 안했었나? 이런 태도고...근데 또 뭔가 찝찝하단 말이지

 

 

"그래도 찝찝하다면"

"엉"

"이번주까지만 교무실 찾아가봐. 이번주되면 선생님하고 친해지는 애들 있을거아냐. 걔네들이랑 비교를 해보라고"

"이번주만에 선생님들하고 친해질까 다른애들이?"

"다른쌤은 몰라도 수학은 가능해. 여자애들이 눈에 불을 키고 친해지려고 그러던데"

 

 

김종대가 어느새 다먹었는지 아이스크림바를 씹으며 말했다. 우리반은 남탕이라 모르겠는데 옆반애들 장난없어. 김종대가 다먹은걸 보고 미친듯이 아이스크림을 먹어대던 박찬열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수정도 담임 노리잖아"

"헐 그 변태가 타겟을 도쌤에서 언제 바꿨데"

"오늘 너 혼나고있을때 침질질흘릴것같은 얼굴로 말했었어. 저 구릿빛피부를 언젠간 핥겠다고"

"미친년이야 그거...1학년때는 도쌤 흰자를 씹어먹겠다고 그러더니"

 

 

내 말에 김종대가 맞아맞아 수긍을 하며 몸을 젖혀 웃어재꼈다. 도쌤 엄청 무서워했잖아. 나는 언제 한번 정수정이 도쌤한테 팬티색을 물어봤다는 이유로 일주일간 정수정을 피해다녔던 도쌤을 떠올렸다. 뭐 그런다고 정수정이 포기할 사람은 아니였지만. 선생님 눈이 참 이쁘시네요. 아버지가 도둑이셨나봐요. 드립까지 치던 정수정이 떠올랐다.

 

 

"우리 담임 고생길이 훤히 보인다"

"정수정뿐만이 아니야. 접때 3학년 담당해서 애들 잘 몰랐었잖아 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서 뉴페이스에 여자애들 겁나 흥분상태라고"

"흐음..."

"그니까 이용해. 이번주만 좀 앵겨봐. 그럼 니 1년이 편해질거다"

 

 

겨우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박찬열도 수긍했다. 니 1년 재수없음 용서받는셈쳐. 그래 까짓거...내가 누구냐 준면쌤도 꺾은 변백현이야!

 

 

 

-

 

 

"포기"

 

 

정수정과 박찬열, 김종대 앞에서 나는 깔끔하게 두 손을 들고 말했다. 내 선언에 박찬열과 김종대는 수고했다며 박수를 쳐줬고 정수정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쟤는 저 버릇 고치라니까 절대 못고친다. 김종대가 정수정의 손등을 내리쳤다.

 

 

"반실패 반성공이네"

"그치 뭐...정수정 너는 포기안하냐?"

"절대 never! 저 초콜릿을 핥을때까지 포기하지않아"

"이게 뭔 꼴사나운 짓거리야...야 차라리 도쌤을 좋아해. 담임은 애인도 있잖아!"

 

 

박찬열이 징그럽다는듯이 정수정을 쳐다봤다. 그리고 정수정은 뭐가 그리 당당한건지 도도하게 머리를 한번 쓸어넘기고는 입을 열었다.

 

 

"기왕이면 어린게 좋지않겠어?"

"미쳤네 이거"

 

 

박찬열과 정수정의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에라이 둘다 꺼져버려. 김종대는 그 옆에서 휴지가지고 장난치다가 휴지를 둘에게 던졌다. 난장판이네.

 

 

반실패 반성공. 김종대가 내게 했던 말이 정확했다. 요 일주일동안 나는 정확히 하루에 3번씩 준면쌤에게 궁둥이를 차이며 교무실을 들락달락거렸다. 근데도 나는 담임하고 결국에 도쌤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만큼 담임은 내쪽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대답도 상대방이 할말이 없게끔 한다. 예를 들면

 

 

"쌤 뭐하세요?"

"일하지"

 

 

정말 처음 대화했을땐 담임이 날 학생1정도로 생각한다는 착각이 깨질뻔했다. 나 싫어하는거 맞구나. 싶을정도였으니..근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내 생각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담임은 다른 선생님이 말을 걸때나 학생들이 말을 걸때도 저런식으로 대답했다. 언제였지 그저께였나. 윤리가 담임한테 커피를 마실꺼냐고 물어왔었는데 정말 칼같이

 

 

"커피 안먹어서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답하는 것였다. 한번 더 물어볼 기회조차 봉쇄하는. 안먹어요. 그리고 정수정이 와서 괜히 수학문제를 물어봐도 정말 딱 수학문제만 알려주고 정수정이 간간히 물어보는 거에는 집중하라는 말만했다. 그 장면을 일주일가량 보니 깔끔하게 포기가 됐다. 적어도 내가 학생1 정도는 된다는 소리니까. 나 깔끔하게 포!기!

 

 

  04

 

오전 6시. 정각이 되자 나는 또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오늘이 몇요일이지...싶은 마음에 눈을 부비며 핸드폰을 확인하니 빨간글자로 '일' 이라고 써있었다. 아, 그러지 오늘이 일요일이지. 그러니까 이렇게 내옆으로 거지같은 놈 두명이 누워 자고 있는거겠지.

 

 

 

 

 

 

 

박찬열과 김종대를 한번씩 발로 툭툭차 일어나라고 말해도 둘은 꿈쩍을 안하고 다시 잤다. 미친놈 침까지 흘리네. 대충 둘을 훑어본다음 씻기위해 일어났다. 와 집안꼴 장난없다. 팬티만 입고자는 박찬열은 옷을 아무대나 던져놨고 김종대의 윗옷은 저 구석에 쳐박혀있었다. 아니 얘는 어제 멀쩡히 잘 입고 자던데 언제 벗었데.

 

 

 

 

 

 

 

옷 이외에도 과자봉지 음료수통 등등 각종 쓰레기들은 우리집바닥의 반이상을 차지하고있었다. 아 이걸 언제 다치워.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미간이 좁혀졌다. 아 몰라. 일단 씻고 보자.

 

 

 

 

 

 

 

"아 좀 일어나지?"

 

 

 

 

 

 

 

다 씻고 머리도 말리고 옷까지 입으니 시간은 7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아 존나 칼같네. 휴일에도 칼같은 시간관리에 어깨를 으쓱하며 거실로 나가자 둘은 아직까지 자고있었다.

 

 

 

 

 

 

 

"...으...ㅡㅇ...몇시..."

"7시 30분"

"아..아변백현 병시니...그거밖에안됬으면서....썅 깨우지ㅁ..ㅏ..."

 

 

 

 

 

 

 

 

허! 어이가 없는 마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너네가 빨리 일어나야지 이 집구석도 치우고 그럴거아니냐고. 설마 지금 나혼자 이많은걸 다 치우라는건지. 이번엔 박찬열의 허벅지를 발로 꾹 밟았다. 일어나

 

 

 

 

 

 

 

 

"아!!!"

"당장 일어나"

"아이 미친 썅 아오 존나아프네 아오 미친 개새끼가"

"아침부터 그렇게 욕을 쏟아내면 기분좋냐? 당장 일어나서 나랑 청소해"

"김종대는!!"

"잔다잖아"

"나도 잘거야 개놈아!"

 

 

 

 

 

 

 

잠 다 깬거 알아. 내말에 박찬열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앓는소리를 냈다. 내가 정곡을 맞춘 모양이다. 허허 나는 베란다에서 가져온 분리수거용 통을 박찬열손에 쥐어주었다.

 

 

 

 

 

 

 

 

"지금부터 페트병은 플라스틱으로 과자봉지는 비닐로 담으세요!"

"시발 변백현 언젠간 내가 죽일거야"

 

 

 

 

 

 

 

 

그래그래 죽이더라도 일단 이거 먼저 하고 죽여

 

 

 

 

 

 

 

 

 

-

 

 

 

 

 

 

 

 

 

 

아침날씨는 매우 매우 좋아 밖으로 나가자마자 상쾌한 마음이 확 들었다. 겨울이 끝나니 춥지도 않고 내가 딱 좋아하는 날씨였다. 추운건 너무 싫어. 정말 추울때는 그 부지런한 나도 아침에 분리수거하러가기가 죽을만큼 싫었었다. 날씨 겁나 좋지않냐? 숨을 두어번 크게 들이쉬고 박찬열을 쳐다보니 박찬열은 지금이 죽을만큼 싫은 모양이였다. 새끼 표정 보소

 

 

 

 

 

 

 

 

 

 

"좋기는 매연 투성이야. 거지같은 도시매연"

"넌 세상에 너무 비관적이야. 그렇게 살면 안된단다"

"이게 다 누구탓인데...야 내꼬라지봐. 이러고 데리고나오고 싶었냐?"

"뭔상관이야. 나는 잘 입었는데"

 

 

 

 

 

 

 

 

 

 

내말에 박찬열이 빡친다는듯이 발을 동동 굴렀다. 야 너 그러고있으니까 왠 거지가 발작일으키는것같아. 다늘어난 회색티에 검정츄리닝 삼선슬리퍼, 거기다 머리가 다 붕뜬 상태인 박찬열은 정말로 거지같았다. 박찬열은 결국 자기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나에게 달려와 헤드락을 걸었다. 악!! 박찬열은 키가 커서 그런지 헤드락을 걸면 정말로 너무 아프다. 엉엉

 

 

 

 

 

 

 

 

 

"형님 죄송해요라고 빌어봐"

"형님 죄송해요"

"놔준다는 소리는 안했는데"

 

 

 

 

 

 

 

 

아오!!! 점점 아파오는 목과 허리에 박찬열의 정강이를 깔라고 아둥바둥거리자 내행동을 바로 눈치챘는지 박찬열이 얍샵하게 나와의 다리 거리를 떨어뜨려놓았다. 아 개놈 진짜. 결국 분리수거장까지 나는 헤드락걸린 상태로 가야만했고 박찬열은 분리수거장에 도착하자마자 날 놓아줬다. 뭐지 얘가 이렇게 순순히 놓아줄리가...

 

 

 

 

 

 

 

 

 

 

"아 안녕하세요 쌤"

"...헙...안녕하세요"

 

 

 

 

 

 

 

 

 

 

그럼 그렇지. 분리수거장에는 나의 옆집남자. 담임쌤이 떡하니 서있었다. 선생님도 막 일어나신건지 살짝 뜬 머리와 트레이닝복차림이였다. 오 근데 신기한게 박찬열도 붕뜬머리+트레이닝복인데 둘의 꼴은 정말로 많이 차이가 났다. 담임은 뭔가 박찬열과는 다르게 기품이 흘러나왔다. 이게 바로 분위기차이라는건가.

 

 

 

 

 

 

 

 

"그래 안녕. 찬열이는 백현이 집에서 잤나봐?"

"아 네. 종대랑 같이 잤어요"

"그렇구나"

 

 

 

 

 

 

 

분리수거를 끝냈는지 빈 통을 들고 몇마디 나누던 담임이 머리를 한번 쓸어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날 쳐다보더니 한번 픽웃고 먼저 간다며 자리를 떴다. 나는 담임이 가기전 한번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곤 본격적으로 분리수거를 하기 시작했다.

 

 

 

 

 

 

 

 

담임과 친해지기 포기선언을 한지도 한달이 지났다. 그 한달간의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굳이 뽑으라면 아에 바뀌어버린 내 등교시간과 담임과의 관계랄까. 나는 아에 7시 45분을 등교시간으로 정해버렸고 담임과는 요 한달간 만난적이 없었다. 담임선생님하고 만나는것보단 도경수쌤하고 만나서 같이 등교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 또 두번째로 달라진건 옆집이라 그런지 어쩔수없게도 만나게 되면 꼬박꼬박 90도로 인사를 하게됬다는 것이였다. 안녕하세요. 그러면 담임은 그냥 그래. 한마디만 하고 지나갔다. 으어....저럴때마다 정말 엄청나게 어색하지만 학생1은 됐다는 생각만을 품고 살아가고있다.

 

 

 

 

 

 

 

내가 딴 생각을 하고있을때 분리수거를 다 끝낸건지 박찬열이 욕을 계속 읊조리며 통을 챙겨들었다. 그리고는 배를 부여잡고 말했다. 아 존나 배고파.

 

 

 

 

 

 

 

 

"야 라면있음?"

"엉. 라면먹을까?"

"어!!"

"그럼 설거지는 너가해"

"....야 솔직히 설거지는 김종대 시키자"

"콜"

 

 

 

 

 

 

 

 

내 긍정답에 박찬열은 아싸를 외치며 내 어깨에 팔을 얹어놨다. 아씨 이거 하지말라니까. 박찬열에게 짜증을 내었지만 들리지않는 모양인지 무시하고 그냥 걸어나간다. 썅놈이다 아오.

 

 

 

 

 

 

 

 

-

 

 

 

 

 

 

 

라면 끓여먹고 설거지까지 다 끝낸 우리는 한두시간 무념무상하게 티비를 보다가 항상 가던 코스대로 PC방으로 직행했다. 오늘 내가 너네 다 발라줌ㅇㅇ. 종대의 말도안되는 허세에 한껏 'ㅋ'으로 비웃음을 날려주고선 우리는 게임을 시작했다.

 

 

 

 

 

 

 

 

나는 시간이 없어 꺼진 컴퓨터를 허망하게 쳐다보다가 다시 시간추가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했다. 근데 일어나면서 그냥 습관적으로 본 손목시계에 식겁하며 다시 주저앉을수밖에 없었다. 미친 정녕 내 눈이 병신이 아니라면 지금 시간이 6시가 맞는건가. 나 지금 게임 6시간한거니? 넋이 나가 옆에 있는 종대를 쳐다보니 김종대는 눈이 다 빨개져서 게임을 하고있었다. ....내가 저런 모습이였다니 순간 소름이 끼쳤다.

 

 

 

 

 

 

 

"야...야 김종대"

"어 왜 말걸지마"

"...박찬열"

"꺼져"

 

 

 

 

 

 

 

저 중독들을 어쩌면 좋아. 비록 3분전까진 나도 그 중독중 한명이였지만 지금에서라도 깨달았으니 저 두명과는 다른과일거다.

 

 

 

 

 

 

 

"지금 시간이 몇시인줄알아?"

"지금 시간이 중요해? 게임이 중요하지"

"똥백 너 근데 왜 나갔냐? 다시 들어와"

"...열심히 해라 난 간다"

 

 

 

 

 

 

 

대충 지갑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나니 둘은 여전히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않은채 물어왔다. 아 왜! 그 장면이 꽤나 안쓰러워 나는 측은한 눈길로 둘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네 꼴 나기 싫어서"

 

 

 

 

 

 

그리고 형이 게임 오래하지 말랬단말이야. 이미 오래하긴했지만. 대충 입을 쩝 다시니 박찬열과 김종대가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브라콤 변백현. 둘은 신명나게 날 놀려대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냥 무시하고 PC방을 나왔다.

 

 

 

 

 

한참을 집을 향해 걸어가고있으니 슬슬 배가 고파오는게 느껴졌다. 아까 라면먹고 대충 과자 몇개 집어먹은게 오늘하루 식사량이였다. 근데 집에 밥이 있었나. 생각을 떠올릴라고 기를 쓰니 없던걸 기억해냈다. 맞아 썅 박찬열돼지놈이 어젯밤 우리집 밥통을 털었었다. 인생에 도움이 되지않는다 진짜로. 밥하기 귀찮은데....낑낑거리며 어쩌지 생각하다가 결국엔 피자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랜만에 피자로 떼우지 뭐.

 

 

 

 

 

-

 

 

 

 

 

피자를 받아들고 가는 길 내내 나는 고문에 시달려야했다. 아 피자향 너무 좋아!! 빨리 집가서 먹어버리고 싶다. 침은 잔뜩 고여있고 이성은 마비될거같은데 이놈의 신호등은 그런 내 상태를 약올리는지 야속하게 안바꼈다. 아 빨랑!! 나는 발만 동동 구르며 신호가 바뀔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바뀌자마자 거의 뛰어가듯이 집으로 향해 걸었다. 배고파 배고파.

 

 

 

 

 

그리고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뿜어대는 어떤 남녀를 발견했다. 그리고 배고픔에 대충 뭐야 하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갈수록 점점 이성이 다시 돌아옴을 느꼈다. 그 남녀 중 남의 정체가 우리 담임이였기 때문에.

 

 

 

 

 

 

 

담임은 무표정하게 자신의 앞에 서있는 여자를 가만히 바라만보고 있었다. 담임은 항상 얼굴에 웃음기를 담고 있었는데 저렇게 무표정한 모습은 처음이였다. 헐 모다..., 뭔가 이상한 낌새에 대충 무시하고 돌아갈까 싶었는데 그냥 가기로했다. 배고파죽을것만같은데 돌아갈수는없다. 돌아가다가 죽을꺼야. 대충 짧게 인사만 하고 지나가면 되지.

 

 

 

 

 

 

그리고 점점 더 가까워져 둘의 말소리가 들려올때쯤 나는 고개를 숙여 작게 인사를 했다. 아니 하려고했다.

 

 

 

 

 

 

"안녕하ㅅ..."

"안수현 다 알고있잖아!"

 

 

 

 

 

 

나는 담임의 큰소리에 놀래 말도 잊지못하고 그자리에 멈춰섰다.

 

 

 

 

 

 

 

"...내가 남자 좋아하는거 알고있었잖아"

 

 

 

 

 

 

 

 

 

담임이 툭하며 눈물을 흘릴것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억양은 눈물을 꾹 참고있는지 부들부들 떨려오는게 느껴졌고 그리고 나도 덩달아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나님 저 방금 대체 무슨 소리를 들은건가요. 순간 피자를 놓칠뻔한걸 겨우 다잡았다. 시발. 머리속은 당장 이곳을 떠나라고 소리치고 있는데 너무 놀랜건지 발이 떨어지지않는다. 아 야 변백현 다시 한번 차분히 생각해봐...생각해봐 시발 제발 좀 침착해!!!

 

 

 

 

 

 

 

 

 

 

"종인아 그것도 병이야...정신병이랬어. 내가 고쳐줄게 응?"

"....안수현"

"응? 종인아..."

"넌 고등학교때도 이랬지"

 

 

 

 

 

 

 

 

10년동안 넌 정말 변한게 하나도 없다.

 

울것같은건 담임이였는데 먼저 눈물을 터트린건 여자였다. 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있어! 여자는 뭐가 그리 악에 받친건지 째지는 목소리로 담임을 마구 다그쳤다. 대체 내가 뭔데 이런 엄청난 상황을 목격하고 있는건지. 나는 정말 있는힘 없는힘 다 쥐어짜서 겨우 한발을 내딛었다. 시발 도망가...!! 아니 도망이래 이자리를 피해 변백현!!!

 

 

 

 

그리고 내가 딱 뒤를 돌아서 달리려는 순간 나는 큰 충격에 밀려나면서 피자를 떨궜다. 시방 뭐시당가!!!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앞을 보니 담임앞에 서있던 여자가 내 어깨를 퍽 치고 간거였다. 멍때리고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있으니 여자는 금새 내 눈에서 사라졌다. 헐 뭐야....아니 아니지 이렇게 멍때릴때가 아니다. 나는 이미 속은 다 찌그려졌을 피자를 급하게 들고 얼굴을 절대 뒤에 안보이도록 하며 뜀박질했다. 아니 또 하려고했다 썅

 

 

 

 

 

"....변백현"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만 아니면

 

 

 

 

 

"2학년 1반 10번 변백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돌리면서도 생각했다. 시발 왜돌렸지 그냥 아닌척 뛰어가버릴걸 아 병신 아 병신새끼. 아니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왜 피자를 먹으려고했을까. 난 정말 게으름 투성이의 아이다. 밥하는거 그거 그냥 전기밥솥이 다해주는건데 그것도 귀찮니 이 똥멍청이야?!! 엉엉

 

 

 

 

 

속으로는 펑펑 눈물을 흘리며 결국 나는 담임과 눈이 마주쳤다. 아까와 다를것없이 무표정한 담임의 표정에 나는 몸이 뻣뻣히 굳는느낌이였다.

 

 

 

 

 

"이리와"

 

 

 

 

 

검지손가락으로 까닥 나를 부르는 저 손짓에 나는 다시한번 피자를 떨궜다.

 

 

 

 

 

 

 05

 

 

 

 

 

 

피자각을 열자 역시나 피자는 찌부도 그런 찌부가 없을만큼 찌부되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꼴에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피자가....허허....내가 들어도 존나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나는 가위를 이용해 최대한 피자모양이 나게 잘랐다. 그리고 건냈다. 담임선생님에게. 내 옆집남자에게...게이에게

 

 

 

 

 

 

"넌"

"ㅇ...예?!"

"넌 안먹냐고"

 

 

 

 

 

먹슴죠...먹어야죠....허헣....나는 또한번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그냥 아무렇게나 피자를 집어들었다. 엉엉 이 미친 상황와중에도 피자는 잘만들어간다. 맛있다.

 

 

 

 

 

 

 

-

 

 

 

 

 

정확히 30분전 담임은 도망...아니 자리를 피하려던 나를 붙잡았고 같이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그리고 재빠르게 담임의 손길에서 벗어나 집으로 들어가려던 나를 자신의 집에 쳐넣었다. 아니 쳐넣은건 내 느낌이고 사실대로 말하면 권유했다. 협박인지 권유인지는 조금 헷갈렸지만

 

 

"선생님하고 얘기 좀 하자"

 

 

이러는데 시발 내가 싫다고 어떻게 하냐고. 안그래도 담임한테 설설 기는 상태였는데!!! 이 사람이 게이라는것까지 알아버렸는데!!! 내 의사와 상관없이 담임의 성정체성을 알아버렸는데!!!!

 

 

 

 

 

 

 

아무튼 그래서 나는 담임의 집에 첫입성을 하게 되었고 담임이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을때까지 거실에서 무릎꿇고 기다렸다. 담임은 편히 앉아있으랬는데 세상 누가 편히 앉아있을수있을까. 나는 다리가 저리다는 감각도 깨닫지못한채 식은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샤워를 다 끝낸 담임은 내 앞 상에 피자를 올려놨다. 그리고 나와 담임은 피자를 먹었다.

 

 

 

 

"왜 이렇게 조금씩 먹어"

"네?!"

"....많이 먹으라고"

"ㄴ..네! 많이 먹어야죠 하하하...다 먹어야죠 그래야죠! 그래야 어..배도 부르고 영양소도.."

 

 

 

 

시발 나 뭐래.

 

 

나는 들고있던 피자를 입안에 우겨넣고 한개를 더 집었다. 이 찌부된 피자처럼 내 머릿속도 찌부된 느낌이였다. 피자에 뭔 영양소야...그래 뭐 피자가 영양소를 파괴하긴하지 변백현 시발 존나 천재네...진짜 뻥안치고 머릿속이 다 'ㅠ'로 도배된것같다.

 

 

 

 

 

나에게 마실 물까지 건네준 담임은 내가 남은 피자를 다 먹을때까지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 왜저래...엉엉. 피자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이미 넘어간 피자는 내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고있는건 오래전 이야기였고. 아니 그냥 담임이 쳐다봐도 체할것같은데 '게이'인 담임이 쳐다보니 미칠것같다. 저 눈빛에서 난 무엇을 읽고 있나. 난 마저 남은 피자를 눈물과 함께 삼켰다.

 

 

 

 

 

 

"다 먹었어?"

"네...."

"그럼 이제 이야기 좀 하자"

"ㅁ...무슨...무슨 이야ㄱ..."

"어디까지 들었어"

 

 

 

 

 

어디까지의 정의가 대체 뭔가요. 정의를 내려주세요 선생님. 선생님이 애인과 헤어진 이야기를 말하는건가요 선생님이 게이라는 이야기를 말하는건가요. 담임의 시선이 계속 느껴지자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혀로 입술을 축이고 또 축여도 입술은 미친 가뭄이 든것같았다. 으엉 꼭 마주잡고있는 손이 차가워지는게 느껴졌다. 나....긴장하고 있니...? 긴장할때마다 나오는 내 특성들이 다 나오고있다.

 

 

 

 

"무....뭘 말하는건지...."

"...다 들었구나"

"...."

"그래 다 안들었으면 이렇게 긴장할리가 없지"

 

 

 

 

 

담임이 자신의 왼손 약지에 끼어져있는 반지를 빤히 쳐다보다가 슥 빼서 내 앞에 놓았다. 선생님 이건 또 무슨 의미인가요. 절 말라죽일생각이신가요. 정말로 담임의 행동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너가 방금 본 여자는 내 애인이였어"

"...."

"결혼할 생각이였지. 상견례까지 끝냈었으니"

"....아..."

"근데 못하겠더라. 너무 미안해서"

 

 

 

 

죽어도 걔가 좋아지지않아서.

 

 

담임은 괜히 담배각만 만지작 거렸다. 지금 담배가 너무 땡기는데 내 앞이라 꾹 참고있는게 느껴졌다. 나 담배냄새 존나게 싫어하는데 이러면 피라고 해야될것만 같잖아...!!! 나는 담임의 말과 행동 둘다에 신경을 쓰느라 돌아버릴것같았다. 아 썅 진짜로 뛰쳐나가고싶다. 왜 내게 이런이야기를 하는거야. 왜!!

 

 

 

 

"너가 들은것처럼"

 

 

 

 

아 이대로 나갈까. 나가는게 내 미래에 좋을것같은데 뒤에 말이 예상되는데 들으면 안될거같은데...!!

 

 

 

 

"내가 남자를 좋아하거든"

 

 

 

 

순간 시간이 일시정지라도 된것처럼 느껴졌다. 아까 들었을때랑 직접 내게 당사자가 직접 말해줄때랑은 느낌이 너무나도 달랐다. 세상에 커밍아웃을 듣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는 평생 못들을줄 알았는데 그걸 그 누구도 아닌 담임에게 듣게 되다니. 그것도 나랑 사이가 좋은것도 아닌. 그저 선생과 학생1의 관계인 그런 사람에게

 

 

 

 

 

나는 여태껏 살면서 주변에 게이라는 인물을 둬본적도 생각해본적도 없는 사람이였지만 편견을 가지고있진 않았다. 그러니까. 더럽다고 불쾌하다는 생각을 가지고있지않았다. 이유는 내 대부분의 삶에 영향을 끼친 인물, 형의 역할이 컸다.

 

 

 

 

 

형이 19세였고 내가 9세 였을때, 그니까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였지만 나는 너무나도 생생히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아침이였는데도 너무나도 더웠던 그 여름방학에, 고3이라 자습을 나가야한다며 문앞에 선 형이 오늘은 빨리 집에 돌아와 나와 놀아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나간 날이였다. 나는 그 날 하루종일 형이 언제올까 시계만 보고있었다.

 

 

 

 

그리고 오후에 잠시 잠이 들었을때 나는 미친듯이 크게 울리는 사이렌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무서운 마음에 재빨리 거실에 나가 베란다를 확인하니 구급차가 엄청 급하게 달려가고있었다. 에이 뭐야. 나는 놀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계를 확인했다 3시. 아직 형이 돌아오기까지는 3시간이 남은 시간이였다.

 

 

 

 

 

그리고 나는 어두컴컴해진 하늘을 보며 눈물을 꾹 참고야만했다. 6시가 지난지는 한참이였다. 시침은 9시를 향해있었고 빗방울이 굵어진지는 1시간이 지나있었다. 형아..., 나는 출장을 가신 엄마랑 아빠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두분은 그저 고3이니 그렇다고. 백현이는 이제 다 컸으니 혼자 잘있을수있을거라고 울지말라고 하시고 끊으셨다. 형이 거짓말을 쳤을리가 없는데. 형은 자습을 하는날이면 자습을 한다고 말할 사람이였다. 놀아준다고 해놓고선 안올 형이 아니란말이야...엄마 아빠 바보. 나는 또 한참을 밖을 내다보며 형이 안오나 오나를 확인하다가 안방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우비를 챙겨입고 한손엔 우산을 쓰고 한손엔 커다란 우산을 집어들었다. 그래 엄마아빠 말대로 나는 다 컸으니까 형을 찾을수있을것이다. 엄마아빠 말의 의도는 이게 아니였겠지만 어린나이에 그렇게 알아들은 나는 비를 뚫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기 시작했다. 공원, PC방, 분식집 다 가봤지만 없는 형에 눈물을 터트릴뻔했지만 나는 최대한 꾹 참았다. 그리고 시선을 고등학교로 돌렸다. 집에서 봤을땐 불이 다 꺼져있었는데.....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걸음을 뗐다.

 

 

 

 

 

그 날 따라 동네 분위기는 뭔가 달랐다. 가는 도중에는 뭔가 형의 고등학교이름이 귀에 많이 들어왔고 고등학교에 거의다 왔을땐 주변에 이상하리만큼 사람이 없었다. 뭐지...? 나는 조금 무서운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교문에 도착했을때 들고 있던 뜀박질을 시작했다. 형이. 내가 그토록 사랑해마다않는 우리 형이 교문앞에 혼자 우두커니 서서 비를 맞고있었다. 형!! 내 부름을 형은 듣지못한건지 미동이 없었다. 형! 나는 다시한번 형을 부르며 바지자락을 잡아왔다. 형은 그제서야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형은 울고 있었다.

 

 

 

 

 

빗물과 섞여 눈물인지 빗물인지 구별이 안갔지만 나는 한눈에 형이 울고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보는 형의 눈물이였다. 내가 형을 다치게했을때도 아빠한테 맞았을때도 성적이 떨어졌을때도 울지않았던 형이였다. 형.....!! 형은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를 꼭 껴안았다. 형의 몸이 사정없이 떨리는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흐...백현아...."

"..왜그래...왜그래 형..."

"백현아 형은 살인자야...형이 죽였어. 내가...흐...내가 죽인거야"

 

 

 

 

저게 대체 무슨 말인지. 나는 곧이어 실신할듯이 울어대는 형을 보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 형 왜그래...!! 형은 내 말에 대답도 않은채 계속해서 울어댔다. 그리고 너무 몸에 무리가 간건지 내 몸에 기대 형은 의식을 잃었다. 그다음엔 기억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구급차에서 울고있었고 형의 몸은 너무나도 차가웠었다.

 

 

 

 

 

겨우 울음을 그쳤을때 연락을 받고 부모님이 달려왔다. 엄마는 형을 붙잡고 미안하다고 우셨고 아빠는 급하게 병원에 있던 남자를 따라갔다. 그리고 나는 슬쩍 그 남자와 아빠를 뒷따라갔다. 대체 무슨 일인지. 왜 형은 그곳에서 울고있었던건지. 좀 구석진데서 멈춰선 남자는 아빠를 보며 자신을 소개했다. 남자의 정체는 경찰이였다.

 

 

 

 

 

 

"오늘 아드님의 학교에서 오후 3시쯤 학생이 자살을 했습니다"

"..뭐라고요?"

"근데, 그 자살한 아이가 아드님하고 친구더라구요. 아까 아드님하고 이야기를 해봤는데 보호자시니 말씀드려야할것같아서요"

"...네"

"자살한 애가 성소수자였던것같습니다. 그래서 친한 친구였던 아드님에게 고민상담을 했는데 아드님이 그 다음부터 피하기 시작하셨나봐요. 그리고 어젯밤에 친구가 아드님과 마지막으로 만나고 오늘 오후 3시경 자살했습니다"

"...."

"오후에 뭔가 상태가 이상했긴한데 가겠다고 해서 그냥 보내줬었거든요...근데 저런상태로 오게 될줄이야..."

".....알겠습니다"

 

 

 

 

아빠가 내쪽으로 다가오는게 보이자 나는 후다닥 다른 골목에 숨었다. 아빠와 경찰이 지나가고 나는 그곳에 서서 한참을 생각했다. 성소수자? 그게 뭐지? 그게 뭔데 우리형을 저렇게 힘들게 하는걸까.

 

 

 

 

 

 

-

 

 

 

 

 

그리고 형은 그날 새벽에 겨우 눈을 떴다. 엄마는 형의 침대에 기대 잠을 자고 계셨고 나는 새벽내내 깨있다가 형을 제일 먼저 반겼다. 형! 내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형을 부르자 형은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여기가 어디야...? 형이 엄마가 깨지않게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여기 병원이야 형! 대체 왜 교문앞에서 비맞고있었던거야? 놀랬잖아!"

"....미안하네...우리 백현이 오늘 놀아주기로했는데 놀아주지도 못하고..."

"그게 문제야? 형은 바보야!"

"...그래 형이 잘못했어...응...형이..."

 

 

 

 

내 말은 형을 질책하려고 한 말이 아니였는데 형은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눈물을 다시 떨구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하고 놀래 황급히 침대위로 올라가 형을 껴안았다. 형 울지마 내가 미안해.

 

 

 

 

"...백현아"

"응? 형 울지마 형 울면 나도 울거같단말이야"

"백현이 너는 나같이 살면 안돼"

 

 

 

 

내 이상은 형이였다. 그건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거라는건 내 내면에서 굳어버린 정의였다. 근데 형은 그걸 부정했다. 대체 무슨소리를 하는거야. 나는 눈물이 날것같았다.

 

 

 

 

"세상엔 많은 사람이 있어"

"...."

"나와 조금 다르다고 이상하다고 사람을 기피하지마 백현아"

"...."

"소수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혀엉..."

"겉은 누구보다도 단단하지만 속은 너무..."

 

 

 

 

형은 더이상 말을 잇지못한채 입술을 꾹 깨물고 끅끅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형은 지켜보는것만으로도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팠다. 할수만 있다면 그 슬픔을 조금이라도 내가 받고싶을정도로 형은 위태로워보였고 약해보였다.

 

 

 

 

"이한아...."

 

 

 

형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더니 결국 목놓아 울아버렸다. 그 울음에 나도 덩달아 눈물이 터졌고 둘의 울음소리에 놀래 깬 엄마가 급하게 간호사 호출버튼을 누르고 우리를 껴안았다. 형은 계속해서 '이한'이라는 이름만을 불렀고 엄마와 나는 의사선생님과 간호사가 들이닥칠때까지 형을 부여잡고 울었다.

 

 

 

 

 

 

-

 

 

 

 

 

 

형은 그 일이 있고 이 후 단한번도 눈물을 보이지않았다. 한층 더욱 성숙해진것같았다. 그리고 형은 항상 내게 말했다. 형처럼 되지마 백현아. 여전히 형의 마음속 한구석에는 '이한'형이 차지하고 있었다.

 

 

 

 

담임은 그저 시선을 담배각에만 둔채 멈춰있었다. 지쳐보였다. 몸도 지쳐보였지만 다 지쳐보였다. 그런 모습에서 나는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이한형을 떠올렸다. 그래, 형이 말했었어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좋아하고보니 그게 남자였을뿐이라고. 나는 숨을 한번 길게 내쉰다음 입을 열었다.

 

 

 

 


"그..애인분에게는 죄송하지만 어쩔수없는거죠. 사람마음이란게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고..."

"...."

"만약에 그 선생님이 여자를 좋아했었어도 그 애인분하고는 잘 안됐을꺼에요. 어...어...왜냐면 쌤은 그사람하고 안어울리거든요! 쌤이 더 잘생겼어요!"

"...."

"아니...아니지 아 제가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고요"

 

 

 

 

 

으아 내가 뭐라는거야. 형이 나에게 말해준것처럼 말하려고 했는데 역시 나는 형에게 안되나보다. 나는 좀 흥분된 머리속을 진정시키고 생각했다. 망했어-. 더 기분 나쁘면 어쩌지. 으앙.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였지만 일단 말의 끝은 내야될것같아서 형이 내게 해줬던 말을 그냥 압축시켰다. 난 몰라

 

 

 

 

 

"...선생님은 사람을 좋아하는거잖아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게 당연한거죠 하핳....나는 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썅 이젠 진짜 뛰쳐나가야겠다. 담임 표정봐 시발 내가 열받게 했나봐. 미치겠다. 그냥 내 1년 포기할래. 이 담임하고는 죽어도 안좋을 운명이였나보다.

 

 

 

 

"저...저 갈게요! 안녕히계세요!"

 

 

 

 

나는 지갑만 황급히 들고 선생님의 집에서 나가 우리집 비밀번호를 눌렀다. 아 썅!! 수전증이라도 생긴건지 비밀번호를 3번이나 틀리고나서야 나는 집에 들어갈수있었다.

 

 

 

 

 

 

 

-

 

 

 

 

 

 

어제 집에 들어가자마자 긴장이 확 풀리니까 먹었던 음식들이 얹힌게 느껴지기 시작해서 나는 속을 다 게워냈고 손도 땄다. 그러고도 조금 더부룩했지만 나는 그냥 침대에 다이빙했다. 형 나 아파. 형에게 문자를 썼다가 그냥 지워버렸다. 형성격에 이렇게 메세지를 부르면 바로 날아올테니까. 지금 내가 아픈게 대수야? 형이 쉬어야지. 그렇게 나는 그냥 그대로 잠에 들어버렸다.

 

 

 

 

 

미친 버릇. 오전 6시를 가리키고있는 시계를 보며 나는 내 자신에게 존경심을 느꼈다. 어제일때문인가 피곤함이 평소보다 X2 된걸 느끼며 나는 밥도 먹고 씻고 옷을 입었다. 피곤하니 옷태도 안사는것같다. 다리가 더 짧아보이는것같아.

 

 

 

 

 

그리고 평소처럼 45분이 될때까지 티비나 볼까 싶어 리모콘을 집어들자 초인종이 울렸다. 뭐지? 찾아올사람이 없는데? 시계를 보니 7시 30분이였다. 이시간에 박찬열일리도 없고 도쌤일리도 없고. 나는 다시한번 울리는 초인종에 황급히 문앞으로 문을 열었다. 누구세ㅇ...

 

 

 

 

"역시"

"..ㅎ...헉...."

"준비 다 했네. 나 피한거 맞았구나"

"아...아뇨...아뇨 그게...."

"빨리 책가방 들고 나와. 같이 가자"

"네?!!"

 

 

 

 

내 반응에 담임은 뭘 그렇게 놀래냐는식으로 날 쳐다봤다. 왜 평소엔 30분에 나왔었잖아. 그래 그랬었지 근데 그게 놀램의 포인트가 아니고...같이...?같이이이이?!!

 

 

 

 

 

"담임명령이다. 5초안에 책가방 가지고온다 실시"

 

 

 

 

5.....4....악!!! 나는 막무가내인 담임의 카운트다운에 소리를 지르곤 재빨리 내 방에 들어가 책가방을 들고 담임의 앞에 섰다. 응...? 나 방금 뭐한거니. 사고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않아 최대한 풀가동시키고있는데 머리위로 뭐가 툭 놓이는 기분이 들었다. 응 뭐지? 하고 쳐다보니 담임이 손을 올린채 쓰다듬고있었다. 헐

 

 

 

 

"잘했어"

 

 

 

 

이건 우리 형밖에 안해주던건데. 형이랑 담임이랑은 뭔가 느낌이 다르다. 내가 지금 똥개짓하고 와서 그런가 뭔가 똥개 쓰다듬는 그런...아니 근데 나 왜 책가방 들고왔지? 이러면 담임이랑 같이 등교하겠다는걸 암묵적으로 동의하는거쟈나 그런거쟈나 악!!!! 이제서야 제대로 돌아가는 뇌에 나는 겉으론 티도 못내고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어제 만나지 말았어야해. 거지같은 피자. 다신 안먹어. 이젠 죽어도 밥먹을거야 전기밥솥에 밥해먹을거라고!!!

 

 

 

 

 

 

 06

 

 

 

 

 

오랜만에 준면이형과 도경수 그리고 크리스형까지 모였다. 장소는 도경수의 집. 모인 이유는 우리에겐 그저그랬지만 도경수에겐 매우 큰일이였던 도경수의 임용고시함격파티였다.

 

 

 

 

"시발 내가!!! 내가 이제 선생이야!!!!!"

 

 

 

 

눈물을 흘리며 포효하는 도경수를 안쓰럽게 쳐다본 우리 셋은 도경수를 냅둔채 상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형 오늘은 무조껀 소주야. 방학보충이다 뭐다 해서 요새 술도 못먹었는데. 내 말에 준면이형은 당연하다며 사가지고온 비닐봉투를 열어재꼈다. 아...역시 준면이형이다. 비닐봉투엔 소주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종인. 형은 고기사왔어. 한우로"

"헐...형 사랑해"

"알아"

 

 

 

 

불판도 세팅하고 소주잔도 세팅하니 이젠 먹을 일 밖에 남지않았었다. 도경수는 아직도 컴퓨터 모니터를 붙잡고 울고있었다. 내가 애들을 가리친다고 시발것들아!!!! 대체 누구에게 하는 욕인건지. 평소 욕을 잘 안하는 도경수가 저러는걸 보니 임용고시가 사람 참 개판만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뭐, 별로 안힘들었던것같은데

 

 

 

 

"아 도경수 그만하고 빨리 와"

"흐윽....그래. 먹고 죽어야지.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먹고 죽어야지!!"

 

 

 

 

컴퓨터 모니터를 놓고선 격하게 고기를 들고있는 크리스형에게 돌진하는 도경수를 보며 나는 혀를 찼다. 아유 병신.

 

 

 

 

-

 

 

 

 

 

시간은 점점 흘렀고 어느새 밖은 새까만 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아...너무 달렸나. 가만히 있어도 띵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멍때리고있으니 크리스형이 물어왔다. 종인 괜찮아? 형의 물음에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준면이형은 술못먹었던거에 무슨 한이라도 맺혀있었는지 끊임없이 입에 술을 털어넣었다. 형 그렇게 먹으면 내일 보충수업 못간다. 내 말에 형은 순간 눈에 쌍심지를 키고 날 노려봤다. 시발놈이 학교밖에서 학교일이야기를 해?

 

 

 

 

"학교일....학교이이일....!!! 나도 한다 학교일!!!! 와!!!!!"

 

 

 

 

아 시발 놀래라....꾸벅꾸벅 졸다가 '학교'라는 단어에 반응해서 벌떡 일어나 소리지르는 도경수를 끌어앉힌 난 도경수입에 고기를 계속해서 쳐박아줬다. 먹고 뒤져버려.

 

 

 

 

 

그렇게 계속 난장판인 술판을 이어가고있을때 집 안 가득 초인종이 울렸다. 뭐지. 나는 살짝 풀린 눈에 힘을 주며 도경수를 쳐다봤다. 누구 올사람 있어? 내 물음에 도경수는 없다며 자긴 왕따라며 눈물을 흘렸다. 정신이 나갔네.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현관문앞에 섰다. 누구세요.

 

 

 

 

"누구긴 누구야! 나다!"

"...나가 누구..."

"아씨 변백현!!! 빨리 문열어 형 추워죽겠어 진짜!!!"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문을 열니 어깨까지밖에 안올것은 어떤 남자애가 나를 올려다보고있었다. 누구지 나 얘 모르는데 변백현이 누구지. 등장한게 도경수가 아니라 나인것에 이 꼬맹이도 놀랜건지 입만 뻐끔뻐끔거리고 있었다. 다시한번 놓아버릴것같은 정신을 붙잡고 꼬맹이를 살펴보니 한 중학생 정도 되보였다. 손에는 김치통을 들고있고.

 

 

 

 

"형...경수형 없어요?"

"...경수...., 있어 들어와"

 

 

 

 

내가 옆으로 살짝 비켜주자 뻘쭘하게 들어오더니 상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리고있는 도경수에게로 도도도 달려갔다.

 

 

 

 

"형!! 뭐야 술먹었어?"

"ㅇ...으...어..어!! 이게 누구야!! 내 제자 백현이 아니야?!!"

"아 무슨 소리야 내가 왜 형 제자야. 형 일어나봐 좀! 나 다시 올라가야돼"

"형 임용고시 합격했어 우리 백현이!! 이제 형한테 국어 배워야지 어이구 내새끼"

"아 합격했어? 근데 꼴이 이게뭐야...암튼 형 김치 여기다 두고 갈테니까 나중에 통 갔다줘 알겠지?"

"갈꺼야?!!"

"어"

 

 

 

 

낑낑거리며 김치통을 식탁위에 올려놓은 꼬맹이의 허리를 도경수가 잡아왔다. 내제자 어디가!! 점점 심해지는 도경수의 추태에 크리스형은 보다못했는지 도경수를 잡아떼고 꼬맹이를 향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한심하게 도경수를 쳐다보고있던 꼬맹이는 이미 뻗어서 바닥과 키스중인 준면이형을 한번 크리스형을 한번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대충 안녕히계세요. 하며 밖으로 쏙 나가버렸다.

 

 

 

 

"도경수 이웃인가"

"...아, 나 알거같아 누군지"

"누군데?"

"경수가 많이 이야기해줬어. 경수 윗집사는애"

"아아...근데 몇살이래. 딱 보면 중딩같아보이는데 도경수한테 형이라 부르네"

"중학생맞아. 요번에 고등학생 된다고했어"

"...뭐?"

 

 

 

 

근데 도경수한테 형이라 그런다고? 나는 잠시 멈춰서서 고1이 몇살인가를 계산해봤다. 고1이면 20살..19살....18살...17...17살? 17사아알? 열일곱인데 형? 우리랑 10살 차이가 나는데?

 

 

 

 

"도경수 미친놈 양심도 없나"

 

 

 

 

나는 크리스형 허리에 매달려 잠이 든 도경수의 궁뎅이를 까줬다. 양심 밥말아먹은 새끼.

 

 

 

 

 

 

-

 

 

 

 

 

개학일이 다가오자 나는 이사를 했다. 고등학교주위에 딱히 마땅한 집을 구해지 못해서 그냥 귀찮은 마음에 차로 1시간 걸리는 곳에서 맨날 출근을 했었는데 일주일전 도경수에게 자신의 오피스텔 윗층에 방이 비었다고 하는것이였다. 딱 마침 계약기간도 끝나갈때라서 나는 고민도 안하고 도경수네 오피스텔과 계약했다. 주차장도 잘되어있었다. 차를 애지중지도 모잘라서 그냥 내 일부분으로 생각하는 나에겐 최적의 장소였다.

 

 

 

 

 

"미친놈 그래서 학교가 코앞인데도 차를 끌고다니겠다?"

"안될건 또 뭐야"

"....야 그 기름값으로 나 밥이나 사줘"

"밥은 뭐 따로 사줄께"

 

 

 

 

내 대답에 도경수는 뒷골을 잡았다. 넌 정말 너네 부모님한테 감사한 줄 알아야해. 고등학교때부터 항상 저말을 해대던 도경수였기에 별 감흥없이 넘어갔다. 그러면서 내가 사주는건 꼬박꼬박 쳐먹잖아.

 

 

 

 

 

"아, 야 근데 너 옆집 나랑 친한 동생이야"
"친한 동생?"

"엉. 몇년전부터 친했더라...기억도 안나네 엄청 친해"

"몇살인데"

"아 걔 요번에 고ㄷ...아 저기온다 백현아! 백훈아!"

 

 

 

 

 

복도에서 키가 큰 남자와 작은 남자 둘이 나란히 분리수거통을 들고 오고있었다.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저희가 들리도록 크게 웃으면서. 나는 짐정리를 하기위해 숙였던 허리를 피고 다가오는 둘을 쳐다봤다. 도경수가 손을 번쩍 들어 흔들자 저쪽에서도 흔드는게 보였다.

 

 

 

 

그리고 둘이 점점 다가올수록 나는 키가 작은 남자애에게서 뭔가 익숙함을 느꼈다. 어..뭐지....어디서 많이 본것같은데....미간을 좁히고 골똘히 생각했다. 도경수는 다시한번 둘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서 키가 작은애를 폭 껴안았다. 백현아! ..백현이...백현이...아!!

 

 

 

 

 

"도경수 백현이네 학교 선생님이라며?"

"어!! 내가 이제 백현이 가르친다. 나한테 잘해"

"형이 왜 선생님한테 잘해요. 형은 나한테만 잘하면 되는데"

"으아!! 백훈아 들었어? 백현이가 나보고 선생님이래!"

 

 

 

 

경수가 귀엽다는듯이 백현이라는 애의 볼을 마구 부벼댔다. 꼬맹이는 그 행동이 마음에 안드는지 입을 뎃발 내밀고선 하지말라고 빽 소리를 지르고 옆집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옆집이라… 나는 잠시 옆집의 대문을 바라보다 툭툭치는 손길에 경수를 바라봤다. 아 왜.

 

 

 

 

"아 인사하라고. 이쪽은 너 옆집에 사는 변백훈! 우리랑 동갑이고, 이쪽은 내 친구 김종인!"

"아 안녕하세요"

"아..네 안녕하세요"

 

 

 

 

옆집인데 사이좋게 지내요. 백훈이라는 사람이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키도 훤칠하니 잘생겼다. 나는 똑같이 웃으며 말했다. 네 잘지내요.

 

 

 

 

 

짐정리를 끝내고 나는 도경수에게 고마우니 고기나 사오라고 카드를 쥐어보낸 다음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선 문득 떠오른 옆집꼬맹이를 생각했다. 변백현. 고등학교입학한다고했지. 나랑 10살 차이나고. 꼬맹이의 형은 나랑 동갑이고.., 그제서야 왜 도경수에게 형형거렸는지 알것같았다. 형이 나이차이가 많이나니까. 거기다가 사이도 엄청 좋아보이던데.

 

 

 

 

앞으로 저쪽에서 이사를 가지않는이상 몇년은 같이 붙어살것같은데 거기다가 그 고딩이 우리고라고 했고...이사를 가던안가던 3년은 마주치겠는데 떡이나 돌려볼까. 나는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냥 떼려쳤다. 귀찮게. 그냥 선생과 학생관계로 지내는게 좋지 친해져봐야...., 음. 별 도움은 안될것같은데. 나한테 편하고 친한사람은 그냥 준면이형, 크리스형, 도경수 그리고....

 

 

 

 

 

무심히 왼쪽에 끼어진 반지만을 바라보고있으니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와 함께 도경수가 낑낑거리며 들어왔다. 근데 목소리가 도경수 하나가 아니다. 뭐지, 나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서 현관문으로 나갔다. 그리고 허,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김종인 이새끼 이제 선배고 뭐고 없어...시발 선생 똑같이 됐다 이거지"

"뭐야 셋이 어떻게 만났어?"

"나랑 준면이랑 소주한잔 먹자고 경수한테 전화했더니 둘이 고기먹을라고 했다며?"

"허....집들이는 다음에 하려고했는데"

"당연히 집들이도 해야되는거아니냐?"

 

 

 

 

어우 추워, 준면이형이 외투를 벗어던지며 상을 폈다. 아, 미치겠다 진짜. 나는 계속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래 마시고 죽자.

 

 

 

 

 

 

-

 

 

 

 

 

오늘도 어김없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섰다. 그리고 어김없이 변백현은 내게 인사를 안했다. 그저 묵묵히 엘리베이터의 층수만을 보고있었다. 뭐지 진짜. 개학을 하고 학교를 다니면 이애랑 내가 선생과 학생의 관계가 될줄알았는데 그러긴 개뿔 어색한 이웃의 관계였다.

 

 

 

 

 

그리고 변백현은 1층을 눌렀고 나는 지하 1층을 눌렀다. 변백현보다 조금 뒤에 서서 얘는 대체 뭘까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바로 아래층에 내려오자마자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아 썅. 뭔가 다음 전개가 예상되는데.

 

 

 

 

"오 백현이!"

"안녕하세요 도쌤"

 

 

 

 

변백현의 인사를 받고 도경수는 나를 확인한다음 확 얼굴에 웃음이 서렸다. 그리고 큭큭 대며 인사를 생략하고는 내 옆에 서서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아 이새끼 지금 나 놀리고있는거 맞지? 1층에 도착할때까지 참을인을 삼십번정도 새긴다음 변백현이 엘리베이터를 나가자마자 도경수의 정강이를 깠다. 아 완전 아파!! 도경수가 째려봤다.

 

 

 

 

"그러게 왜 놀려"

"아니 웃기잖아. 오늘도 인사안했지 그랬지?"

"....어"

 

 

 

 

아 진짜 웃겨! 도경수가 눈물이라도 흘릴것처럼 웃어댔다. 얄미워 죽겠네 진짜

 

 

 

 

 

"지금이 몇월달이지? 10월달 아닌감? 그렇다면...벌써 김종인이 인사를 못받은지 7개월이 지났단 소리가 아닌가?"

"병신아 방학은 빼"

"왜!! 보충때도 만났었잖아!"

 

 

 

 

도경수에 깐족거림에 나는 다시한번 발을 들어 정강이를 깠다. 악 진짜 아프다고! 도경수는 징징거리며 아주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올라탔다. 나한테 기름값 아깝다 난리를 치더니 정작 나보다 차타는걸 더 좋아한다.

 

 

 

 

"기름값 아깝다며 걸어가"

"야 맨날 타는것도 아니고 나 가끔씩 빨리 나오면 타는건데!"

"어쩌라고 걸어가"

"밖에 춥단말이야~"

 

 

 

 

역겨운 애교 집어치워. 내가 정색을 하며 말하자 도경수는 더욱더 입모양을 하트로 만들어서 웃었다. 왜 귀엽냐? 아오 말을 말지.

 

 

 

 

"근데 야 진짜 백현이가 왜 인사를 안하지? 걔 그럴애 아닌데"

"그럴애 아닌건 또 뭐야. 인사 안하잖아"

"....너가 선생인걸 모르는게 아닐까?"

"뭐?"

"봐봐, 너 올해 3학년담당이잖아 3학년 교무실은 5층에 있고 백현이네 반은 2층이야!"

"더 말해봐봐 어디한번"

"1학년 교무실은 신관에 있고 본교무실은 2층에 있고 보건실도 2층에 있는데 어떤 미친 1학년이 3층 이상을 올라가냐?"

"그래도 모를수가 있냐? 오다가다 한번은 다 마주쳐. 그리고 나 저번에 1학년 보충도 들어갔었어"

"그때 백현이 있었어?"

 

 

 

 

나는 잠시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기위해 머리를 굴렸다. 있었나. 없었나. 아니 있고 없고를 떠나서 내가 2층을 안간것도 아니고 등교할때 볼수도 있고 하교할때볼수도 있는거 아닌가? 한번도 못마주치는게 더 확률이 적겠네. 나는 계속 옆에서 '변백현이 내가 선생인걸 모른다' 라는 가정의 근거를 종알종알 말하고 있는 도경수에게 닥치라고 말한다음 정문을 통과했다. 저 멀리서 변백현이 친구와 함께 걸어오는게 보였다. 모를리가 없어. 그냥 인사를 안하는걸꺼야.

 

 

 

 

 

-

 

 

 

 

"10번 변백현"

"...."

"뭐야 변백현 없어?"

"아..아뇨!! 여기요!"

 

 

 

 

 

변백현의 반응에 웃음이 터질뻔한걸 겨우 참았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게 꾸벅거리며 인사를 하는모습에 나는 크게 웃고싶은걸 참고 픽 웃은다음 다음번호를 불렀다. 도경수 너가 맞았네. 몇달내내 끝없이 주장했던 '변백현은 김종인선생을 모른다' 설이 사실이였다는게 밝혀지는 순간이였다.

 

 

 

 

그리고 나는 깔끔하게 변백현에게 가지고있던 조금의 비호감을 풀어버렸다. 몰랐었으니 된거지. 근데 변백현은 그게 아닌건지 다음날부터 괜히 교무실에 와서 준면이형 주변을 얼쩡거렸다. 시선은 나를 향한채로. 일부로 귀찮은 마음에 올때 한번씩만 쳐다봐주고 말았는데 일주일을 꼬박꼬박 그렇게 찾아왔다. 마치 학기초만 되면 내가 자주 찾아오던 여학생들같다. 인사를 안한게 그렇게 신경쓰이나. 하긴 1년동안이였으니까 그것도 이젠 담임이 됬고. 변백현을 잡고 나 이제 괜찮다고 말할수도 있긴했는데 변백현이 준면이형을 괴롭히고 준면이형이 짜증내는게 너무 재밌어서 그냥 냅뒀다.

 

 

 

 

"시발 변백현...졸려 죽겠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귀여워하잖아"

"어"

"하!"

"요새 너때문에 계속 찾아오는게 짜증나긴하지만 작년담임한테 저렇게 사근사근히 잘대하는애 별로 없잖아"

"하긴..."

"그니까 시발아. 빨랑 변백현한테 너 괜찮다고 말을 하던지해. 미칠것같으니까"

 

 

 

 

준면이형이 눈에 쌍심지를 키고 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난 그런 형을 보며 최대한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 싫은데? 곧이어 준면이형의 발이 날아왔다.

 

 

 07

 

 

 

오랜만에 마트를 들려 장을 봐오고 정리를 하고 있을때 초인종소리가 울렸다. 풀던 짐을 잠시 내려다두고 현관문을 향해 걸어가는데 그새를 못참고 밖에 있는 사람은 주먹으로 문을 쾅쾅 두드렸다. 그 소란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뿌려졌다. 누구세요. 잔뜩 낮은 목소리를 내며 문을 여니 도경수가 서있었다. 뭐냐

 

 

 

 

"어디갔다왔길래 전화도 안받아?"

"마트, 전화했었어? 몰랐네. 근데 그거때문에 이렇게 화난거냐?"

"....수현이 왔다갔어"

"..아"

 

 

 

 

언제? 머쓱하게 물어오는 내 질문이 도경수는 마음에 들지않는건지 인상을 팍 구겼다. 그리고는 나를 팍 밀치고 내 집에 들어왔다. 아 뭐야. 내가 짜증난다는 어투로 말을 하자 도경수는 닥치라며 소리를 질렀다.

 

 

 

 

 

"너"

"응"

"수현이한테 헤어지자고 했다며"

"...수현이가 말해줬어?"

"그래 시발놈아"

 

 

 

 

 

대체 너에게 5년은 무슨 의미야?

 

 

5년이라. 나는 도경수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고 반지를 쳐다봤다. 5년전 나는 수현이의 고백과 함께 애인이라는 사이가 되었고 함께 여행도 갔고 함께 티비도 봤으며 키스도 했고 섹스도 했고 결혼약속까지 했다. 나는 철저히 5년동안 그아이를 좋아하려고 애를 썼다. 밤이면 항상 떠오르는 다른애의 얼굴을 밀어내고 수현이의 얼굴로 겨우겨우 가득채웠다. 근데,

 

 

 

 

 

"도경수"

"왜!"
"경수야"

"...."

"루한이가 결혼한대"

 

 

 

 

 

나 어쩌지? 나는 탁상위에 가만히 올려져있는 일주일전에 받은 청첩장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어쩔까 경수야. 내 말에 도경수는 미친놈이라며 또한번 소리를 질렀다. 그래 난 미친놈이고 천하의 썅놈이다.

 

 

 

 

"청첩장 받자마자"

"...."

"수현이한테 너무 미안해졌어"

"병신...."

"5년동안 나는 철저히 수현이만을 좋아하려고 했고 성공한줄알았는데"

"...."

"저 종이쪼가리하나에 무너졌어"

 

 

 

 

 

눈물은 흐르지않았다. 속은 곪아서 이미 문들어졌는데 아파죽겠는데 눈물은 흐르지않았다. 대신 도경수가 눈물을 보였다. 도경수는 내마음을 눈으로 대신 읽어주는것같았다. 10년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

 

 

 

 

 

 

다음날, 수현이는 또한번 내게 찾아왔다. 잠시 준면이형이 학교일로 볼일이 있다고 해서 가는 길에 딱 마주쳤다. 수현이는 날 콱 잡아왔고 부들부들 떨었다. 왜그래 수현아.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몇주전의 나처럼 손을들어 수현이를 안아주지않았다. 아니 못했다.

 

 

 

 

"이야기 좀 해"

"....밖이잖아. 진정하고 다음에 하자, 나 갈곳있어"

"싫어! 나 미칠것같으니까 지금 여기서 이야기 좀 하자고!"

 

 

 

 

어쩌지. 손이 파래질정도로 내 옷자락을 꼭 잡은 수현이를 내려다보며 생각하다가 나는 그냥 준면이형을 포기했다. 내일 한소리 듣겠지만, 이 일보다 중요한것같지는 않았다.

 

 

 

 

"말해 밖이니까 침착하고..."

"너한테 5년은 대체 무슨 의미였어?!"

 

 

 

 

도경수랑 똑같이 물어온다.

 

 

 

 

 

"..수현아"

"나는 너가 오년...오년동안 날 대해주는걸보고 날 좋아하는줄 알았어..."

"미안해"

"결혼하는게 싫어진거야? 내가 질린거야? 아니면 다른 여자가 생긴거야? 응? 제발 이유라도 말해줘"

"...알고있잖아 내가 왜 그러는지"

"몰라!! 김종인 난 모르겠어, 차라리 여자가..여자가 생겼다고....."

"..안수현"

"차라리 여자가 생겼다고해...그냥 내가 질린거라고...."

"안수현!!"

 

 

 

 

 

다알고있잖아.

 

정답을 알면서도 최대한 그 사실을 부정하려하는 수현이의 모습에 눈물이 차올랐다.

 

 

 

 

 

 

"...내가 남자 좋아하는거 알고있었잖아"

 

 

 

 

 

 

 

안수현은 내 모습을 항상 다시끔 되새기게 해준다.

 

 

 

 

 

 

 

"종인아 그것도 병이야...정신병이랬어. 내가 고쳐줄게 응?"

 

 

 

 

그리고 똑같은 말을 반복인다. 병. 10년전에도 안수현은 나를 알고나서 병이라고 치부했다. 너가 루한이를 좋아하는건 병이야. 잘못된거야 종인아. 난 그말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자책했었는지.

 

 

 

 

"10년동안 넌 정말 변한게 하나도 없다."

 

 

 

 

 

내 말에 눈물을 터트린 수현이는 날 다그치다가 내 옆으로 휙 지나가버렸다. 따라가야하나, 반자동으로 수현이가 간곳으로 몸은 돌렸지만 발걸음이 떼지지않았다. 미치겠다. 약간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니 수현이가 누군가 부딫치는게 보였다. 수ㅎ..!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수현이는 부딪친사람도 쳐다보지않고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 미치겠다.

 

 

 

 

 

계속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크러트리고있는데 수현이랑 부딪친 사람이 뭔가 이상했다. 뒤에서 봐도 딱 경직되보이는게...혹시. 불안한 마음이 발끝부터 스물스물 올라왔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그 사람의 뒷모습을 쳐다보니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이였다. 몇달전까지 내가 항상 봐왔던 뒷통수.

 

 

 

 

 

 

"....변백현"

 

 

 

 

 

변백현이였다.

 

 

 

 

 

 

 

 

 

-

 

 

 

 

 

 

 

 

토할것같다는 얼굴로 피자를 먹어대는 얼굴은 꽤나 웃겼다. 불편하겠지. 나라는 사람도 불편할텐데 '게이'라는 것까지 더해졌을테니까. 나는 한참을 가만히 변백현을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들었어? 내 말에 변백현의 표정은 더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체하겠네. 변백현의 상태를 보고있자면 이런이야기를 꺼내고 싶지않았고 -더체할테니까- 나도 내 이야기를 하는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였지만 나는 변백현의 앞에서 내 이야기를 했다. 아주 일부분이지만. 내가 느꼈던거에 아주 미세한 정도였지만

 

 

 

 

 

 

"내가 남자를 좋아하거든"

 

 

 

 

 

변백현은 먹던걸 그만두고 날 쳐다봤다.

 

 

 

 

 

 

 

 

그리고 변백현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어딘가 다른 생각에 빠진것같기도 했다. 김종인 병신. 아니라고 해명해도 바쁠때 뭐라 한건지. 겉으로는 태연한척있었지만 속으로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무리 힘들다고해도 도경수나 준면이형, 크리스형이 아닌 사람한테까지 이걸 말할줄이야. 시발 제발 시간이 되돌아갔으면 좋겠다.

 

 

 

 

 

한참을 속으로 스스로를 욕하고있을떄 변백현이 언제 정신을 차렸는지 내 앞에서 슬쩍슬쩍 내 눈치를 보는게 느껴졌다. 아, 담배피고 싶다. 정말 절실히 흡연욕구가 쏟구쳤지만 참았다. 변백현이 지금 당장 우리집을 뛰쳐나가 동네를 뛰어다니며 김종인은 게이다 라고 외쳐도 할말없다. 내가 말했으니까 담뱃갑은 하도 만졌더니 끝부분이 너덜해져가고 있었다. 

 

 

 

 

 

 

"그..애인분에게는 죄송하지만 어쩔수없는거죠. 사람마음이란게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고..."

 

 

 

 

 

 

예상외로 꽤나 멀쩡한 억양에 고개를 들었다.

 

 

 

 

 

 

"만약에 그 선생님이 여자를 좋아했었어도 그 애인분하고는 잘 안됐을꺼에요. 어...어...왜냐면 쌤은 그사람하고 안어울리거든요! 쌤이 더 잘생겼어요!"

"...."

"아니...아니지 아 제가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고요"

 

 

 

 

 

변백현은 제말에 당황스러운지 인상을 구기고 끙끙댔다. 근데, 이건 확신하는데. 지금 이상황에서 나는 변백현보다 한 백배정도 더 당황했다.

 

 

 

 

 

"...선생님은 사람을 좋아하는거잖아요"

 

 

 

 

 

 

그리고 나는 담뱃갑을 만지던 손조차 멈춰버리고 변백현을 쳐다봤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게 당연한거죠...하며 아까와같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변백현에게 나는 같이 웃어주지못했다. 내가 지금 18살인지 28살인지를 모르겠다. 지금 내 앞에 있는게 변백현인지 루한인건지.

 

 

 

 

 

변백현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할것같은데 입이 안떨어졌다. 그리고 변백현은 그런 내가 화가 난거라 생각한건지 표정이 새파랗게 질려서 집을 뛰쳐나갔다. 나는 변백현이 집을 나간뒤로도 1시간정도를 그냥 우두커니 제자리에 앉아있었다.

 

 

 

 

'종인. 너는 그냥 사람이 좋은 거잖아'

 

 

 

 

너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있는 나에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건 그냥 자연스러운거지'

 

 

 

 

루한 너는 그렇게 말했었다.

 

 08

 

 

 

 

 

 

어젯밤 나는 잠들기전까지 걱정했다. 담임 엄청나게 화난것같은데 이제 1년동안 어쩌지? 나 좆된거지? 아니 그러게 담임은 왜 내게 그말을 한걸까. 아니 그전에 왜 난 담임의 말을 들은걸까. 끙끙댔단말이다. 정말로 모든걸 다 걸고 말하는데 나는 지금 이상황처럼 선생과 학생의 훈훈한 분위기는 생각조차 안했다.

 

 

 

 

"내려"

"ㅇ..아..넵"

 

 

 

 

긴장하고 있어 한껏 뻣뻣해진 몸을 움직여 안전벨트를 푸르고 차에서 내렸다. 걸어서도 15분거리인데 차까지 타고오니 5분도 안걸렸다. 대체 왜 차를 타고 다니는거지...? 의문이 미친듯이 들었지만 나는 묻지않았다. 아니 못했다. 시발 좀 어색해야지...

 

 

 

 

"그럼 종례때 보자"

"ㄴ...넵..."

 

 

 

 

나와 같이 교무실앞까지 올라온 담임이 또한번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교무실로 쏙 들어갔다. 나는 그제서야 굳어있던 몸을 풀수있었다. 뭔데!! 신종 괴롭힘인가. 이렇게 내 1년을 말라죽이려고 하는건가. 나 왜 어제 쓸데없이 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한거지 으아아아! 교무실앞에서 소리도 못내고 발만 동동 구르고있으니 변백현!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고개를 살짝 드니 김종대가 저를 향해 뛰어오고있었다.

 

 

 

 

"미친 변백현!"

"..뭐야아..."

"다 봤어 새끼야! 너 뭐야? 주말사이에 대체 무슨일이 있던거야! 아니 주말도 우리랑 있었잖아! PC방에서 나오고나서 무슨일이 있던거냐고오!!"

"아씨 시끄러!"

"아 대답좀해! 대체 수학하고 어떻게 된거야?"

 

 

 

 

왜 너가 수학하고 같이 등교를 하냐고! 수학차에서 내리는것도 다봤어! 흥분했는지 큰 목소리로 복도가 울릴정도로 말하는 김종대의 입을 황급히 막았다. 미친놈아! 나는 김종대의 입을 계속 꾹 막은채 우리반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손을 치웠다. 아 시발 짜잖아 김종대가 인상을 팍 쓰고 말하다가 다시 질문했다. 빨랑 다 불거라.

 

 

 

 

"아 옆집이잖아, 그니까 친해지지..."

"지랄하고 자빠졌네. 1년 동안 인사씹고 다니신 변백현씨가"

"아 진짜!"

"아 빨랑 말해줘. 일요일아침까지만해도 어색했다며? 너가 라면먹으면서 징징댔잖아"

"일요일 오후부터 친해졌어"

"그니까 어떻게!!"

 

 

 

 

김종대가 교복을 붙잡고 늘어졌지만 나는 그냥 무시하고 내자리로 와서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말 좀 걸지마 김종대야 시발 나도 오늘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않으니까...., 절대 말하지않겠다는 나름의 의사표시를 계속 할때 뒷문으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안봐도 뻔하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박찬열과 정수정이였다. 나는 고개도 들지않았고 나대신 김종대가 둘을 반겨줬다. 야 시발 대박사건!

 

 

 

 

 

"뭔데"

"변백현 성공했다"

"뭘"

"수학하고 친해지기!!"

 

 

 

 

그리고 김종대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정수정에 의해 멱살이 잡힌채 일어나야했다. 야이 망할 계집애야

 

 

 

 

 

"뭐?!!!"

"오늘 변백현 수학 차타고 옴. 그리고 교무실 들어가기전에 머리도 쓰다듬어주던데"

"니가 우리 쫑하고 어떻게 친해진거야! 왜 이런 변백현이 나보다 빨리 친해진거지??"

"쫑은 뭐야"

"김종인쌤. 우리 쫑"

"미친 나 소름돋았어"

 

 

 

 

정수정 변태년은 내 멱살을 잡고 계속 쫑을 외쳤다. 그리고 박찬열은 쫑이 뭐냐며 개새끼 이름도 아니고 하면서 정수정을 갈구다가 날 쳐다봤다. 그리고 김종대랑 똑같이 물어왔다. 주말엔 어색했지않냐고. 근데 얘네가 뭘 착각하는거 같은데. 지금도 어색하다. 주말에도 어색했지만 지금도 어색하다고. 아니 따지고보면 시발 지금이 더 어색해!!

 

 

 

 

"아 말해달라고오!!!!"

 

 

 

 

이젠 거의 목까지 졸라오는 정수정을 허망하게 쳐다봤다. 시발 정수정아. 너도 담임의 성정체성을 알게되면 친해질 수 있을거야. 하지만 이건 절대로 말 못하지. 나는 입을 괜시리 다시한번 꾹 닫았다. 아, 미치겠다 진짜.

 

 

 

 

 

-

 

 

 

 

 

사주면 말해준다며!!! 뒤에서 김종대가 짜증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벼엉신. 그걸 믿냐? 내말에 김종대는 발만 동동 굴렀고 박찬열은 그럴줄알았다며 혀를 찼다.

 

 

 

으아 배부르다. 나는 김종대의 지갑을 털어서 산 쥬시쿨 930ml 짜리를 두손으로 쥐고 먹었다. 이렇게 큰게 천원밖에 안한다니. 나는 항상 느끼는 쥬시쿨의 고마움을 다시한번 느꼈다. 착한 가격. 착한 맛. 김종대는 아이스크림, 박찬열은 콜라 이렇게 먹으며 반으로 들어가자 내 앞번호인 동석이가 날 찾고있는게 보였다.

 

 

 

 

"아 변백현 어디갔다왔어!"

"이거 사러. 그렇게 보지마라. 안줄거야"

"달라고도 안해 새꺄. 담임이 내려오래"

"헐 왜?"

 

 

 

뭐지, 담임 얼굴보기 어색해죽겠는데 왜 또 부르는거지. 이거 내가 게이라는거 소문내고 다닐까봐 나 견제하는건가 썅 그런건가 그런거라면 당장 가서 아니라고 절대 안할거라고 약속을 해야..

 

 

 

 

"어제부터 상담시작했잖아 병신아"

"아하"

 

 

 

 

뭐야, 괜히 쫄았네. 나는 머쓱하게 뒷목을 쓰다듬으며 동석이에게 물었다. 언제 내려오랬는데? 지금당장. 그리고 동석이는 아직 책상에 쥬시쿨을 두지도 못했는데 나를 끌고 질질 교무실로 데려갔다. 아 미친 쥬시쿨은 놓고가자!! 그래도 이미 날 찾느라 빡친 동석이는 내말을 무시하기로 마음먹은지 오래였던것같다.

 

 

 

 

 

그리고 나는 꼼짝없이 쥬시쿨을 두손에 고이 들고 담임의 앞 의자에 얌전히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옆에 있던 준면쌤은 내 꼴이 뭐가 그렇게 웃긴지 책상에 엎어져서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아나...나는 괜히 준면쌤을 한번 째려보고는 날 쳐다보는 담임에게 핳하..하고 이젠 담임용 웃음이 된 어색웃음을 흘렸다.

 

 

 

 

 

"음료수, 특이한거 먹네"

"아..이게 가격대비용으로 좋아서..."

"뭔 넌 일학년때랑 달라진게 없냐? 미치겠네 진짜"

 

 

 

 

반애들 이름도 기억못했으면서 내가 먹던 음료수는 어떻게 기억을 하는건지 나는 쥬시쿨을 가르키며 끅끅대는 준면쌤이 너무나도 약올랐다. 웃지 좀 마요 쌤...내 말에 준면쌤은 다시한번 책상에 얼굴을 박았다.

 

 

 

 

"준면선생님은 신경쓰지말고, 선생님이 백현이 성적표 좀 봤는데.."
"ㄴ...네.."

"국어도 영어도 탐구성적도 다 좋은데"

 

 

 

 

꿀꺽,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아 그나마 준면쌤은 영어담당이라 상담할때 부담이 안됐었는데.

 

 

 

 

"수학은.... 형편없네"

 

 

 

 

 

담임이 돌직구에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죠. 제 수학점수가 형편없긴 하죠. 시발 내가 왜 이과를 왔을까...., 김종대와 박찬열이 뜯어말릴때 문과로 갔을껄.

 

 

 

 

 

"수학공부 안하니?"

"아뇨...하는데..."

"음, 그래...학원은 다녀?"

"아뇨 다녔었는데 그냥 끊었어요"

"왜?"

"성적이 안올라서..."

 

 

 

 

 

수학얘기 그만했으면 좋겠다. 엉엉. 나는 슬쩍슬쩍 보이는 내 수학점수에 눈물이 나올것같았다. 시발 수학 만든새끼 다 나와 내가 한대씩 다 때려줄거야.

 

 

 

 

"그럼 이렇게 하자"

"네?"

"백현이 너는 수학점수만 올리면 다 될거같으니까"

"네..."

"내가 도와줄게"

"...ㄴ..네?"

"담임이 수학일때 잘 써먹어라. 중간고사도 얼마 안남았잖아"

"아니..아 그래도.."

"또 옆집이니까 학교끝나고도 물어볼수있잖아. 물어봐"

"네?!"

"...뭘 그렇게 놀래"

 

 

 

 

그럼 안놀래요? 나는 눈을 꿈뻑꿈뻑 뜨고 담임을 쳐다봤다. 아니 그니까 옆집이니 모르는게 생기면 물어와라. 학교가 아니여도 이뜻이잖아. 뭐야 왜 갑자기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거지? 진짜로 나 피말려 죽게하려고 하는건가? 엉엉 담임한테 소문안낼꺼라고 말을 해야하나 어째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있을때 담임이 책상을 뒤지더니 내앞에 몇권의 책을 딱 놔줬다.

 

 

 

 

"풀어"

"네?"

"그거 풀고 모르는거있으면 알려줄게"

"아니 괜찮은데 정말요..."

"푸나 안푸나 검사도 할거야. 그럼 가봐, 다음교시에 11번 내려오라고 하고"

 

 

 

 

정말 반억지로 받게된 3권의 문제집을 들고 나는 목소리를 겨우 쥐어짜내서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이게 뭐야. 나는 하루아침에 변한 담임의 행동에 사고회로가 딱 멈춰버린 느낌이 들었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건지 단 한개도 모르겠다. 으아...손에 들린 문제집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

 

 

 

 

 

이걸 풀어 말아. 나는 정수정이 짜증난다며 다 찢어버리겠다고 난리치던걸 겨우 구해낸 문제집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제 담임이 다시한번 나한테 풀라고는 말하긴했는데...솔직히 담임과 나 사이가 방과후에 따로 만나 공부를 할 사이인가? 내가 예상했던거로는 그 일이 있고나서 담임이 날 피하던가 날 협박하던가 그 둘 중 하나였는데...엉엉. 이렇게 날 피말려죽게하는건 내 보기에 없었단말이야.

 

 

 

"복받은새끼"

"...뭐야...왜 또 시비야"

"야, 들어봐. 내가 니 말 듣자마자 그냥 담임한테 내가 당장 상담을 하겠다. 해서 상담하러갔었거든?!"

"엉"

"근데 뭐라는 줄 알아? 그냥 수학 열심히 하래! 그!냥! 아오! 난 왜 문제집을 안주는거지?"

"병신아 그것도 모르겠냐"

"뭐"

"담임이 니 변태인거 알고 일부로 그러는거잖아"

 

 

 

 

죽어 박찬열. 변태가 맞으면서 변태라하는걸 제일 싫어하는 정수정은 여태껏 자신이 배워온 모든 기술들을 박찬열에게 날리기 시작했다. 아 미친! 그리고 박찬열은 그런 정수정을 차마 맞써 때리지는 못하고 복도로 도망쳤다. 안시끄러운날이 없네. 둘이 나가자 그제서야 찾아온 반의 조용함에 조금 노곤해질때쯤 뒷문이 쾅 열리더니 시끄러운애2가 등장했다. 시발. 쟤는 지네반 냅두고 왜 자꾸 우리반으로 오는건지

 

 

 

 

"작작 좀 올래?"

"야 우리반에 있어봐. 숨막혀죽을거같아"

"우리반와도 딱히 아는 여자애들 없잖아"

 

 

 

 

그래도 공기자체가 다르다고 중얼거린 김종대가 내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어우 웬수같은 놈. 나는 김종대를 무시하고 다시 문제집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걸 풀어 말아! 내가 인상을 찌뿌리고 문제집을 노려보니 김종대도 덩달아서 문제집을 노려봤다. 넌 뭔데 노려봐.

 

 

 

 

 

"이거라도 노려보면 너랑 수학이랑 어떻게 친해졌는지 알수있을까해서"

"아직도 안포기했냐?"

"포기는 했지. 넌 진짜 천하의 소심한놈이야"

"그래그래"

 

 

 

 

내 성의없는 대답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김종대는 책상위에 있던 노트 귀퉁이를 마구 찢어 내게 던졌다. 아이 미친놈이 그 노트 내짝꺼야!! 내가 동그랗게 뜨고 말리자 그제서야 노트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는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돌렸다. 진짜 썅놈이다.

 

 

 

 

 

"문제집 풀었어?"

"말돌리는 솜씨가 조물주급이다"

"아 풀었냐고. 검사는 맡았고?"

"..아니...야 근데 나 이거 진짜 풀어야되냐?"

"풀라했다며 담임이"

"......그렇긴하지만.."

"야 난 지금 너의 반응이 이해가 안가. 어제도 그랬지만 너 담임이랑 친해진게 싫어?"

 

 

 

 

담임이 너 신경써주는건데 니가 마다할이유가 없잖아.

 

형을 잊은거냐며 형 브라콤 드디어 탈출한거냐며 김종대가 물어왔다. 그리고 나는 그냥 김종대를 한번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썅 지금 나보고 한숨쉰거야? 김종대가 눈썹을 팔자로 구기고선 물었다. 그냥 너네반에나 가라. 내말에 짜증난다며 이번엔 지우개가루를 던진다. 아 미친새끼 진짜.

 

 

 

 

김종대를 거의 들쳐매다시피해서 복도에 던져놓곤 문을 쾅 닫았다. 복도에서 김종대가 날 욕하는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게 들렸지만 그냥 무시했다.

 

 

 

 

담임이랑 친해지는게 조금 망설여지는건 내가 편견이 있고없고의 차이가 아니였다. 나는 세상에 아는사람이 손가락안에 꼽을 것같은 담임의 비밀을 내가 알아버린 그 부담도 싫었고 그리고 내 예상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담임이 날 혼란스럽게 하는것도 싫었다.

 

 

 

 

 

 

 

 

 

 

 

 -

 

 

 

 

 

 

집에 와서도 나는 문제집을 뚫어져라 쳐다봐야했다. 연필자국하나 없이 깨끗한 문제집. 나는 쥐고있던 샤프의 끝을 물었다. 담임 담임 담임....오늘도 같이 등교했으니 내일도 같이 등교할거다 아마. 그리고 오늘처럼 내게 문제집을 풀었냐 물어오겠지. 그럼 난 거짓말을 칠거고 그리고 또 같이 등교할꺼고 또....으아아아!!! 끝없는 거짓말과 끝없는 악순환이다.

 

 

 

 

머리를 마구 헤집으며 심란해하고 있을때 초인종소리가 울렸다. 아, 아까 시킨 짜장면이 이제서야 배달이 온 모양이였다. 1개는 배달이 안되서 2개를 시켜야하는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다른 선택사항이였던 피자는 가차없이 패스시켰다. 시부럴. 내가 죽을때까지 피자먹나봐.

 

 

 

 

그리고 나는 후회했다. 아 시발 나는 경각심 좀 키워야한다. 인터폰 좀 볼걸

 

 

 

 

 

"집에 있었네"

"..ㄴ...네..넵...."

 

 

 

 

문을 열자마자 담임이 있는건 대체 무슨 상황이야. 누가 설명 좀 해줘.

 

 

 

 

 

 

 

 

-

 

 

 

 

 

두번째로 발을 들이는 담임의 집이였다. 내가 이곳에 또 오게 될줄이야. 나는 뻣뻣히 굳은 몸을 담임이 가르킨 소파에 뉘였다.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말하고 방에 들어간 담임은 편한 차림으로 나왔다. 흰니트에 검정색츄리닝. 몇번을 느끼는거지만 담임은 아무거나 걸쳐도 꽤나 옷빨이 산다. 키때문인가. 그러기엔 박찬열은 너무나도 후줄근한데.

 

 

 

 

 

그리고 담임은 연필자국하나없는 문제집을 인상을 구긴채 한장한장 넘겨봤다. 두손을 모으고 담임을 보고있자니 손에 땀이 흥건하게 나는듯했다. 아..아...시발...아무말없는 담임이 더 무섭다. 차라리 욕을 해 날 개무시한거냐고. 엉엉.

 

 

 

 

"모르는거야?"

"네?"

"몰라서 못푼거냐고"

 

 

 

 

담임은 맨첫장 1번문제를 손으로 가르키며 물었다. 아뇨. 내가 아무리 수학젬병이라도 행렬덧셈도 못할까봐. 걍 더하기만 하는건데. 하지만 나는 이미 깊게 패여버린 담임의 이맛살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켜야만했다.

 

 

 

 

"네"

 

 

 

 

담임의 화를 더욱 돋굴바에는 차라리 똥멍청이가 되는길을 택하겠다.

 

 

 

 

담임은 샤프를 두손가락에 끼고 이마를 긁었다. 빡치겠지 나라도 빡치겠어. 다 가르쳐준건데 모른다고 답하니. 하지만 아마 다 알고있는데도 안풀었다그러는게 더 빡칠거다.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 땀만 흘려댔다. 미친 죽겄다.

 

 

 

 

 

"이리와"

"네?"

"모른다며. 알려줄게"

 

 

 

 

담임은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날 잡아끌어 자신의 옆에 앉혔다. 그리곤 내 손에 샤프를 하나 쥐어주고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학교교과서를 들고나왔다. 기본은 교과서로 하는게 제일 좋아. 누가 학교선생 아니랄까봐 교과서를 먼저 운운한 담임이 행렬의 기초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 봐, 행렬의 모양은 일단 사각형의…

 

 

 

 

 

오! 쌤 답 5죠? 내 말에 담임은 잘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선 조금만 쉬자고 말했다. 알겠다며 활기차게 대답한 나는 방금전 담임이 가르쳐준 공식을 한번 더 눈에 슥 읽어봤다. 행렬은 좆밥이지 하며 수업때 제대로 안들었었는데 이제부턴 수학을 만만히 안보겠노라고 다짐했다. 좆밥이던 어렵던 담임 설명 너무 잘해. 다 알고있는 내용이라도 듣고싶게끔 만드는 담임의 설명에 감탄했다 정말로. 임용고시 한방패스하려면 이정도는 해야되는구나.

 

 

 

 

쉬는 시간에 계속 탁자 옆에 놓여있는 담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담임에게 나가서 한대 피고오라고 하자 담임은 기다렸다는듯이 베란다로 나갔다. 미안. 물론 사과는 빼먹지않았다. 나는 베란다에서 담배를 물고있는 담임의 옆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예전부터 느끼는것이긴 했지만 정말 얼굴하나는 잘생겼다. 무섭게 생긴면도 있긴하지만 담임의 성격을 안 이상 그건 그냥 남자다움으로 치부해버릴 정도였다. 키도 왠만한 남자중에서도 큰 편이고, 피부고 검은 편이라 남성미도 풍기고, 그다음 대박인건 저 분위기인데. 박찬열만 해도 주변여자애들이 가만히 안두는데. 담임은 더 많이 받아봤을텐데 담임은 언제부터 남자를 좋아하게 된걸까.

 

 

 

 

나는 멍하니 담임을 관찰하다가 담배를 꽂은 담임의 손을 쳐다봤다. 와 미친 무슨 손도 이뻐. 내손은....아 뭐, 내 손도 이쁘지. 흐흐. 여자애들이 맨날 손이쁘다고 말해줬었는데. 중학교때 혼자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내 손을 보고 이쁘다며 살짝 만진게 생각났다. 그때 심장 터져버리는줄 알았는데. 나는 오랜만에 소영이를 생각하다가 급 생각을 멈췄다. 뭔가 이상하다. 숙였던 고개를 다시 번쩍 들어 담임의 손을 쳐다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담임의 왼손 두번째손가락을.

 

 

 

 

 

내가 잘못본게 아닐거다. 그날이 내게 얼마나 충격적인 날이였는데. 나는 다시한번 유심히 담임의 손을 쳐다보다가 확신을 내렸다. 그래 맞아. 저 두번째손가락에 끼어져있는 반지는 담임이 내게 커밍아웃을 하던날 뺐던 반지였다. 뭐지? 그 여자랑 다시 시작하나라는 생각이 0.1초 들었지만 바로 아웃시켰다. 일단 말도 안되는 소리였고 그리고 반지는 두번째손가락에 있었다. 뭐지? 뭐냐고! 혼란스러움에 머리가 핑글핑글 돌때 딱 마침 담임이 베란다 문을 열고 나왔다. 물어볼까 말까. 계속해서 호기심이 올라왔다. 아씨, 물어보자 그냥 시발 더 숨길것도 없는 사이된거같은데

 

 

 

 

 

"저기요 쌤"

"왜?"

"그...저 그거요...반ㅈ.."

"짜장면 배달왔어요!!! 사람 없어요?!!!!"

 

 

 

 

 

 

밖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에 날 쳐다보던 담임이 현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썅 뭐야, 뭔데 존나 시끄럽게 해. 인상을 구기고 현관쪽을 째려보자 또 옆집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짜장면을 외치는 배달원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거 주인도 빨랑 나와보지 내가 지금 어 담임에게 내 궁금증을 물어보려고 하고있는ㄷ..

 

 

 

 

 

"여기요!!!!"

 

 

 

 

시발 내가 시켰구나. 옆집 나구나

 

 

 

 

 

배달원은 바닥에 짜장면 두개와 군만두, 단무지를 냅두며 엄청나게 투덜거렸다. 서비스도 가져왔는데 이러시면 안되죠. 시켜놓고 다른데 가있는게 어딨어요. 그리고 나는 배달원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땀을 삐질빼고 배달원을 돌려보내자 나는 그제서야 화가 치밀어올랐다. 아니 시발 이제서야 배달한주제에 왜 화를 내지? 욱했지만 이미 배달원은 떠나간지 오래였다. 썅...

 

 

 

 

 

"왠 짜장면이야?"

"..아...."

 

 

 

 

배달원과의 다툼-일방적인-때문에 순간 담임을 잊고있었다. 담임은 벽에 기대서서 뭐냐는듯이 눈을 똘망똘망히 뜨고 날 내려봤다. 아...이거요...

 

 

 

 

"....드실래요...?"

 

 

 

 

 

어차피 1개는 냉장고 행이였는데. 내가 원해서 한건아니였지만 그래도 수학가르쳐준거에 대한 보답이라 쳐야지.

 

 

 

 

 

 

식탁에 앉아 나는 재빨리 내 앞에 놓여있는 짜장면을 야무지게 비비곤 아직 비닐도 까지않은 담임것과 바꿨다. 먼저 드세요. 내 말에 고맙다며 픽웃어준 담임이 젓가락을 딱 쪼갰다. 세상에. 젓가락 진짜 못쪼갠다. 무슨 쌍쌍바처럼 개떡같이 젓가락을 가른 담임을 멍청하게 쳐다보다가 나는 내걸 깔끔하게 갈라서 담임것과 바꿨다. 하하 민망하네. 머쓱하게 웃는 담임에게 담임전용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짜장면을 비볐다.

 

 

 

 

"근데 백현아"

"에?"

"아까 뭐 물어보려고했어?"

 

 

 

 

나는 입에 가득든 짜장면을 씹으며 다시한번 담임의 손가락에서 빛나고 있는 반지를 쳐다봤다. 가까이서 보니 더 맞는것같다. 아니 맞다. 확신한다. 근데 못물어보겠다. 이렇게 담임과 마주앉아 물어보려니 왠지모르게 안될것같다는 느낌이 발끝부터 스물스물 올라왔다. 뭔가 반지에 담임의 비밀이 더 담겨있을것만 같았다. 지금 비밀도 버거워하면서, 더 할거야 변백현?

 

 

 

 

"아...까먹었어요"

"뭐야"

 

 

 

 

내 답변에 시시하다는듯이 웃은 담임이 짜장면을 입에 넣었다. 그래 묻지말자. 더 숨길것도 없는 사이. 좆까라 그래. 난 순간 올라오는 이 호기심을 주체좀 해야한다. 병이다 이것도 증말.

 

 

 

 

 

"아 맞다. 변백현"

"또 왜여?"

 

 

 

 

또다시 날 부르는 담임의 말에 짜장면을 먹다말고 담임을 쳐다봤다. 아씨 면 안끊어져

 

 

 

 

"너 왜 아침에 문제집 풀었다고 거짓말쳤어"

"풉!!"

 

 

 

 

아 미친, 면을 뿜고 옆에있던 티슈를 황급히 뽑아 입을 닦으며 담임을 쳐다봤다. 담임의 표정은 알쏭달쏭했다. 화난것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놀리는것같아보이지도 않고

 

 

 

 

 

"거짓말은 치지마"

"넵..."

"오늘은 짜장면으로 퉁쳐줄게"

 

 

 

 

 

담임이 농담식으로 짜장면 이야기를 하자 살짝 굳은 몸이 풀리는게 느껴졌다. 나 뭔가 담임한테 휘둘리는 느낌인데.

 

 

 

 

"다음엔 짜장면으로 어림도 없어"

"네에.."

"또 거짓말치면 피자가 그 댓가가 될거야"

 

 

 

 

 

담임은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피자라는 말에 표정을 굳혀야했다. 피자라니. 이제 죽어도 담임한테 거짓말 안칠거야.

 

 

 

 

 

 

 

09

 

 

 

 

 

 

 

"또 이거야"

 

 

 

또 이거라서 죄송하네요.

 

 

 

"다른 반찬은 못하나?"

 

 

 

못해서 죄송하네요.

 

 

 

 

"선생님은 잡채좋아하는데"

"아 좀!"

 

 

 

 

 

신경질적으로 담임의 앞에 밥을 놓으니 담임이 인상을 팍 썼다. 아씨, 저렇게 표정을 지으면 난 또 쫀다. 아니요오...계란말이도 힘들게 만든건데...그리고 최대한 불쌍해보이게 변명을 한다. 구차하네 변백현.

 

 

 

 

"오늘 장보러가자. 잡채재료는 내가 다 살게"

"선생님, 잡채안만들어보셨죠"

"응"

 

 

 

 

당면으로 싸다구맞고싶지않으면 가만히 있으세요.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주고싶었다. 잡채만들기가 얼마나 힘든데. 나는 잡채를 좋아하는 아빠에게 항상 욕을 퍼붓던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빡친다. 엄마는 아빠한테 욕이라도 하지 나는 무서워서 담임한테 욕도 못하고 괜시리 젓가락만 입에 물고선 말했다. 얼른 드세요.

 

 

 

 

 

 

담임과 이렇게 밥을 먹게된게 언제부터였지. 나는 시금치를 집다말고 담임의 정수리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아마...과외아닌 과외를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난 날부터였던것같다. 우연히 주말에 내가 밥을 먹고있을때 내가 놓고간 필통을 갔다주러 담임이 왔고 나는 머쓱해서 밥을 권했었다. 그리고 담임은 그다음날부터 아침마다 꼬박꼬박 우리집에 찾아와 아침밥을 먹었다. 처음에는 이게 뭐다 싶기도하고 불편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밥을 다 먹고 담임과 나란히 서서 양치를 했다. 담임이 우리집에서 밥을 먹기시작한 순간부터 한개만 덩그러니 놓여있던 칫솔통에는 두개의 칫솔이 꽂히기시작했다. 젓가락과 숟가락도 한쌍씩 늘어났다. 형이 돌아온 느낌이였다. 허, 새삼 담임과 많이 친해진게 느껴졌다. 형하고 비교할정도라니. 나 진짜 브라콤맞나봐. 형이면 다좋은건가. 칫솔을 물고 또 생각에 잠겨있으니 담임이 머리를 부벼오는게 느껴졌다. 빨랑해. 지각하겠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헹궜다.

 

 

 

 

 

"어 변백현! 아, 쌤 안녕하세요"

"와! 쫑쌤! 안녕하세요!"

"그래. 종대랑 수정이는 같이 등교하나봐?"

"아뇨"

 

 

 

 

정색을 하며 말하는 둘을 쳐다보던 담임이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 따라오지말랬잖아! 정수정의 말에 지각쟁이가 무슨 말이 많냐고 맞써 싸우는 김종대를 한심하게 쳐다보고는 나는 날 향해 손짓하는 담임의 옆으로 종종 뛰어가 섰다. 한 일주일정도 담임의 차를 타고 다니다가 나는 너무나도 양심에 찔려서 담임에게 말했었다. 짧은 거리인데 왜 타요 자동차아...혹시 화를 낼까봐 마지막말은 거의 먹다싶이 말했는데 내 말에 좀 머쓱했는지 이마를 긁은 담임은 그 다음날부터 도보출근을 선택했다.

 

 

 

 

그리고 시험출제기간이였던 날을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담임과 같이 걸어서 등교를 했다. 이렇게 기말고사 마지막날에도.

 

 

 

 

 

"근데 쫑쌤"

"응"

"쌤 언제부터 변백현이랑 친해진거에요?"

"어?"

"아 왜 처음에는 변백현이 쌤한테 인사안하고 막 그래ㅅ..읍"

"하핳핳! 종대야 얘가 뭐라니?"

"뭐라긴. 변백현이 쌤 인사 다 씹고 그래서 둘이 사이 별로 안좋았었잖아요. 그때 변백현 거의 울상으로..악!"

 

 

 

 

 

 

정수정의 입을 틀어막자 내편일줄알았던 김종대가 속사포랩을 하듯이 다 불어버렸다. 망할 호로 잡것들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담임에게 크게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쌤! 내 말에 선생님은 또한번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고는 날 쳐다봤다. 진짜 아닌데에..내가 울상으로 담임을 쳐다보니 내 표정이 웃긴건지 환히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알아 알아. 그말을 반복하면서.

 

 

 

 

 

 

 

-

 

 

 

 

 

 

 

"야 나 요번에 영어 좀 잘침"

"구라"

 

 

 

 

내 말에 박찬열의 손이 날라왔다. 아 진짜 헤드락 아프다고! 찡찡대며 박찬열에게 벗어나려고했지만 쓸데없이 힘만 쎈 박찬열을 이길순없었다. 형 제발 놓아주세요. 내 비굴함에도 박찬열은 놓아주지않았다. 아 썅놈

 

 

 

 

"오늘 노래방 가야함. 안가면 죽을것같아. 노래방안간지 너무 오래됬어"

"콜! 가서 내 랩듣고 반하지마라"

"넌 내 노래듣고 반하지마. 변백현 너도 갈꺼지?"

"아....아니"

 

 

 

뭐? 왜! 김종대가 이미 목졸려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내 목을 더욱 졸라댔다. 미친놈들아 그만해! 나는 박찬열의 팔을 퍽퍽 치며 제발 풀어달라고 애원했지만 박찬열은 왜 노래방을 안가는거냐며 더욱 졸라댔다. 죽고잡나진짜. 쉬는시간내내 내 목을 잡고있던 박찬열과 김종대는 담임이 들어와서야 내 목을 놓아줬다. 아 미친, 나는 새빨개진 얼굴로 둘을 째려보고는 후다닥 자리로 돌아와서 앉았다.

 

 

 

 

"시험 잘 봤어?"

"아뇨!"

 

 

 

 

수학 너무 어려웠어요! 여러곳에서 애들의 한탄소리가 들려왔다. 쌤 나빠요! 정수정이 말하자 담임은 쉽게낸거라면서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멍때리며 담임을 바라보던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헉.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눈을 동그랗게뜨고 자세를 똑바로 했다. 그리고 내 모습에 담임은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어보였다. 아 미친, 신은 불공평하다. 개잘생겼네. 나는 담임에게 머쓱하게 웃어보이고는 괜히 쑥스러워서 책상서랍을 뒤지는척했다. 이게 뭔짓이니.

 

 

 

 

종례가 끝나고 담임이 나갈기세를 보이기 시작하자 누군지 알것만 같은 뜨거운 시선들이 내 뒷통수로 쏟아지는게 느껴졌다. 아나 진짜....나는 최대한 뒤를 돌아보지않도록 노력하면서 책가방을 꼭 손에 쥐었다. 담임 나가자마자 튀어나가는거야.

 

 

 

 

"변백현 잡아라!!"
"라져!!!"

 

 

 

 

저 비글 두마리는 이럴때만 죽이 척척 맞는지 냅다 뛰는 날 죽일듯이 쫒아왔다. 아 꺼져 안간다고! 계속 학교를 빙글빙글 돌아 겨우 따돌린 나는 주변을 살피면서 원래 내가 가려던곳에 도착했다. 2학년 교무실. 나는 헝크러진 머리와 옷을 단정한채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교무실안에는 담임빼고 다른선생님들은 다 퇴근한것같아보였다. 쌤! 크게 담임을 부르자 짐을 챙기던 담임이 고개를 들어보였다. 다행히다. 아직 안갔네.

 

 

 

 

"무슨 일있어?"

"아...그...음...잡채!!"

"어?"

"잡채재료 사러가야죠 잡채 먹고싶으시다면서요!"

 

 

 

 

그냥 집에 같이 가자고 말하려고한거였는데. 왠지 모르게 담임의 앞에서서 그말을 하자니 쑥스러움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변백현 이 바보야. 잡채를 말하면 어쩌니 그거 만들기 엄청 어렵잖아! 성공해본적도 별로 없잖아! 나는 가만히 날 내려다보는 담임에게 머쓱하게 웃어보이며 뒷목을 쓰다듬었다. 아 까짓거, 해보면 되겠지 뭐. 내가 누구야 변장금아니야 내가.

 

 

 

 

"아...맞다 잡채재료 사러가기로했었지"

"네!"

"근데 백현아, 선생님이 오늘 회식이 있다는걸 깜빡했었네. 오늘은 못사러가겠다. 미안해서 어쩌지?"

"..아...."

 

 

 

 

왠지모를 아쉬움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곤 괜시리 실내화코만 툭툭 건들였다. 뭐 어쩔수없죠...늘어지는 내 말투에 담임은 신경이 쓰였던건지 내 어깨를 잡고는 몸을 낮춰서 눈을 맞춰왔다. 선생님이 다음에 그냥 잡채사줄게. 그말에 그냥 나는 고개를 저어보였다. 저 사실 잡채 별로 안좋아해요. 이 말을 하고싶었는데 나는 꾹 깨문 입술을 열수가 없었다. 왜지. 그저 담임만 쳐다보고있자 교무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높은 하이톤의 여자목소리가 들려왔다.

 

 

 

"종인쌤! 빨리와요."

"아, 아직 안가셨어요?"

"네. 차로 이동해야되는 거리라서...종인쌤 차 안가지고 오셨잖아요. 제차타고 가요. 다른쌤들은 다 출발하셨어요"

"아 죄송해서 어쩌죠"

 

 

 

대신 운전은 제가 할게요. 담임은 예의 그 멋진 웃음을 윤리에게 지어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윤리는 담임의 말에 살짝 얼굴을 붉히고는 빨리오라며 손짓했다. 아니 얼굴은 왜 붉히고 난리래? 그 생각을 하며 윤리를 쳐다보고있자 담임이 내 이마를 꾹꾹 눌러오는게 느껴졌다. 이맛살 생기면 안이쁘다. 아, 나도 모르게 찌뿌리고 있었나보다. 왜 찌뿌렸지? 눈을 또르르 굴리고있으니 담임이 머리를 쓰다듬는게 느껴졌다.

 

 

 

"미안해"

"..."

"대신 잡채사들고 집에 빨리 갈게. 부를테니까 기다리고있어"

 

 

 

그리고 담임은 교무실문을 잠그고는 윤리와 함께 내게 등을 보이며 사라졌다. 허...윤리한테 하는 행동이나 말투를 보면 진짜 완전 연애고수같다. 나는 괜히 심술이 나서 입을 내밀었다. 담임에게 다가오는 여자들은 원래 많은것처럼 보였다. 근데, 담임의 반지가 네번째손가락에서 두번째손가락으로 옮겨지자 그 정도는 더욱 더욱 심해졌다. 이젠 대놓고 꼬신다. 특히 노처녀 여선생들. 더욱 특히 윤리. 썅, 그래봤자 담임은 게이인데. 에라이. 나는 짜증나는 마음에 머리를 마구 헝크러트렸다. 게이인데. 게이인게 맞는데. 나는 담임과 더욱 깊게 알게될수록 게이가 아닌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짜로. 연애고수인거같다고.

 

 

 

 

괜히 교무실앞에서 발만 툭툭 치대고있자 저 멀리서 누가 헉헉 거리며 뛰어오는게 느껴졌다. 시발 변백현! 계속 뛰어다닌건지 땀을 뻘뻘 흘리고있는 박찬열이였다. 뭐야 꼴이 왜그래. 내가 조금 놀래 말하자 박찬열은 내게 꿀밤을 먹였다. 미친 겁나 아파! 이마를 부여잡고 박찬열을 노려보니 박찬열은 다짜고짜 내 팔을 잡고는 질질 끌고갔다. 어디가냐! 내 말에 이를 악물고는 대답했다.

 

 

 

 

"노래방"

 

 

 

 

아니 노래방에 무슨 한맺혔니!!?! 나는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끌려가며 박찬열의 뒷통수를 쳐다보다가 한숨을 한번 쉬었다. 저항을 포기한다는 뜻이였다. 박찬열은 그런 내상태를 알았는지 잡은 손목을 살짝 놓는게 느껴졌다. 이때다. 나는 오랜만에 박찬열의 등짝에 폴짝 달라붙었다. 아 미친놈아 무거워!! 박찬열은 날 떨어뜨리겠다는 식으로 몸을 좌우로 흔들었지만 나는 그럴수록 더욱 매미처럼 달라붙었다. 나 외로워 짜녀라 엉엉. 내 애교에 박찬열은 되도않는 애교 부리지말라고 욕을 내뱉더니 결국엔 날 살짝 받쳐줬다. 시발 내가 애를 키우고말지.

 

 

 

 

"박찬열 애 키우면 안돼"
"왜 시발"

"늙어서도 내 강아지해야지"

 

 

 

 

그러면서 들고있던 신발주머니를 박찬열의 목에 걸어줬다. 이건 선물이야. 내 선물에 박찬열은 맘에 안든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저 멀리 정문에서는 우리의 꼴을 보며 뒤집어질듯 웃고있는 김종대가 보였다. 나도 업어줘 박찬열! 김종대가 소리치자 박찬열이 꺼지라며 맞대꾸를 쳤다. 그리고 그렇게 장난을 치면서 가고있을때 박찬열과 내옆으로 차한대가 미끄러지듯이 멈춰섰다. 그리고 자동차창문이 쭉 내려갔다.

 

 

 

 

"어, 안녕하세요 윤리쌤"

"그래 찬열아. 백현이 업어주는거야?"

"이게 업어주는건가요. 걍 매달려있는거지.."

"너넨 무슨 1학년때랑 달라진게 없니? 완전 찬열이가 백현이 남자친구인것같다"

"소름돋는 소리하지마세요 선생님. 얘가 여자였어도 안사겼을거에요"

 

 

 

 

나는 박찬열의 대답에 뒷통수를 후려갈기고싶었지만 문득 문득 보이는 운전석의 담임때문에 그냥 박찬열의 등짝에 얼굴을 묻었다. 아 땀냄새 쩔어. 근데 고개는 들기싫다. 왠지 모르겠는데. 뭔가 윤리랑 같이 차를 타고 가고있는 담임을 보기가 싫었다. 엉엉. 빨랑 가라 그냥. 내가 박찬열의 등짝에 얼굴을 묻고 마구 비비니 박찬열이 작작 지랄하라며 짜증을 냈다. 내 지랄보기싫으면 빨랑 저 차를 보내!

 

 

 

 

"...근데 담임쌤하고 윤리쌤은 데이트가시나봐요"
"어머, 아니야 찬열아. 그냥 회식이 있어서~"

"아 네 그럼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박찬열은 날 받치고있는 부분을 툭툭 쳤다. 야 인사해.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담임과 윤리를 쳐다봤다. 날 쳐다보고있는 담임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눈을 피하며 짧게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곧이어 차는 떠났고 나는 발을 바둥바둥거리며 내려달라고 소리쳤다. 시발놈이 업어달라할때는 언제고 내려가겠다고 지랄이냐고 박찬열이 내려주면서 욕을 내뱉었다. 내려와서 보니 신발주머니를 목에 걸고있는 박찬열의 꼴은 꽤나 웃겼다.

 

 

 

 

"다신 업어주나봐"

"그러면서 또 업어주잖아"

"맞아"

"그래서 다신 안업어준다고!"

 

 

 

 

박찬열은 씩씩거리며 까먹은건지 뭔지 내 신발주머니를 목에 걸고 앞서 걸어갔다. 우리 쨔녈이 삐졌어? 김종대가 왼팔에 내가 오른팔에 매달리자 박찬열은 다 죽여버리겠다고 발악했다.

 

 

 

 

"근데 변백"

"왜"

"너 노래방안간다며 왜 가?"

"그게 할말이야? 니네들이 끌고왔잖아"

"난 끌고와도 안간다고 지랄할줄알았는데 의외로 순순하게 따라가니까 그러지"

"...몰라"

 

 

 

 

시험을 망친것도 아닌데 기분이 더러워서, 노래방이라도 가야될것같았다. 아까까진 분명 기분 좋았는데. 응. 몰라. 모르겠다. 나는 괜히 박찬열에게 더욱 매달렸다. 박찬열아 아이스크림 사줘. 그리고 결국엔 나는 길거리에서 박찬열에게 헤드락을 걸려야만했다.

 

 

 

 

-

 

 

 

 

 

오랜만에 간 노래방이여서 우리 셋은 전부 흥분상태로 무려 3시간을 달렸다. 고등학교때 셋이서 장기자랑을 나간경력이 있을정도로 꽤나 휼륭한 솜씨를 지닌 우리는 서로서로 누가 더 잘하나 점수내기를 했고 유일하게 100점을 찍은 나는 한손에는 박찬열에게 뜯은 아이스크림 한손에는 김종대에게 뜯은 쿨피스를 들고 유유히 앞서 걸어갔다.

 

 

 

 

"저 노래방기계는 사기야"

"맞아. 딴데갈래?"

"패자가 말이 많네"

"죽어"

 

 

 

 

내게 불만을 토로하면서 김종대는 벌써 세개째 아이스크림막대를 버렸다. 쟨 더위를 너무 타서 탈이다. 나는 아직 한참남은 아이스크림과 쿨피스를 보고 김종대에게 혀를 찼다.

 

 

 

 

"야, 우리 박찬열 집가면 안돼? 나 진짜 질식사할거같아"

"개뜸금포 우리집이네"

"니방에 에어컨있잖아. 아 제발! 우리집에 선풍기밖에 없어"

"변백현집은"

"여기서 너네집이 더 가깝잖아!"

 

 

 

 

나 진짜 녹을거같아 짜녀라. 김종대가 땀에 젖은 몸을 박찬열에게 들이대니 박찬열은 시발시발거리며 알겠다고 소리쳤다. 너도 갈거지? 김종대의 물음에 나는 잠시 주춤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담임이 빨리 온다고했긴한데 회식인데 빨리 올수있을까, 아니 그것보다 썅 내가 왜 담임을 여기서 생각하는거지? 나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생각을 떨쳐버리고는 박찬열과 김종대를 향해 더욱 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

 

 

 

 

 

해떠있을때는 못간다며 난리를 치는 김종대때문에 나는 밤 10시가 되서야 박찬열의 집에서 나올수있었다. 김종대와 나는 박찬열네 아주머니께서 주신 대량의 반찬거리들을 들고 낑낑대며 걷다가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아 반찬 진짜 무겁다. 내가 형이랑만 사는걸 아시는 찬열이네아주머니는 가끔씩 이렇게 대량의 반찬거리를 싸주시곤했었다. 그리고 요즘엔 형이 없다는것까지 플러스요인이 되어 더욱 대량이 되었다. 죄송한데. 나는 매번 죄송스럽다고 말하지만 꼬박꼬박 받아먹는다. 박찬열은 라면도 잘 못끓이는데 아주머니는 요리 엄청 잘하신다. 굿.

 

 

 

 

 

 

두팔이 떨어져나갈것같은 느낌을 받으며 나는 겨우 집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우리층에 다와 내렸을때 나는 우리집 대문에 어떤 인영이 기대어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헐 뭐야, 약간 무서움마음이 들어 살금살금 가까이 다가가자 술냄새가 확 올라왔다. 시발 왠 취객이 무섭게 우리집앞에서 저러고있어! 나는 괜시리 쇼핑백을 꽉 쥐고 한발 더 다가갔다. 나한테 위협을 가하면 확마 이 반찬통으로 때려버려야지. 그리고 우리집 앞까지 다 와 센서등이 켜졌을때 나는 맥이 탁 풀리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선생님"

 

 

 

 

앉아있는것도 아니고 서서 자는건 또 뭐람. 나는 선생님을 흔들어 깨우려다가 곧 떨굴것만 같이 아슬아슬하게 손가락끝에 달려있는 비닐봉투를 먼저 집어 땅바닥에 놨뒀다. 그리고는 팔을 살짝살짝 치며 말했다. 담임쌤 일어나세요. 담임은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건지 미동도 없이 계속 눈만 감고있었다. 쌤 담임쌤 수학쌤. 다 불러봤지만 대답은 커녕 미동도 없는 담임에 나는 살짝 장난끼가 생겨 같이 벽에 기대서 담임을 쳐다봤다.

 

 

 

 

"김종인쌤"

 

 

 

 

아 어색해. 처음으로 불러보는 담임의 이름이였다. 매번 담임쌤 쌤 선생님 이렇게만 불러서, 김종인쌤은 엄청나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는 괜히 손발을 베베 꼬으며 담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무섭게 생겼어. 역시. 근데, 근데 너무 잘생겼다. 완전 개 남자다워! 나는 정수정이 담임의 구릿빛피부에 환장하는게 약간 이해가 갔다. 남자가 봐도 멋있는데 여자는 얼마나 멋있겠어.

 

 

 

 

"종인쌤"

 

 

 

 

계속 미동없는 담임에 이번엔 성까지 빼서 불러봤다. 아 진짜 오글거린다! 나는 괜시리 얼굴을 한번 찡그렸다가 이번엔 담임의 전신을 쳐다봤다. 키 진짜 커. 나는 언제 크지. 괜히 담임과 나의 키차이를 재보고는 상심에 빠졌다. 에라이. 비율도 짱짱맨이네.

 

 

 

 

"...쫑쌤"

 

 

 

 

저렇게 말하고는 나는 소리없는 아우성을 질러야만했다. 세상에 내가 여자애들만 부르는 애칭을 부를줄이야!! 나는 입을 틀어막고 복도에서 괜히 두어번 방방뛰었다. 완전 계집애된 기분이야. 오글거림에 머리까지 막 헝크러트리고선 담임을 힐끗 한번 쳐다봤다. 오 아직도 안일어났어. 나는 다시 담임의 옆으로 살살 걸어가서 또한번 담임을 뚫어져라 관찰했다. 그리고 요번에 내 시선을 사로잡은건 다름아닌 반지. 반지였다.

 

 

 

 

 

반지는 진짜 오래된것같았다. 보석하나박혀있지않은 심플함 그자체인 반지. 멀리서보면 커플링처럼 보이겠지만 자세히보면 정말 커플링이라 하기엔 허접한 부분이 많았다. 우리 형 커플링은 완전 반짝반짝그자체인데 커플링만 봐도 형수와 형의 애정이 물씬 풍기는데 이 한때는 커플링이였을 반지는 그런게 하나도 없었다. 그냥 이 반지는 아무리 봐도 예전 정수정이 저에게 자랑했었던 우정반지정도로만 보였다. 아직까지도 끼고다니는 정수정의 반지에서 느껴지는 느낌이랑 담임의 반지에서 느껴지는 느낌이랑은 많이 비슷했다.

 

 

 

 

사랑같은 애정보다는 은은한 우정이 더 느껴지는 것만 같은 반지. 음, 근데 담임의 반지에선 뭔가 더 느껴졌다. 뭐랄까. 많이 오래되서 그런가 뭔가 마음깊은곳이 쿡쿡 찔러오는듯한 느낌이였다. 추억도 많아보이고 그만큼 소중해보였다. 나는 한참을 반지를 쳐다보다가 그냥 눈을 떼버렸다. 더 알기 싫은 느낌이였다. 왤까. 왠진 모르겠는데 그냥 문득 이 반지를 보면 담임의 첫사랑이 떠올랐다. 그사람도 남자였겠지. 아니 그땐 여자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에라이. 내가 이걸 왜 생각하고있니.

 

 

 

 

 

생각을 멀리멀리 보내버리고 이젠 진짜 담임을 깨워야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자마자 나는 진짜 악소리를 내면서 뒤로 나자빠졌다. 아 쌤!!! 너무 놀래서 눈물까지 고일것같았다. 아 진짜 식겁했어. 가만히 날 내려다보고있던 담임에 나는 놀란마음을 추스리고 담임을 째려봤다.

 

 

 

 

 

"깼으면 깼다고 말을해야지. 저 완전 놀랬잖아요"

"미안 심각해보여서"

"...쌤 근데 여기서 왜이러고 있었어요. 많이 취했어요?"

 

 

 

 

 

생각보다 별로 안취한거같은데. 또박또박 잘 말하는 담임에 나는 의아함을 품고는 물었다. 담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을 취했다.

 

 

 

 

"너 삐질까봐, 잡채, 잡채 사려고 술 안마셨어"

"잡채요?"

 

 

 

 

응응 이번엔 고개를 위아래로 세차게 흔든 담임이 흔들리는 손으로 비닐봉지를 잡아 내게 건냈다. 잡채애. 내게 비닐봉투를 꼭 안겨준 담임은 날 보며 환히 웃어보였다. 백현이 잡채받고 화풀어. 그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허 웃었다. 미치겠다. 술취한거 맞네.

 

 

 

 

"술 대체 얼마나 마신거에요?"

"안마셨다니까"

"술냄새나요"

"도경수랑....김준면이랑...또 누가 줬더라..아 수진쌤이 준거밖에 안마셨어"

 

 

 

 

내가 딱잘라말하자 바로 술술 불어버리는 담임쌤에 웃음이 살짝살짝 났는데 왠 여자이름이 들리자마자 얼굴이 굳어진게 느껴졌다. 수진쌤? 나는 잠시 그 이름의 주인공을 생각하다가 매치되는 얼굴에 인상을 또 팍 구겼다. 아나 윤리 진짜. 내가 인상을 찌뿌리고있자 담임이 또 내 이마를 꾹꾹 눌러왔다. 안이뻐져. 진짜 많이도 마셨나보다. 도쌤이랑 면쌤이 많이 먹이진않았을거같은데, 이거 다 혹시 윤리가 맥인거 아냐? 나는 계속해서 이마를 눌러오는 담임을 무시하고 더욱 인상을 찌뿌렸다.

 

 

 

 

"왜 또 화났을까"

"화 안났는데요"

"백현이 왜 화났을까"

"안났다니까요"

"백현이 화났으니까..."

 

 

 

 

아나. 내말은 듣지도않는 담임쌤에 그냥 무시하자 마음먹고 나는 계속 인상을 찌뿌리며 윤리를 생각했다. 아 윤리 진짜 1학년때부터 마음에 안들었어. 근데 요즘에 더 마음에 안들어. 에라이. 왜 마음에 안드는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는데 그냥 마음에 안든다.

 

 

 

그렇게 속으로는 계속 윤리를 까며 진지하게 표정을 짓고있는데 내 머리위로 큰손이 툭 얹혀지는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담임을 쳐다보니 담임은 한손은 내 머리를 쓰다듬고 한손으로는 내게 들려있던 잡채담긴 비닐봉지를 쏙 빼갔다. 뭐해요. 내 말에 담임은 환히 웃으면서 말했다.

 

 

 

 


"잡채먹자"

"네?"

"잡채먹으면 화풀려"

 

 

 

 

 

하, 나는 또한번 어이없음에 웃음을 흘릴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먹어요 잡채. 지금 시간이 벌써 11시를 향해가고있지만 뭐 어때 내일은 주말인데 얼굴하나쯤 부어도 상관없지. 나는 번호키를 누르고 집안으로 날 끌고가는 담임에 그저 또한번 실소만 지을뿐이였다.

 

10

 

 

 

 

 

 

학교는 평소보다 조금 더 업되있는 상태였다. 선생님들도 티는 내고있지않았지만 살짝 기분이 좋아보이는게 느껴졌다. 그래, 오늘은 바로.

 

 

 

 

"존나 좋아 방학!!"

 

 

 

 

정수정이 미쳐 날뛰는 여름방학식날이였다. 어차피 다음주부터는 또 방학보충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다시 나와야했지만 '방학'이라는 두글자는 그냥 막연한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거기다가 뭐 2주만 학교나오고 2주는 쉬니까. 나는 실실나오는 웃음을 틀어막고 미쳐날뛰는 박찬열과 정수정을 쳐다봤다.

 

 

 

 

종이 치고 우리는 1반이라는 이유로 방학식에 참석하기위해 소강당으로 이동했다. 다좋은데 이건 좀 귀찮다. 나는 다른애들보고 내가 문을 잠글테니 먼저 다들 올라가라 하고선 늦장을 부리다가 어기적어기적 일어서서 문을 잠궜다. 으아 귀찮다. 늘어지게 하품을 한 나는 열쇠를 문틈에 올려놓고선 손베개를 끼고 느릿느릿 걸어갔다. 복도는 다들 방송을 보고있는건지 조용했다. 터벅터벅 나는 조용한 복도에 울리는 내 발자국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그리고 또한번 하품을 늘어지게했을때,

 

 

 

 

"늦장이야?"

"악!"

 

 

 

 

아 놀래라. 나는 졸음에 풀려있던 눈에 힘을 빡 주고선 뒤에서 웃고있는 담임을 쳐다봤다. 아 놀랬잖아요! 울상을 하고 말하니 담임은 미안하다며 내 머리를 헝크러트렸다.

 

 

 

 

 

"근데 왜 여기있어?"

"제가 마지막에 문잠궈서...근데 쌤은 왜 여기계세요?"

"수학선생님들끼리 회의 좀 하느라"

"아하"

"우리 둘다 지각이네"

 

 

 

 

빨리 가야겠다. 담임이 눈을 맞춰오며 말했다. 그래야죠. 나는 환히 웃고있는 담임에게 같이 웃음을 지어보인다음 담임과 나란히 서서 소강당을 향해 걸어갔다. 방학. 그래, 오늘은 방학식이였다.

 

 

 

 

 

-

 

 

 

 

 

방학식을 끝내고 놀러가자는 김종대, 박찬열, 정수정을 뒤로한채 나는 주차장에서 차에 기대 서있는 담임에게로 뛰어갔다. 쌤! 내 부름에 고개를 든 담임이 날 보고는 환히 웃어줬다. 뛰지마 다쳐. 담임에 말해 괜히 허허웃음을 보이고선 나는 익숙하게 조수석에 앉았다.

 

 

 

 


"저 진짜 고기썰게해줄거에요?"

"선생님이 언제 거짓말치는거봤어?"

"아뇨!"

 

 

 

 

거짓말을 치는사람이라 해도 이번엔 거짓말치면 안되죠! 나는 고기를 썰 생각에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게 얼마만에 써는 고기야. 아마 넉달전 형결혼식이 마지막이였던거같은데...,

 

 

 

 

"안전벨트 매야지 백현아"

 

 

 

아 맞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안전벨트를 매자 담임은 잘했다는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차를 출발시켰다. 고!기!고!기!. 나는 담임이 쓰다듬었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창밖을 쳐다봤다.

 

 

 

 

 

그리고 도착한 레스토랑에 나는 약간 땀을 흘려야했다. 너무 비싸보이는데...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안으로 들어가자 메뉴판에 식은땀까지 흘려야했다. 너무 비싸! 어쩌지어쩌지 하며 담임의 눈치를 한번 쓱 봤는데 담임은 아무렇지않게 메뉴판을 보고있었다. 뭐야 저 익숙해보이는 자태는. 나는 괜히 메뉴판에 코를 박았다.

 

 

 

 

 

"정했어?"

"네? 뭘요?"

"먹고싶은거"

 

 

 

 

종업원은 대체 언제온건지 담임은 자연스럽게 메뉴판을 종업원에게 넘기며 내게 물어왔다. 어 그니까 제가 먹을건요..., 나는 핑글핑글도는듯한 기분을 느끼며 대충 아무 스테이크나 가르켰다. 이걸로 주세요. 그러곤 대충 메뉴판을 종업원에게 떠넘기듯 넘겨버렸다. 그런 내 행동에 당황한 종업원은 스테이크 어떻게...라는 말을 내뱉었다. 어떻게긴 어떻게야 그냥 줘! 내가 안절부절하고있으니 내 앞에서 웃음을 꾹 참고있던 담임이 그냥 자신과 동일한걸로 달라고 주문했다. 아썅! 옆에 놓여있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목탄다.

 

 

 

 

 

"웃지마요"

"안웃었는데?"

"지금도 웃음참고있는거 다 느껴지거든요"

"....티나?"

"아씨 진짜..., 그러니까 왜 이런데 데려왔어요..나 이런데 한번도 안와봤는데..."

 

 

 

 

 

아침밥값은 확실히 해야지. 담임의 대답에 나는 그저 쪽팔리다는 얼굴로 담임을 쳐다봤다. 아침밥이라해봤자 계란말이가 끝이였는데.

 

 

 

 

 

담임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니 시켰던 메뉴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나는 내 눈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보며 군침을 삼켰다. 내가 다 먹어버릴거야. 옆에 놓인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들었을때 담임이 내 앞에있던 접시를 가져가버렸다. 뭐해요. 놀래서 담임을 쳐다보니 이미 다 썰어진 스테이크를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먹어. 나는 담임의 행동에 웃음이 나올수밖에 없었다. 예전기억난다. 담임과 내가 어색했었을때 먹었던 짜장면. 젓가락도 못 쪼개던 담임.

 

 

 

 

 

"너가 짜장면 비벼줬으니까 이번엔 내가 고기 썰어준거야"

"그거 기억나요?"

"당연하지"

 

 

 

 

그때 너 나 완전 어색해했었잖아. 담임의 말에 머쓱해진 나는 대충 대답을 하곤 고기를 입안에 넣었다. 헐 미친, 녹는다. 고기가 녹아! 나는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감탄에 얼른 한조각을 더 집어 넣었다. 비싼값한다.

 

 

 

 

"맛있어?"

"대박이에요"

"선생님것도 먹을래?"

 

 

 

 

살짝 접시를 내쪽으로 밀며 권하는 담임에 나는 두손을 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선생님 드세요. 입안 가득 음식을 담고 혹여나 내용물이 보일까 입을 가린다음 말하자 내 꼴이 웃긴건지 담임쌤이 크게 웃었다. 나는 대충 씹고 고기를 목구멍뒤로 넘기며 웃는 담임을 약간 흘겨봤다.

 

 

 

 

 

"웃지마요"

"알...푸..ㅂ..알겠어"

"에라이"

 

 

 

 

계속 웃는 담임을 흘겨보며 남아있는 고기를 다 입안에 털어넣었다. 그러자 텅빈 내 접시와 아직 고기가 많이 남아있는 담임의 접시를 번갈아 보더니 담임은 또한번 빵터졌다. 아 진짜! 나는 티슈로 입가를 닦으며 화제를 돌리기위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쌤!"

"오..왜..큭..."

"아 웃지말고요. 쌤 방학때 뭐해요?"

"방학때? 방학보충하겠지"

"보충끝나구요. 진짜 방학때"

"아...그때"

 

 

 

 

왠지모르게 나는 담임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것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지? 약간 인상을 찌뿌리고 담임을 쳐다보자 바로 표정을 밝게 푼 담임이 입을 열었다. 방학때

 

 

 

 

"중국가"

"...중국이요?"

"응"

"왜요?"

 

 

 

 

 

친구보러.

 

 

그리고 나는 순간 시선을 담임의 반지에 두었다가 황급히 뗐다. 왜 갑자기 반지가 보인걸까. 중국. 중국하고 담임하고 관계가 뭐가있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나는 문득 학기 처음날이 떠올랐다. 담임의 첫사랑은 중국사람이라고 했지. 지금은 중국에서 살고있다고 했고. 나는 포크를 괜히 만지작거렸다.

 

 

 

 

"누구랑 가요?"

"도쌤이랑 면쌤이랑 그리고 한명 아는 형 한명 더. 이렇게 넷이 갈거같은데"

"..아하..."

 

 

 

 

 

첫사랑보러가는거에요? 이렇게 묻고싶은데 나는 입을 다물었다. 주제넘은 질문이다. 내가 계속 고개만 숙이고있자 담임은 왜그러냐며 내게 물어왔다. 글쎄. 나도 내가 왜이런지 모르겠다. 급 다운되는 기분에 나는 그냥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당겨웃으며 담임에게 웃어보였다.

 

 

 

 

 

-

 

 

 

 

 

 

박찬열과 같은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고2 여름방학인데 곧있으면 고3인데 이렇게 보낼거냐며 오랜만에 잔소리를 한 형때문에 바로 끊은 학원이였다. 아직 고3도 아닌데 나는 마치 고3이 된마냥 보충때는 보충끝나자마자 보충기간이 아닐때는 아침 9시부터 집을 나서야만했다. 덕분에 나는 방학내내 담임을 잘 보지못했다. 차라리 학기중이 더 많이 본거같았다. 거기다가 일주일전 담임은 도쌤 면쌤 그리고 왠 외국인남자와 중국으로 떠나버렸기때문에 더 볼수가 없었다. 공항까지 배웅을 나갔었는데 나는 게이트로 들어가는 담임을 붙잡고 가지말라며 외치고 싶었다. 하, 진짜 나 브라콤 맞다. 이젠 인정한다. 형이면 다 좋은거야. 미쳤어. 그게 게이던 뭐던 상관없는거야 엉엉

 

 

 

 

 

"아 죽겠다"

"나도!"

 

 

 

 

 

학원이 끝나고 나와 박찬열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며 집을 향해 걸어갔다. 방학도 일주일밖에 안남았어. 확인안시켜줘도 아는데 괜히 또한번 방학을 상기시켜준 박찬열의 팔뚝을 퍽퍽 쳤다. 아 거 새끼 겁나 아프네! 박찬열이 팔뚝을 부여잡으며 소리를 빽 질렀다. 아프냐. 아프라고 때린거니까 아프겠지.

 

 

 

 

 

"야 박찬"

"왜!"

"오늘 우리집에서 자고갈래?"

 

 

 

 

 

우리집에 스팸도 있어. 나는 박찬열이 좋아하는 햄을 계속 들먹거리며 박찬열을 유혹했다. 내가 햄하나는 기가 막히게 굽는거 너도 알잖니. 내 유혹에 박찬열은 잠시 홀린듯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저어버렸다. 아 뭐야. 내가 입을 내밀고 박찬열을 쳐다보니 주둥아리 넣으라면서 내 입을 퍽 쳤다. 아나 아파!

 

 

 

 

 

"안돼"
"왜!!"

"누나 왔어"

"...넌 나한테 브라콤이라 하면 안돼"

 

 

 

 

 

이 누나덕후야. 팔뚝을 더욱 후려치자 진짜 빡쳤는지 박찬열이 내게 헤드락을 걸라고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박찬열을 세게 뿌리치고 겁나게 달렸다. 썅 안멈춰?! 박찬열의 말에 나는 대충 손을 들어 인사를 해주곤 다급하게 오피스텔안으로 뛰쳐들어갔다. 너 내일 뒤진다! 밖에서 씩씩대는 박찬열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보이고는 나는 바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 제안을 무시했는데 팔뚝정도는 맞아줘야지. 나는 엘리베이터안에서 박찬열을 꼬실려고 사놨던 햄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나혼자 다 먹을거야.

 

 

 

 

 

 

 

 

 

 

-

 

 

 

 

 

역시 햄은 스팸이지. 나는 집에 오자마자 구운 햄을 하나 집어먹었다. 맛있다. 이 맛있는걸 혼자먹는게 너무 아쉽다. 결코 내가 지금 외로운게 아니였다. 이 맛을 전파해야지하는 마음으로 김종대에게 전화를 거니 김종대는 지금 자기 휴가왔다며 바다라며 약만 잔뜩 올리고는 끊어버렸다. 박찬열에게는 햄사진을 찍어보냈더니 누나랑 고기집왔다며 고기사진을 내게 보냈다. 아나. 나는 짜증나는 마음에 핸드폰을 저쪽으로 던져버리곤 티비를 봤다.

 

 

 

 

 

 

 

그리곤 집안가득 울리는 초인종소리에 눈을 떴다. 아 뭐야....비몽사몽한 눈으로 시계를 쳐다보니 시계는 8시를 향하고 있었다. 8시네...8....8시?! 잠을 가득 담고있던 눈이 번쩍 뜨였다. 뭐야 나 잠들었었어? 한참을 시계를 보고 멍때리고있을때 또한번 초인종소리가 집안에 울렸다. 누구지. 나는 잠을 깨기위해 볼을 짝짝 두들기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곤 멈춰서서 눈만 꿈뻑거렸다.

 

 

 

 

 

"잤어?"

 

 

 

 

왜 중국에 있어야할 사람이 여기있는거지. 멍을 때리며 내 눈앞에 있는 담임을 쳐다보자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전화안받더라. 그리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내가 어버버 거리며 담임에게 대답했다. 그...잠들어서...

 

 

 

 

 

"근데 쌤 왜 여깄어요?"

"응?"

"쌤 원래 3일뒤에 오잖아요. 저번에 저한테 그렇게 알려줬던거같은데.."

 

 

 

 

 

내가 달력에 동그라미까지 쳐놨었는데. 나는 의아함을 잔뜩 품고 담임을 쳐다봤다. 담임은 그런 내 질문에 답을 하지않은채 그저 나와 마찬가지로 쳐다만보고있다가 입을 열었다. 백현아.

 

 

 

 

 

"네?"

"우리"

 

 

 

 

 

 

놀이공원갈래?

 

 

 

 

이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지. 두눈만 꿈뻑거리며 담임의 말을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담임은 내 대답도 듣지않은상태로 손목을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옷도 단정히 입고있네 이대로 가도 상관없지? 담임의 말에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난 정말 아직도 상황파악이 되지않고 있는데 몸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담겨져있었다. 손목은 여전히 담임에게 꼭 잡힌상태로

 

 

 

 

 

11

 

 

 

 

 

 

밤거리를 달려 도착한 놀이공원은 거의 폐장시간이였다. 10시에 폐장인데 지금 시간은 9시. 나는 자유이용권을 끊겠다는 담임의 말에 식겁하며 big5표를 끊자 제안했고 담임은 흔쾌히 승낙했다. 늦은 시간에 들어가는 우리를 약간 이상하게 쳐다보는 직원들의 시선은 꾸역꾸역 무시하며 놀이공원안으로 들어갔다. 평일이고 밤이다 보니 생각보다 사람은 없었다. 5개 다 탈수있겠다. 시간이 늦어 밖의 놀이기구는 타지못하고 담임과 나는 실내의 놀이기구를 타기 시작했다.

 

 

 

 

"먹어"

 

 

 

 

놀이기구 4개를 연속으로 타고 약간 지쳐서 의자에 앉아있는 내게 담임은 슬러쉬를 건냈다. 더운 마음에 쭉 들이키자 머리가 띵하고 울리는게 느껴졌다. 으아...내가 두손으로 머리를 잡자 쌤은 머리아프냐며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폐장 10분밖에 안남았네"

"마지막 한개 딱 타면 시간 맞을것같아요"

"음...그럼 백현아"

 

 

 

 

저거 타자. 담임의 손끝을 따라가니 열기구모양의 놀이기구가 있었다. 나도 저거 타고싶었는데. 박찬열, 김종대와 놀이공원올때 맨 마지막으로 꼭 타던 놀이기구였다. 나는 다 먹은 슬러쉬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타요.

 

 

 

 

 

열기구는 우리가 마지막 손님인듯했다. 우리가 찾아가자 멍때리고 있던 직원들이 황급히 마지막으로 우리를 태워주며 슬슬 갈준비를 하는게 보였다. 나는 열기구가 점점 떠오를수록 마음이 들떴다. 완전 이쁘다. 선생님 완전 이쁘죠! 신난 마음에 활짝 웃으며 담임을 봤던 나는 약간 놀랬다. 아래 놀이공원은 보지않고 나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담임때문이였다. 하하...담임의 시선에 약간 머쓱한듯 웃으니 그제서야 내게 시선을 뗀 담임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쁘네. 담임이 웃으며 말했지만 이젠 내가 아래풍경에 신경을 쓰지못하게됬다. 뭐지.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아까랑은 뭔가 변했는데.

 

 

 

 

 

열기구가 중후반까지 다다를때까지 담임과 나사이엔 대화가 이어지지않았다. 아 진짜 뭐냐고 이 분위기. 불과 몇분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 식은땀만 흘리고있자, 담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현아"

"ㄴ...네?"

 

 

 

 

내 눈을 똑바로 맞춰오는 담임때문에 나는 놀래서 말을 더듬었다. 아 바보같아 보였겠다. 나는 눈을 내리깔다가 다시한번 날 부르는 담임에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중국에 왜 갔는지 안궁금해?"

"중..중국에요?"

"응"

"...왜가셨는데요?"

 

 

 

 

왜 갑자기 내게 이러는걸까. 나는 일주일간 정말 궁금했던 질문을 내뱉었지만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였다. 아무 대답없는 담임의 눈치를 살피다가 나는 담임의 손에 시선을 두었다. 그리고 뭔가 마음속 어딘가가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반지가.

 

 

 

 

"첫사랑"

 

 

 

 

반지가 없다.

 

 

 

 

"결혼식에 다녀왔어"

 

 

 

 

 

난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되는걸까. 나를 빤히 쳐다보는 담임을 같이 쳐다보다가 나는 두손을 꼭 쥐었다. 손이 차다. 긴장할때 나오는 내 특징. 입술을 꾹 깨물었다. 뭐라 말해야되. 괜찮으시냐고? 힘드시냐고? 내가 그런걸 물어야하는건가. 싫다. 그런 말 하기 싫다. 첫사랑때문에 힘드냐고 묻기 싫었다. 이유따윈 없었는데 그냥 묻기 싫었다. 물으면 내가 힘들것만 같았다.

 

 

 

 

 

"첫사랑이 날 보고 뭐라했는지 알아?"

"....뭐라고..하셨는데요"

 

 

 

 

알고싶지않다.

 

 

 

 

 

"내게"

"...."

"사랑을 하고있냐고 물었어"

 

 

 

 

나는 담임의 말에 더욱 입술을 깨물었다. 담임의 사랑은 첫사랑일거다. 적어도 5년 이상은 끼고 다녔을 그 반지가 내게 대신 말해줬었다. 나는 아직도 첫사랑을 사랑해. 나는 왠지 모르게 울것만 같았다.

 

 

 

 

"....백현아"

"..."

"나는 너랑 학기초때의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담임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들어 눈을 맞췄다. 눈에 힘을 최대한 주고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왜..왜요"

"...첫사랑이 내게 그렇게 물었을때"

"...."

"백현아"

 

 

 

 

 

난 그순간 너가 생각났어.

 

 

 

 

 

 

-

 

 

 

 

 

 

비행기 안에서 준면이형은 짧게 욕을 내뱉었다. 루한새끼. 그리고 옆에있던 크리스형이 그런 준면이형에게 조용히 하라며 짧게 신호를 줬다. 도경수는 그저 내 눈치만 보고있었다. 세명다 내게 신경을 쓰고있다는게 느껴졌지만 난 그냥 아무말도 하지않은채 비행기밖만 내다봤다. 10년만에 만나는 루한이였다. 여태껏 연락이 없다가 오랜만에 온 소식이 청첩장. 심란했다. 괜히 가겠다고 했나. 집에서 백현이랑 놀기나 할걸.

 

 

 

 

 

비행기에서 내리자 우리는 루한이 보낸 사람을 따라 호텔로 들어갔다. 루한 부자인건 알았는데 이정도인줄은 몰랐다. 준면이형이 감탄하며 짐을 내려놨다. 호텔은 정말 좋았다. 야경도 엄청나게 좋았고 시설도 좋았다. 씻을까 싶어 옷가지를 챙기는데 밖에서 아까 그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들어온 경수가 바로 나가자며 말했다. 뭔데? 크리스형의 말에 도경수는 살짝 내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루한이가 보자고 한데"

"..아 거 지가 좀 오면 안돼?"

"주인공인데 우리가 가줘야지"

"선배대접을 제대로 하는 놈들이 없어 진짜.."

 

 

 

 

준면이형은 귀찮다고 투덜거리며 먼저 나갔다. 가자. 내 등을 살짝 밀는 크리스형을 한번 쳐다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루한. 10년의 루한. 매번 그렸던 얼굴인데 나는 약간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도경수는 나랑 눈도 못마주치고 있었다. 나보다 세명이 더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나 정말 민폐덩어리구나. 괜히 반지를 만지작 거렸다.

 

 

 

 

 

그리고 루한이 있다는 호텔방문에서 우리 넷은 아무도 먼저 벨을 누르지못했다. 서로 눈치만 보고있었다. 하....짧게 한숨을 내쉰 나는 한발자국 걸어나가 벨을 눌렀다. 뚜벅뚜벅 걸음소리가 점점 문 가까에서 들려왔다. 몸이 뻣뻣이 굳어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리고 보이는 얼굴에 나는 눈물을 터트릴뻔했다.

 

 

 

 

"종인아!"

 

 

 

 

 

변한게 없는 너의 모습에. 10년전 그때랑 같이 두팔을 벌려 날 꽉 안아준 너때문에.

 

 12

 

 

 

 

 

 

 

 

뻣뻣이 굳어 루한에게 안겨있으니 크리스형이 웃으며 날 루한에게서 떼어놨다. 루한. 형의 부름에 루한은 내게 향했던 시선을 크리스형을 쳐다봤다. 형! 루한이 이번엔 크리스를 꽉 껴안았다. 나는 그제서야 잠시 멈췄던 숨을 거칠게 내뱉었다. 내 모습에 루한하고 대충 인사를 한 도경수가 다가와 어깨를 붙잡았다. 괜찮아? 나는 대답도 하지않은채 고개만을 끄덕였다.

 

 

 

 

루한은 여전했다. 여전하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10년전의 루한이 내게 다시 찾아온것만 같은 느낌이였다. 루한은 여전히 밝게 웃었고 멋있었으며 아름다웠고

 

 

 

"너무 오랜만이다. 10년만인가"

 

 

 

 

내 추억들을 담고있었다.

 

 

 

 

"그래 10년만에 연락해놓고선 그게 청첩장이라니"

"하하 미안. 내가 워낙에 정신없이 중국으로 왔었잖아"

"크리스는 중국갔었을때도 계속 연락했었었어"

"나도 가끔씩은 했는데!"

 

 

 

 

뭐, 저번에 한번 이메일 보낸거? 준면이형의 구박에 루한은 머쓱한지 이마를 긁었다. 나는 루한의 그 버릇에 몸이 움찔하는게 느껴졌다. 나랑 같은 버릇. 고등학생때 서로 버릇이 같다며 신기해했었는데.

 

 

 

 

"아! 내 정신 좀 봐 들어와. 소개시켜줄 사람있어"

"소개시켜줄 사람?"

 

 

 

 

도경수가 약간 날카롭게 물어왔다. 도경수는 눈치가 빨랐다. 그런 경수의 반응에 루한은 그저 환히 웃더니 우리들을 방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방 가운데 소파에서 가만히 앉아있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일어서는 한 여자를.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자의 인사에 우리는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이였지만 누군지 알것만 같았다. 루한이 고등학교때부터 항상 말했던 흰피부에 긴생머리 큰눈. 그래, 여자는 루한의 이상형을 빼다박은듯했다. 도경수는 이미 날을 세운상태였다. 크리스형과 준면이형도 숨기려고하고는있지만 날이 서있는게 느껴졌다. 이 방안에서 여유롭고 평온한건 두사람밖에 없었다. 루한이 자연스럽게 여자의 허리를 감쌌다. 눈을 감고싶어졌다.

 

 

 

 

"소개할게. 여긴 내 아내될 사람 메이라고 부르면돼"

"메이입니다. 루한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고등학교때 친한친구분들이라고.."

 

 

 

 

'메이'라고 소개한 여자는 능숙하게 한국어를 하며 웃어보였다. 메이도 나처럼 한국교환학생이였어! 루한이 환히 웃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나는 입술을 한번 꾹 깨물었다가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김종인 입니다. 내 인사에 그제서야 나머지 셋도 메이와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만난지 몇분되지도 않았지만 몇마디대화로 나는 메이가 매우 좋은 사람이란게 느껴졌다. 행동 하나하나에서 여성스러움이 묻어났고 조신했으며 말도 사근사근히 잘했다. 처음 본 우리를 낯설게 여기지도 않았고 편안하게 대해줬다. 일등신부감이네. 준면이형이 작게 속삭였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어울린다.

 

 

 

 

"나 담배 좀"

"어, 종인 담배펴?"

"...아...어"

 

 

 

 

루한이 중국으로 돌아가자 손을 덴 담배였다. 루한이 모르는게 당연했다. 나는 살짝 담뱃갑을 흔들고는 발코니로 나갔다. 한국도 더운데. 중국은 더 덥다. 멍때리고 담배를 피고있자니 백현이가 떠올랐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게 담배냄새에요. 내 눈치를 보며 딱잘라 담배피지말라고는 못하고 돌려말하던 변백현. 괜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하고있을까.

 

 

 

 

"으아 담배연기!"

"어...어? 루한 왜나왔어?"

 

 

 

 

손을 휘휘 저으며 다가오는 루한에 나는 황급히 담배를 꺼버렸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 루한을 보며 난 짧게 말했다. 미안. 내 사과에 뭐가 웃긴건지 루한은 날 쳐다보다가 빵터졌다.

 

 

 

 

"여전하구나"

"....뭐가"

"나한테 사과 많이 하는거"

"..."

 

 

 

 

고등학생때도 맨날 내가 뭐만하면 미안하다고 했었잖아. 루한의 말에 나는 머쓱하게 이마를 긁으며 그랬었나 중얼거렸다. 사실 다 기억나는데. 고등학교때의 너와 나. 항상 너에게 쩔쩔매던 나.

 

 

 

 

"10년동안 어떻게 지냈어?"

"...그냥...애들 가르치지"

"와, 결국 선생님 된거야?"

"응"

"멋지다"

 

 

 

 

루한이 환히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멋있다. 나는 그 웃음을 같이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래, 멋있지.

 

 

 

 

우리는 그 이야기를 끝으로 서로 아무말도 없이 도시의 야경만을 바라보고있었다. 처음 와본 중국은 생각보다 다를게 없었다. 도시는 서울처럼 반짝반짝 빛났고 사람들로 북적댔다. 멍을 때리며 야경만을 바라보고있자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루한이 내 손을 바라보고있는게 보였다. 손? 루한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서 나는 놀랄수밖에 없었다. 반지. 빼놓은다는걸 깜빡하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손을 주머니속으로 집어넣었다. 루한이 날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반지"

"..."

"아직도 끼고있네"

 

 

 

 

루한의 말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한참을 그렇게 대치상태로 있다가 나는 그냥 한숨을 쉬며 손을 꺼내 얼굴을 감쌌다. 너무나도 오래된 내 반지는 빛을 가지고있었긴한건지 다 닳아있었다. 그에 비해 루한의 손가락에 자리잡은 반지는 너무나도 빛나고 있었다. 내것과 비교되게. 더욱 밝게.

 

 

 

 

"반지 아직도 끼고있을지 몰랐어...당연히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렸을거라 생각했는데"

"...너는 그 둘중 하나에 해당되나보네"

"...미안해서 어쩌지"

 

 

 

 

나는 루한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할게 뭐가있어. 이 반지를 끼고있는 내가 비정상적이고 이상한거고 미안한거지. 너의 순수한 마음을 내 욕심으로 덮어버린 더러운 반지. 수현이에게도 너에게도 미안하기만한 반지.

 

 

 

 

"종인아"

"..응"

"여전하니?"

 

 

 

 

여전하니. 그 네글자에 나는 가슴이 순간 쿵 떨어지는 느낌이였다. 한동안 루한을 보며 나는 멍을 때렸다. 그리고 루한은 그런 내가 입을 열때까지 가만히 지켜봐줬다. 응, 여전하지. 나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한은 그런 나를 보더니 또한번 물었다. 그럼

 

 

 

 

"너의 하루는 행복하니?"

 

 

 

 

옛날부터 루한이 자주 묻던 질문이였다. 오늘 하루 행복했어? 루한은 하루라는 단어를 좋아했었다. 난 너의 하루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고등학교때 루한의 입버릇과 같은 인사에 다른이들은 오글거린다며 질색을 했지만 나는 그 질문을 무척 좋아했다. 그때의 나는 루한때문에 하루가 행복했었다. 나는 10년만에 듣는 질문에 생각에 잠겨야만했다.

 

 

 

 

루한이 급작스럽게 한국을 떠나고 나의 하루는 매일매일이 지옥이였다. 고3이였지만 정신을 차리지못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첫사랑, 거기다 짝사랑의 끝은 너무나도 아팠고 괴로웠다. 그다음 대학생때부터 선생이 될때까지 나의 하루는 추억속에 있었었다. 눈만 감으면 나는 18살로 돌아갔었다. 그때의 하루는 어땠는지 모른다. 수현이와도 나는 추억속에서 살았던것일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은?

 

 

 

 

"....모르겠어"

"..."

"내 하루가 어떤지"

 

 

 

 

 

모르겠다 루한아.

 

 

내 표정이 어떨까. 아마 엄청나게 울상을 짓고있을지도 모른다. 루한의 앞에만 서면 나는 18살의 그때의 나처럼 너무나도 무기력해진다. 루한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펑펑 울던 그날처럼.

 

 

 

그리고 순간 나는 18살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백현이를 떠올렸다. 내 추억속 루한과 똑같은 말을 해주던 변백현. 몇달간 항상 내 곁에 있던 변백현. 같이 웃던 변백현. 변백현. 변백현.

 

 

 

 

 

"종인아"

"응"

"사랑을 하고있니?"

 

 

 

 

 

 

 

변백현.

 

 

 

루한이 10년전에 그때처럼 나를 꼭 안았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루한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완벽히 10년전 그 상황같았다. 너와 나 단 둘. 그리고 너의 말. 근데 다른 점은.

 

 

 

 

 

지금 나는 변백현이 보고싶었다.

 

 

 

 

 

 

 

 

-

 

 

 

 

 

 

 

 

최대한 정갈하게 슈트를 입은다음 나는 거울앞에 섰다. 한참을 거울을 보고 멍때리고있자 밖에서 준면이형이 신경질적으로 날 부르는게 들려왔다. 곧 나가! 크게 외치고는 나는 거울을 보며 크게 숨을 마셨다. 그리곤 내 손에 끼어져있던 오래된 반지를 꺼내 탁자위에 올려놨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은 정말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옆에서 슈트를 입은 루한의 모습도 신부에게 지지않을만큼 멋졌다. 잘어울리는 한쌍이였다. 정신없이 시작된 결혼식은 둘의 키스로 끝이 났다. 곧이어 바로 사진타임이 이어졌다. 가족들과 루한이 사진을 찍을동안 오글거린다며 사진을 안찍겠다고 밖으로 나가려던 우리들은 루한의 부름에 거의 끌려오다시피 루한의 옆에 서야만했다.

 

 

 

 

 

루한과 신부와 사진을 찍고 다시 나가려던 우리들을 루한이 붙잡았다. 그러곤 사진기사랑 신부에게 중국어로 무언갈 부탁하더니 우리에게 다가왔다. 신부는 옆으로 슬쩍 빠졌다. 경수의 말에 루한이 환히 웃으며 말했다. 우리끼리 하나 찍자.

 

 

 

 

 

"또 언제만날지 모르잖아"

"너가 한국오면 되는건데"

"그러기가 힘들잖아 좀 봐줘"

 

 

 

 

 

루한의 애교아닌 애교에 준면이형은 그저 피식 웃고는 옷을 단정히 했다. 고등학교때 이후 오랜만에 찍어보는 5명의 사진이였다. 나는 그 순간 또 18살로 돌아간듯했다. 루한이 한국을 떠나기전, 찍었던 사진. 전날 너무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루한의 어깨를 쥐고 찍었던 그 사진. 나는 루한이 떠나고 그사진을 붙잡고 몇날을 울었었다.

 

 

 

 

 

사진기사의 신호와 함께 카메라 후레쉬가 팡 터졌다. 그리고 준면이형은 오글거린다며 루한의 어깨를 한번 건들이더니 식장을 나갔고 크리스형은 경수를 끌고 배가 고프다며 나가버렸다. 나도 나가야지. 발걸음을 돌리자 루한이 살짝 잡아오는게 느껴졌다. 왜? 궁금증을 가지고 루한을 보니 루한이 웃으며 날 보고있었다.

 

 

 

 

 

"종인아"

"응"

"고마워"

"...."

"...."

"뭐가"

"그냥 전부 다"

 

 

 

 

 

루한이 밝게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내 첫사랑. 아픈 내 추억이 10년만에 날 올곧이 쳐다봤다.

 

 

 

 

 

"행복해"

 

 

 

 

 

아름다운 내 추억이 날 쳐다봤다.

 

 

 

 

 

 

"너도"

 

 

 

 

 

10년의 끝에서 이번에 찍은 사진을 보고선 나는 웃었다. 울지않고. 웃었다.

 

 

 

 

 

-

 

 

 

 

 

 

도경수나 형들이 나가서 구경 좀 하자고 자신들이 언제 중국에 또 와보겠냐며 징징댔지만 나는 깔끔하게 거절했다. 나 지금 시련의 아픔을 겪는 중이야. 내 말에 도경수가 푸스스 웃었다. 그래 열심히 겪어. 그말을 끝으로 셋은 방을 나갔고 나는 창밖만 멍하니 쳐다봤다. 내 삶은 루한밖에 없는 줄알아서 나는 루한이 내 삶에서 나가면 나도 죽을거라고 생각했다. 숨막혀서 곧 죽어버릴거라고. 하지만 나는 내 예상과 다르게 숨쉬고있었다. 손에서 반지가 없어졌는데 유일하게 남아있던 루한의 흔적이 없어졌는데도 나는 이상하게 꽤나 괜찮은 기분이였다.

 

 

 

 

 

루한의 자리가 나가고 텅빈자리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때, 마음쪽 다른한편이 꾹 막혀있었다. 변백현. 우여곡절이 많았던 내 제자. 내 옆집. 내 동생. 그리고,

 

 

 

 

 

"으아...."

 

 

 

 

 

마음을 한번 깨닫기시작하면 그 감정은 무섭게 빠른속도로 밀려들어온다. 루한의 자리였던 곳을 위협할만큼. 하지만 나는 그 속도를 두려움이란 감정으로 겨우 막고있었다. 예전에 나는 도경수보고 형이라 부르는 백현이를 보며 도경수가 참 양심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지금 내 상황은 더했다. 이게 말이 돼? 10살이 어렸다. 내가 20살일때 10살이였다고. 거기다가 백현이는 완벽한 노말이였다. 저번엔 내게 첫사랑이야기도 했었는데.

 

 

 

 

 

"안돼"

 

 

 

 

 

정신차려야한다

 

 

 

 

 

"절대 안돼"

 

 

 

 

 

위험하니까

 

 

 

 

 

 

머릿속정리가 다 되었을때, 나는 바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만나야했다. 변백현을.

 

 

 

 

 

 

+

약간의 오글거림이 있어야 첫사랑이지 다음부터는 본격적인 카백진도나가기

 

 

 

13

 

 

 

 

 

 

학원을 일주일동안 가지않았다. 핸드폰은 불이 났다. 박찬열 박찬열 학원 학원 박찬열 그리고.

 

 

 

'형' 부재중 3통

 

 

 

태어나서 처음으로 형의 연락을 무시해봤다. 덕분에 부모님에게까지 연락이 왔고 집에 형이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문앞에서 열라고 화를 내는 형에게 그저 소리쳤다. 그냥가! 내 목소리에 형은 충격을받은건지 뭔지 그다음부턴 오지않았다. 그리곤 김종대와 박찬열에게 문자가 왔다. 백훈이 형 존나 충격먹은것같은데. 아 몰라. 지금 나보다 더 멘붕인 사람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나는 핸드폰을 그냥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놀이공원날 이후 나는 일주일동안 담임을 보지못하고있었다. 괜히 현관문에 기대서서 밖소리를 듣기도 하고 엘리베이터앞에 멍청하게 서있기도 하고 담임의 집앞에서 벨을 누를까말까 계속 고민하며 서있기도 했지만 한번도 만난적이 없단말이다! 아씨 진짜 짜증난다.

 

 

 

따지고보면 피해야할사람은 나 아냐?

 

 

 

 

나 좋아한다며! 고백했잖아! 그 열기구 안에서 나한테! 고!백!했잖아!

원래는 내가 피해야하는거아니냐고. 남자에게 고백받았는데. 그것도 담임에게. 근데 왜 담임이 날 피하는걸까. 아니 피하려면 일단 내 마음을 정리해주던가. 그냥 다짜고짜 너랑 예전으로 돌아가고싶다. 이유는 내가 널 좋아해서야 이러면 내가 아 그렇군요. 절 좋아하면 안돼죠. 첫날로 돌아가요 우리. 이래야하는거야?

 

 

 

 

"으아아아아아!!!!"

 

 

 

 

애꿎은 배게만 쥐어짜다가 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 화장실에 살짝 보이는 담임의 칫솔을 째려봤다. 진짜....울것만같다. 진짜로.

 

 

 

 

 

 

-

 

 

 

 

 

 

30분에 대기를 타고 현관문만 뚫어져라 쳐다봤다.그러고있자 옆집문이 열리고 곧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이대로 우리집벨을 눌러. 누르라고! 현관문을 불태울듯한 눈으로 계속해서 노려보고있는데도 벨은 커녕 문앞에 인기척도 느껴지지않았다. 하아....급 치솟아오르는 분노에 문을 벌컥 열자 엘리베이터를 타고있는 담임이 눈에 보였다. 아 시발 진짜! 나는 빠르게 달려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그리고 담임하고 눈을 맞췄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래"

 

 

 

 

하! 나는 내 인사에도 대충 대답하고 층수를 누르는 담임을 노려보다가 깜짝놀래서 황급히 1층을 눌렀다. 미친. 담임은 지하 1층을 눌렀었다. 기분이 진짜 나빠졌다. 담임보다 살짝 뒤에 서서 담임의 뒷통수를 계속해서 째려봤다. 난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어제 잠도 못잤는데 담임은 정말 깔끔하게 학기초로 돌아간것같았다. 이게 뭐야. 왜, 왜 고백받은사람이 이렇게 힘들어야하는거야.

 

 

 

 

1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지만 정말로 담임은 꿈쩍도 안하고 서있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시발 나도 몰라. 그래 게이새끼야. 누군 시발....고백받고 진짜 일주일동안 미칠것만 같았는데. 나는 괜히 가방을 다시한번 매고선 휙 엘리베이터를 나왔다. 열받는다.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날듯한 기분이다.

 

 

 

 

 

"어 변백현!"

"와 진짜 변백현이네"

 

 

 

 

우리 너 죽은거아니냐고 이야기하고있었는데. 저 멀리서 김종대와 박찬열이 달려오면서 말했다. 일주일동안 대체 뭐했던거야? 둘의 질문에 나는 그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

 

 

 

 

"백훈이 형 진짜 화났어"

"맞아 형이 새벽에 전화했다니까. 백현이한테 무슨 일 생긴거아니냐고"

"......몰라"

"헐"

 

 

 

 

이거 진짜 변백현 맞아? 박찬열이 내 볼짝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백훈이형 연락이라면 자다가도 받는 변백현 맞냐고. 몰라. 모른다. 백훈이형도 나도 담임도 그래 난 아무것도 모르겠다. 다 놓고싶어. 나한테 왜 이런 상황이 찾아오는걸까. 흐어 종대야 형 죽고잡다. 김종대의 어깨에 얼굴을 묻자 김종대는 징그럽다며 날 밀쳐냈다. 썅 진짜...

 

 

 

 

"그나저나 이제 개학도 했으니까"

"응"

"곧 축제준비로 바빠지겠네"

 

 

 

 

축제? 박찬열은 그 큰눈을 두어번 껌뻑거리더니 아!하는 영구박터지는 소리를 냈다. 맞아 축제! 그리고 옆에있던 나도 박찬열을 따라 작게 아 소리를 내뱉었다. 진짜 축제준비해야하네. 중간고사전에 빨리 끝내버리는 축제였기때문에 아마 시간은 별로 없을것이였다. 아씨 지금 이런 내 감정으로 축제준비를 해야해?

 

 

 

 

-

 

 

 

 

 

역시나 개학식이라 그런지 수업을 나가는 선생님들은 없었다. 반갑다 오랜만이다 공부 열심히 했냐. 똑같이 반복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에 나는 살짝 지루해 졸았다. 그리고 종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렸을때는 수학시간이였다. 수학. 그래 수학...수학?! 담임? 나는 황급히 입가를 정리하고 머리를 꾹꾹 눌르다가 멈칫했다. 내가 왜 이러는거지. 수학시간이 뭐가 대수라고. 아씨, 나는 정리했던 머리를 헝크러트리곤 앞문만 뚫어져라 째려봤다. 왜이렇게 안와. 선생이 이래도 되?

 

 

 

 

그리고 담임이 들어왔을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책상만을 쳐다보고있었다.

 

 

 

 

"어차피 수업 오늘 나간다고 좋을것도 없고"

"와아!"

"축제이야기나 하자. 빨리 정해야하는거알지?"

 

 

 

 

뭐하고 싶어. 담임의 말에 여기저기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귀신의 집이요! 분식집이요! 분식집의견을 낸건 박찬열이였다. 하이고, 누가 떡볶이덕후아니랄까봐. 나는 최대한 담임이 안보이게 손으로 가리고 박찬열을 보면서 낄낄댔다. 그리고 그때 정수정이 손을 번쩍들고 말했다. 마치 한심한 중생을 보는듯한 눈길로 우리를 한번 쓱 훑고는 담임을 보며 똘망똘망하게

 

 

 

 

"카페해요! 유니폼입고!"

 

 

 

 

카페? 나는 정수정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또한번 영구박터지는 소리를 냈다. 정수정네 삼촌이 카페하시지! 정수정은 자신의 삼촌이야기를 하면서 으쓱거리고있었다. 대충 커피랑 와플같은거 팔면 될거라고. 인기 엄청 많을거라고 정수정은 마치 선거유세를 하듯이 말했다.

 

 

 

 

"그럼 투표해볼까"

 

 

 

 

1번 귀신의 집 2번 분식집 3번 카페. 나는 내앞에 놓인 작은 종이를 쳐다보다가 3번을 크게 썼다. 1번은 너무 귀찮고 2번은 말도안되는 소리다. 그나마 나은게 3번. 뭐 대부분 필요한것들은 정수정이 가져올테니까. 그리고 투표결과는 뻔했다. 3번. 정수정은 신난다며 소리를 질렀고 박찬열은 말도안된다며 울부짖었다. 참고로 2번 분식집은 1표 나왔다. 1표의 주인공은 너무나도 뻔했고.

 

 

 

 

신나있는 정수정과 짜증내는 박찬열을 낄낄거리며 바라보다가 나는 실수로 손을 내려 담임이 있는곳을 쳐다봤다. 그리고 마주쳤다. 날 쳐다보고있던 담임과 눈이 마주쳤다. 헉. 순간 몸이 딱 굳는게 느껴졌다. 1초, 2초, 3초. 담임은 나와 눈을 맞추고있던걸 황급히 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 다른애들을 보며 환히 웃어줬다. 뭐야 이거.

 

 

 

나 진짜 좋아하긴한거맞아?

 

 

 

기분은 정말 최악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계속 나온다 이거지. 나도 매달리고 싶지않다. 담임을 피하려고했던건 내 쪽이 먼저였었다고. 나도 무시할거다. 진짜 우린 학기초때로 돌아가는거다. 이 혼란스러운 마음은 그냥 꾹꾹 눌러 밖으로 던져버릴거다. 몇일만, 몇일만 더 있으면 다 잊혀질 감정일거다.

 

 

 

 

 

-

 

 

 

 

 

유니폼은 빨리 정해졌다. 무조건 우리 컨셉은 깔끔이야. 카운터에 있는 애들과 커피만드는애들은 정수정이 가져온 카페유니폼을 나머지는 하얀와이셔츠에 남자는 검정바지 여자는 검정치마. 나는 거의 반 억지로 카운터를 맡게됬다. 나도 서빙하고싶은데! 내 말에 여자애들은 원래 서빙은 멋있는 애들이 하는거고 카운터는 귀여운애들이 하는거라며 날 달랬다. 아니 그니까 너네 말은 내가 안멋있고 귀엽단 말이여? 내 짜증에 여자들은 그저 깔깔대며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나와 박찬열, 반장은 정수정마녀때문에 삼촌의 가게에서 가져온 것들을 우리반까지 가져다놔야만했다. 썅 진짜 힘들어! 박찬열은 땀에 젖은 머리를 대충 쓸어넘기며 미간을 찌뿌렸다. 그런 박찬열을 보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박찬열의 미간을 꾹꾹 누르며 안이쁘니까 피라고 했다. 그러곤 깜짝놀라서 손을 뗐다. 시발 내가 방금 뭘한거지.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담임의 생각에 나는 기분이 팍 상했다. 담임, 둘이서만 이야기 안한지 벌써 3주가 지났다.

 

 

 

 

우리가 기구들을 가져다놓고 하니 나머지 애들이 책상배열을 맞추고 교실을 꾸미기 시작했다. 오오 이렇게 해놓으니 꽤나 카페같은 분위기가 났다. 좋은데? 반장이 만족한듯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고 여자애들은 저들이 꾸몄지만 이쁜지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않았다. 곧이어 담임이 들어왔고 앉을곳이 없는 우리에게 빨리 종례할테니 서서들으라며 장난조로 말했다.

 

 

 

 

"내일 옷들 까먹지말고 잘 입고오고"

"네에"

"늦지말고"

"네에!"

 

 

 

 

따지고보면 너네 마지막으로 노는 날이니까. 확실히 놀아라.

 

 

그말을 끝으로 담임은 해산!을 외쳤고 애들은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하나둘씩 가방을 챙겨들고 교실밖으로 나갔다. 나도 가방을 챙겨매고는 박찬열을 기다리는척하면서 담임을 슬쩍 엿봤다. 애들에게 하나하나 인사해주며 웃어주고있었다. 나는. 나한테는? 내가 뚫어져라쳐다보니 시선이 느껴진건지 담임이 살짝 내쪽을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짧게 눈이 마주치자 담임은 또 재빨리 피해버렸다.

 

 

 

 

학기초때로 돌아가자며. 그럼 적어도 학생1정도는 취급해줘야 되는거아닌가.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언제온건지 박찬열이 왜 또 그러냐며 볼을 잡아댕겼다. 아파 시키야! 나는 괜히 박찬열에게 투덜거리며 교실밖으로 나갔다. 교실밖에선 김종대가 쭈구리처럼 앉아서 우릴 기다리고있었다. 아거 겁나 늦게나오네! 김종대의 말에 대충 미안하다고 말한다음 우리 셋은 나란히 걸어갔다. 아, 집들어가기싫다.

 

 

 

"야 김종대"

"왜"

"오늘 박찬열집 콜?"

"내일 축젠데?"

"축제니까 뭐 바로가면 좋잖아"

"그래 콜"

"....병신들아 집주인은 생각이 없거든?"

 

 

 

 

아이 뭘 또 그러나. 익숙하게 김종대가 왼팔 내가 오른팔에 매달리자 박찬열의 표정이 보기좋게 썩어들어갔다. 놔라 키작은놈들아. 키작은놈들이라니. 나 또 1cm컸는데 나는 박찬열이 얄미워서 더욱 매달렸다. 자게 해줘!! 내 외침에 김종대도 덩달아 징징거렸다. 자게해줘어어!! 한참을 그 상태로 걸어가서야 박찬열은 욕을 내뱉으며 허락했다. 아시발 알았으니까 작작해 쪽팔려!

 

 

14

 

 

 

 

 

 

 

갈색 유니폼에 모자까지 얹으니 앞에 앉아있던 여자애들이 박수를 치며 귀엽다고 해줬다. 뭔가 달래는것만 같은 이 느낌은 뭐지. 나는 괜히 여자애들을 째려보고는 카운터앞에 서서 카페준비로 바쁜 애들을 쳐다봤다. 오픈까지 10분여밖에 안남았는데 정수정은 커피를 또 실패한건지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고 서빙담당이라 할게없는 박찬열은 그 옆에서 비웃고 있었다. 반장은 계속 빨빨 돌아다니며 여기저기를 코치하느라 정신없어보였다. 난 뭐하지. 돈정리도 다했고 가격표도 다 적었는데. 나는 괜시리 손에 쥐고있던 분필만 똑똑 부러뜨리다가 저 구석에서 애들과 이야기 중인 담임을 쳐다봤다.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이유로 반애들에게 거의 반협박을 당해 담임은 서빙이라는 임무를 얻었다. 서빙이라니. 나는 검정바지에 흰와이셔츠를 팔뚝까지 걷어올린 담임을 멍하니 쳐다봤다. 아 시발 잘생겼어.... 잠시 멍때리고 담임을 쳐다보다가 정신을 차리곤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어제도 나는 박찬열의 집에서 거의 날을 세야만했다. 잠들기전에 급 물어온 종대에 질문때문에. 너 담임이랑 또 왜그래? 그 질문에 나는 밤새 담임을 씹고뜯고욕하면서 분노하다가 우울해지다가 별 정신병같은 증상을 다 보였다.

 

 

 

 

내가 게이였던건가. 새벽에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편견은 없어도 당사자가 나라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는데. 근데 왜 남자가 나한테 고백을 했는데 기분이 이상하던가 그런게 아니라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걸까. 심란하다. 난 심란한데 내가 심란함을 심어준 담임은 저기서 하하호호 웃고나 있다. 시발. 나도 모르겠다. 울것만 같았다.

 

 

 

 

곧 교실앞 open이라는 팻말을 걸어두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 학교가 2개나 개교기념일이여서 그런지 손님은 생각보다 많았다. 우리보다 어려보이는 사람부터 성인처럼 보이는 사람까지 카페는 금방 북적북적거렸고 나는 매우 바빠졌다. 으아 죽겠다. 별이상한 주문을 해대는 손님을 멍청하게 쳐다보며 겨우 주문을 받은 나는 정수정에게 대충 주문내역을 넘기자마자 또 손님이 내앞에 섰다. 하..., 진짜 죽을것같은데 나는 조금이라도 표정이 굳어지면 여기저기서 째려보는 시선에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뭐 주문하시겠습니까 손님.

 

 

 

 

"아...저...."

"네"

"카페라테 주시구요...저기...또..."

"네 정수정 카페라테! 네 또 말씀하세요"

"....그쪽...그쪽 번호 좀 주시면 안될까요?"

"네 번ㅎ...네?"

 

 

 

 

번호요? 난 눈을 도쌤만큼 크게 뜨고 앞에 볼을 빨갛게 물들인 여자애를 쳐다봤다. 헐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내가 멍때리고 있자 정수정이 발을 툭 차오는게 느껴졌다. 미친놈아 주문 안받아? 내가 지금 무슨상황에 놓여있는지 모르는지 정수정은 인상을 구기고 말했다. 내가 지금 농땡이 피우는걸로 보여? 나 지금 번호따이게생겼다고 세상에나. 나는 눈을 땡그르르 굴리며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되지. 귀엽긴 한ㄷ...

 

 

 

"아"

 

 

 

 

눈을 굴리다가 나는 날 쳐다보고있는 담임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짧게 소리가 나갔다. 아. 내 반응에 원래대로라면 바로 시선을 피해야할 담임이였지만 이상하게도 담임은 시선을 피하지않고 계속 쳐다보고있었다. 왜...왜저래... 침을 한번 꿀꺽 삼키며 나도 담임을 계속 쳐다보고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옷자락을 살짝 잡는 여학생에 시선을 돌려야만했다. 아씨 뭐야. 살짝 찌뿌려진 내 미간에 여학생은 당황했는지 황급히 옷을 놓고는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귀엽긴한데

 

 

 

 

 

"죄송해요"

"..네?"

"...좀 애매한 사람이 있어서요"

 

 

 

 

나는 그말을 하면서도 여학생이 아닌 담임을 쳐다봤다. 담임은 내 앞에서 창피한지 황급히 자리를 뜨는 여학생을 힐끔보고 또 날 보고는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뭔데. 나는 괜히 입술을 축였다.

 

 

 

 

 

-

 

 

 

 

 

카운터는 살짝 한가해졌다. 이제 카페에는 새로 찾아오는 손님들보단 앉아서 수다를 떠는 손님이 더 많은 상태였다. 정수정은 피곤해 돌아버리겠다며 다른애들과 우리가 따로 만든 휴게실로 들어가버렸고 나는 혹시 몰라서 멍하니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서빙애들 힘들겠다. 나는 옆에 놓인 사탕을 하나 집어먹으며 애들을 훑어봤다. 전부다 남은건 아니지만 몇몇 서빙애들은-대부분남자- 남아서 손님들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시달리네. 나는 지금도 몇몇여자애들에게 붙잡혀서 억지미소를 짓고있는 박찬열을 쳐다봤다. 쟤는 오늘하루 받은 연락처만해도 10개가 훌쩍 넘어갈거다. 나도 5개는 받았는데. 뭐, 내 번호는 주지않았지만....나는 괜히 옆으로 치워둔 종이쪼가리를 쳐다봤다.

 

 

 

 

저 종이쪼가리를 받을때마다 나는 담임의 시선을 느껴야만했다. 대체 왜? 왜 저런 눈으로 날 쳐다보는걸까. 처음때는 나랑 눈이 마주쳐도 안피하더니 그다음부터는 내가 연락처를 받을때 쳐다보기만 하면 바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 행동덕분에 또 미치는건 나였다. 뭐하는거냐고 대체.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이 그런지 대놓고 치근덕대지는 못하고 슬슬 말만 걸어오는 여학생들에게 짧게 말대꾸만 해주던 담임을 째려보다가 나는 벌컥 열리는 교실문에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휴게실에 있던 정수정도 반사적으로 튕겨져나왔다.

 

 

 

 

"백현아!"

"어...도쌤 면쌤!"

"아...귀찮아..."

 

 

 

 

왜 이제야 왔어요! 내가 애교를 잔뜩 담은 말투로 말하자 준면쌤은 징그럽다며 날 타박했다. 말은 그렇게하면서 내 애교에 얼굴가득 웃음을 담고있었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정수정이랑도 인사를 하는 도쌤면쌤을 보다가 그 옆에 딸려있는 한 선생님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윤리다. 시발 윤리.

 

 

 

 

"뭐 주문하실거에요?"

"도쌤, 도쌤은 제가 특별히 제 사랑을 담은 음료를 만들어드릴게요"

"..왜에...너 종인쌤으로 갈아탄거아니였어...?"

 

 

 

도쌤이 울상을 지으며 정수정에게 말하는 모습에 나는 빵터져서 끅끅 대다가 백현아 나는 카페모카로 줘! 하는 윤리의 말에 정색을 했다. 존나 안답게 달달한거 마시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준면쌤을 쳐다봤다. 면쌤은 뭐드실거에요. 내 물음에 하품을 길게 늘어뜨린 면쌤은 아무거나 달라고 주문했다. 뭐 저런 주문이 다있어.. 나는 정수정에게 작게 속삭였다. 면쌤은 에스프레소먹고싶데.

 

 

 

 

주문을 끝낸 선생님들은 대충 자리를 잡고 담임을 불렀다. 종인선생님! 물론 부른사람은 윤리였다. 아니 윤리 저 쌤은 언제부터 담임하고 친했다고 저러는거지? 내가 가자미눈을 뜨고 노려보고있자 언제 온건지 내 앞으로 온 박찬열이 못생겼다며 혀를 찼다. 이 썅놈이...정강이라도 발로 깔까했는데 잽싸게 커피를 들고 가버리는 박찬열에 나는 이만 갈아야했다.

 

 

 

 

"니 꼴 진짜 웃긴ㄷ..."

"종인쌤 옷 너무 잘 어울린다~"

"너 커피 얼마나 많ㅇ.."

"오늘 많이 힘들었죠? 땀흘리는것봐"

 

 

 

 

준면쌤과 도쌤의 표정이 보기좋게 썩어들어갔다. 담임은 그저 머쓱하게 웃으며 윤리의 말에 꼬박꼬박 대답해줬다. 아 고마워요. 별로 안힘들어요. 아니 시발 윤리 저건 대체 뭐하는 생물이야. 이유모를 짜증이 머릿속을 콕콕 쑤셔왔다. 면쌤은 계속해서 담임에게 말을 걸려다가 포기한건지 혀를 차며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를 쭉 들이켰다. 그리곤

 

 

 

 

"아 시발 변백현!!!!"

 

 

 

 

욕까지 하면서 고개를 번쩍 들어 날 쳐다봤다. 아 놀래라. 카페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 쏠리는게 느껴졌다. 내가 멍청하게 입만 벌리고있자 도쌤이 정신을 차렸는지 준면쌤의 정강이를 세게 깠다. 세상에 김준면선생님 학생들앞에서 욕을 하다니요!!!! 도쌤은 흥분했는지 얼굴이 새빨개져서 준면쌤을 노려봤고 준면쌤은 정강이를 문지르며 날 보고 복화술급으로 읊조렸다. 즉는드즘따...

 

 

 

 

그런 준면쌤에 나는 죄송하다는 의미로 두손을 들어 싹싹 빌어보였다. 뭐, 이런다고 면쌤의 화가 풀릴것같지않았지만 그냥 빌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시선에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또한번 날 쳐다보고있는 담임을. 시선을 피하지않는 담임을.

 

 

 

 

저 눈빛에서 의미를 읽고싶다. 왜 또 뭐요. 뭔데 또 눈을 안피하는데요. 우리의 시선은 계속해서 얽혔다. 저 눈빛에 나는 답답해 죽을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피하지않았다. 피하면 더 답답할거야.

 

 

 

 

그리고 그때 담임의 손위로 윤리의 손이 겹치는게 보였다. 뭐야 시발? 그 행동에 당황한 나는 시선이고 뭐고 담임의 손에 시선을 돌렸다. 윤리 뭐하는거야? 당황스러운건 나뿐만이 아닌건지 담임도 살짝 표정이 굳어 윤리를 쳐다봤다. 그런 담임에 윤리는 머쓱하다는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저한테 집중 좀 하시라고.."

 

 

 

윤리의 말에 담임은 날 한번 더 보고는 윤리를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아니 담임이 죄송할건뭔데?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하는 둘을 보다가 더이상 볼수없어서 휴게실로 휙 들어가버렸다. 뭐야 안들어온다더니. 정수정의 말에 나는 괜히 씩씩대며 쓰고있던 모자를 집어던졌다가 정수정에게 썅욕을 얻어먹으며 다시 주울수밖에 없었다. 아씨 다 짜증나.

 

 

 

 

 

 

-

 

 

 

 

축제의 첫날이 끝나고 우리는 하나하나씩 교실을 정리했다. 교실문에 붙였던 팻말을 떼고 책상배열을 다시 맞추고는 각자 자리에 앉았다. 수고했다 애들아. 담임은 환히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고 애들은 재밌었다며 소리를 질렀다. 그 난장판속에서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담임만을 쳐다보고있었다.

 

 

 

 

"그럼 다들 조심히 들어가고"

"네에!"

"내일도 늦으면 안되는거알지? 내일은 바로 강당으로 가는거야"

"네에!!"

"그럼 해산"

 

 

 

 

담임의 말을 끝으로 애들은 우두두 교실밖으로 나갔다. 나는 애들이 밖으로 나갈때에 그저 자리에 앉아서 담임을 쳐다봤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번 시선을 마주쳤다. 무표정한 담임의 표정. 내 표정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아마 조금 울상일거다. 지금 내 상태가 울상이니. 한참을 눈을 마주치고 있자니 배알이 꼴리는 느낌이였다. 안되겠다. 나 이대로 집에 가면 속터져서 죽어버릴거야.

 

 

 

"선생ㄴ..."

"종인 선생님!"

"변백현!"

 

 

 

 

겨우 용기를 내서 몸을 반쯤 일으키며 담임을 불렀는데 앞문과 뒷문이 동시에 열리면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앞문에는 윤리가 뒷문에는 박찬열이 서있었다. 이런 시발스러운 타이밍은 대체 뭐야. 나는 둘을 허망하게 쳐다보고는 담임을 쳐다봤다. 저기...!

 

 

 

"백현아"

"....아..."

"....조심해서 가"

 

 

 

 

그 말을 끝으로 담임쌤은 윤리에게 다가갔고 나는 박찬열에 의해서 교실밖으로 끌려나갔다. 이게 아닌데...! 진짜 울것같은 마음에 한참을 박찬열에게 끌려 걷던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왜이래? 정수정의 물음에 박찬열은 모르겠다며 대답했다. 이게 아니라고. 난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며 학교를 쳐다보곤 둘을 쳐다봤다. 야 너네

 

 

 

 

"연애 해봤지"

"존나 새삼스럽네 너도 해봤잖아"

"난 짧게 했잖아 아 됐고 내 물음에 답 좀 해봐"

"뭔데"

"내 친구가 고백을 받았는데, 어 막 원래는 고백을 받으면 안되는 상대거든 아 그니까 내가 뭐라는거야.."

"진짜 뭐라는거냐 얘"

 

 

 

나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그냥 생각나는데로 다 뱉었다. 근데 막 신경쓰이고 다른사람한테 웃어주는게 싫고 이야기하는게 싫고 그렇다는데...얘 어떻게해야해?

 

 

 

 

"걔 존나 넌씨눈인가보다"

 

 

 

정수정에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아씨 넌씨눈. 들킨줄알았네

 

 

 

 

"당연한거아니야?"

"뭐가?"

"니 친구란 애도 고백한 사람을 좋아하는거네"

"....뭐?"

 

 

 

 

 

하여간~ 남자들은 눈치가 없어요. 정수정의 말에 나는 둔치를 맞은듯 멍때려야만했다. 뭐라고?

 

 

 

 

 

 

"좋아하니까 신경쓰이고 다른사람하고 말하는게 싫고 하는거지"

"..."

"싫어하는 사람이 고백했으면 짜증안난게 다행이였을걸"

 

 

 

 

 

 

 

정수정에 말에 나는 그자리에 우두커니 멈춰설수밖에 없었다. 으아....그리고 얼굴을 감싸쥐고 주저앉았다. 얼굴이 터질것만 같았다. 말도 안돼...말도 안돼...!!! 한참을 그러고있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김종대가 내 어깨를 툭툭 쳐오는게 느껴졌다. 야 어디아파? 그리고 난 그 질문이 신호탄이라도 된듯 벌떡 일어나서 몸을 학교쪽으로 틀었다.

 

 

 

 

 

 

 

"어디가!!!"

"친...친구한테 말해주려고!!!"

 

 

 

 

 

 

 

 

얼굴이 터질것같은 느낌이였다. 난 몰라. 스스로건 남에 의해서건 터져버린 감정은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만나야만했다. 담임을. 김종인을.

 

 

 

 

 

 

 

 

 

 

.5

 

 

 

 

"변백현 좋아하는 사람 생겼냐?"

"그게 무슨 뜬금포야"

"방금 말한거, 변백현 이야기잖아"

"....정수정 귀좀 뚫어라"

"뒤질래?"

"친구얘기라잖아. 못들었어? 완전 정수정 귀 벼엉신"

 

 

 

 

종대와 찬열이 낄낄거리며 수정을 손가락질하며 웃어재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진 수정은 물고있던 아이스크림막대를 박찬열에게 던져버리며 앞서 걸어갔다. 진짜 죽여버린다 정수정!! 박찬열의 외침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하여간. 남자새끼들은 눈치가 없다.

 

 

 15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일단 교무실로 향했다. 그리곤 교무실을 열라고 문고리를 잡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두어번 더 문고리를 잡아댕겼지만 역시나였다. 가버린건가? 교무실앞에서 머리를 헤집으며 멘붕에 빠져있다가 나는 급하게 주차장으로 달렸다.

 

 

주차장은 텅 비어있었다. 차 한대없이 텅 빈 주차장을 보며 나는 눈물이 울컥 차오르는 느낌이였다. 또 윤리가 데려가버린건가. 나는 괜히 머리를 더 헤집으며 접때 같이 차를 타고가던 윤리와 담임을 곱씹었다. 지금 당장이 아니면 못할것같은데 담임을 못 잡을거같은데. 윤리 진짜 싫어.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학교와 주차장을 번갈아봤다.

 

 

집으로 갈까했지만 나는 교실을 향해 걸어갔다. 집에가면 분명 하염없이 담임이 언제 들어오나 신경만 곤두세우며 현관문에 대기타고있을거다. 그래놓고선 담임이 돌아오면 또 안절부절하다가 그냥 잠이나 자겠지. 나는 딱 상상이 되는 그런 내 모습이 싫었다. 무슨 헤어진 애인 붙잡는 사람도 아니고 너무 구차해보이지않는가 그모습은.

 

 

한층 한층 올라갈수록 생각도 점점 깊어졌다. 담임은 왜 내게 고백을 해놓고선 바로 포기한다고 했던걸까. 내가 게이가 아니라서? 내가 어려서? 그런 이유라면 아에 처음부터 고백을 하지 말던가. 사람 마음 이렇게 병신같이 만들어 놓고선 포기라니. 그렇게 하염없이 담임을 욕하며 한층을 올라가면 마음속 깊은곳에서 담임을 옹호하는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아니지 담임도 얼마나 힘들었겠어.

 

 

2층은 욕하는 마음으로 3층은 옹호하는 마음으로 오르다 4층, 우리반 층에 도착한 나의 마음상태는 원망으로 뒤섞여있었다. 사람 좋아하는 마음이 그렇게 빨리 포기가 될까. 중학생때 꼬꼬마였어도 나는 첫사랑을 포기할때 별 생지랄을 했던것같은데. 사람을 좋아한다면 적어도 한번쯤은 대시도 해보고 매력도 뽐내보고 상대방의 의견도 물어야되는거아닌가.

 

 

눈에 눈물이 가득 가득 차는게 느껴졌다. 서러웠다. 나에게 고백을 해버리곤 바로 포기한다고 했던 담임이 나는 너무나도 서러웠다.

 

 

아니 적어도,

 

 

반의 앞문에 다다라서 나는 눈물을 참느라 약간 떨리는 손으로 반의 문고리를 힘껏 잡아당겼다.

 

 

사랑한다고 다시 한번은 말해야되는거 아닌가.

 

 

그리고 들어선 우리반에서 나는 만났다.

 

 

 

"...백현아"

 

 

 

나를 좋아하는 김종인을.

내가 좋아하는 김종인을.

 

 

 

 

-

 

 

 

 

반에 들어선 그 자리에서 나는 한발자국도 움직일수가 없었다. 상황파악이 되지않았다. 담임은 분명 윤리쌤과 함께 학교밖으로 나갔을텐데 지금 내앞에 있는건 누군거지. 내가 한참을 정신을 못차리고 있자 내게 다가온 담임이 내 어깨를 살짝 잡아오는게 느껴졌다. 백현아. 그리고 나는 그 느낌에 놀래서 살짝 몸을 떨었다. 담임의 손이 놀랜듯 내 어깨에서 떨어졌다.

 

 

 

"..집에 간줄알았는데"

"..."

"찬열이랑 같이 나가길래"

 

 

 

내 어깨를 잡던 손을 들어 머쓱한듯 이마를 긁은 담임이 내게 질문을 걸었다. 나는 그런 담임을 쳐다보다가 눈물을 꾹 참으며 말했다. 선생님은요. 왜 아직도 안가셨어요. 내 말에 담임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가 뒤를 돌아 자신의 가방을 챙겼다.

 

 

 

"난 이제 가려고"

"..."

"왜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늦기전에 집에 가"

 

 

 

그 말을 끝으로 담임은 살짝 웃어주고선 문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나는 담임의 뒷모습만을 허망히 쳐다봤다. 다 말하려고 왔는데 막상 담임의 앞에 서니 두려움이 가득 밀려왔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듯한 그저 학생1을 대하는것만 같은 그런 태도에 나는 마음깊숙한곳이 미어지는 느낌이였다.

 

 

이대로 이렇게 보낼꺼야 변백현?

 

 

속으로 내게 무수한 질문을 해대다가 나는 담임이 문고리를 잡았을때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나 좋아하긴 한거 맞아요?"

 

 

 

울음을 참고있어서인지 목소리를 사정없이 떨렸다. 이게 뭔 꼴이야. 나는 입술을 더욱 꾹 깨물었다. 담임은 살짝 당황한듯한 얼굴로 뒤돌아서서 나를 쳐다봤다. 한달전까지만 해도 날 향해 웃음만 지어보이던 저 얼굴. 이젠 보기만해도 심장이 아리는 저 얼굴에 나는 봇물터지듯 감정이 밀려들어왔다.

 

 

 

"선생님은 그게 쉬워요?"

"...백현ㅇ.."

"사람 좋아하고....으..포기하는게..그렇게 쉬워요?"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내 마음과 같이. 주체할수가 없이 흘러내려왔다.

 

 

 

"난 안돼요"

"..."

"나..난...어른도 아니고, 누군가를, 좋아해본적도 별로 없어서, 그게 안돼요"

 

 

 

눈물때문에 말도 제대로 안나오고 앞에 있는 담임의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않았다. 마치 내 마음이 비춰지는것같았다. 나는 담임이 제대로 보이지않는다. 감정은 쉴새없이 밀려오는데 감정의 주인은 보이지않는게 얼마나 답답한데. 나는 손을 들어 거칠게 눈가를 비볐다. 담임이 보이지않는다.

 

 

 

"...변백현"

"좋아한다고 말하면 끝이에요?!"

"..."

"나는! 나는 뭐가 돼요...바로...그렇게 포기해버린다고 하면"

"....백현아"

"나는..나는 뭐가되냐고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린 나는 그자리에서 소리내어 울어버렸다. 내 앞으로 다가온 담임이 주저앉은 내 어깨를 잡아왔다. 고개를 들어 담임을 보고싶은데, 들수조차 없다.

 

 

 

"백현아, 울지말고 선생님 좀 봐ㅂ.."

"좋아해요"

"...."

"나도, 나도, 포기 해야되요?"

 

 

여전히 얼굴은 푹 숙인채로 나는 내 마음을 토해냈다. 포기하기 죽어도 싫은데. 담임은 이미 포기해버렸으니 나는 선택권도 없었다. 그렇게 많이 울었는데 더 흘릴 눈물이 남아있는건지 눈물은 계속해서 나왔다. 추하다 변백현. 나는 고개를 더욱더 숙여버렸다. 그리고 그때, 힘에 의해 고개가 번쩍 들렸다. 내 얼굴을 잡은 담임이 눈을 맞춰왔다. 눈물때문에 담임이 잘보이지않았다. 나는 두눈을 꼭 감았다.

 

 

 

"눈 떠 변백현"

"....으..."

"나 봐"

 

 

 

나는 두눈을 더욱 꼭 감았다. 눈을 떴을때 담임이 보이지않으면 난 어떡해야하지. 내 반응에 담임은 다시한번 말했다. 눈떠 백현아. 담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싫다. 난 무서웠다.

 

 

 

"그럼 뜨지마"

"...."

"무슨 일이 있어도"

 

 

 

담임의 낮은 음성이 들려오고 날 잡은 손이 사라졌다. 안돼. 나는 울컥 다시한번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때 감은 두눈위로 손이 겹쳐오는게 느껴졌다. 한손은 내 눈을 가리고 한손은 내 턱을 붙잡았다. 절대. 뜨면 안돼. 담임의 낮은음성이 또한번 들려오고 나는 입술에 무언가가 닿아오는걸 느꼈다. 마음이 간질거리는 촉각에, 가까이서 느껴지는 담임의 향

 

 

 

"...눈"

"...."

"떴네"

 

 

 

내 눈앞에서 바로 보이는 담임의 얼굴을 난 보았다.

 

 

 

-

 

 

 

담임은 물을 묻혀온 손수건으로 내 눈가를 꾹꾹 눌렀다. 완전 부었네 눈. 담임의 말에 나는 창피한 마음이 들어서 두손으로 눈을 가려버렸다. 손 내려. 담임은 내 손목을 쥐고 억지로 손을 내려버렸다. 못생겼을텐데.

 

 

 

"이뻐"

"..."

"부어도 이뻐"

 

 

 

아마도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있지않을까.

 

 

다시한번 내 얼굴을 닦아준 담임은 씻어온 손수건을 말려놓곤 내 앞에 몸을 숙여 날 쳐다봤다. 백현아. 항상 들었던 이름인데 뭔가 머리카락이 쭈뼛쭈뼛서는 기분이였다. 내 눈에 가득 담긴 담임때문에 나는 심장이 터져버릴것만 같았다. 너무 빨리 뛰는거아닌가.

 

 

 

"난 남자고"

"..."

"너보다 10살이나 더 많고"

"...."

"좋아하는 사람을 잡을만큼의 용기도 없어"

 

 

 

난 너가 생각하는것보다 대단한 사람이 아닐거야.

 

 

담임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않았다. 담임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뭐가 그렇게 불안할까. 나는 담임의 정수리를 뚫어져라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형은 나랑 10살차이가 나요"

"..."

"10살은 나한테 별로 큰 차이가 아니에요"

"..."

"그리고 선생님은"

"..."

"사람이잖아요"

 

 

 

사람이면 됐죠..., 내가 좋다는데. 남자인게 대수인가. 약간 웅얼거리며 말하니 담임이 굽혔던 몸을 피는게 보였다. 왜그러지. 고개를 들어 담임을 쳐다보자 담임이 두손으로 내 얼굴을 잡아왔다. 왜..왜요.

 

 

 

"백현아"

"..왜요.."

 

 

 

쪽. 나는 눈가에 느껴지는 감촉에 놀래서 담임을 쳐다봤다. 내 놀란 표정을 보던 담임이 또한번 날 불러왔다. 백현아. 변백현. 이번엔 오른쪽 눈에 다음번엔 코에 다음엔 볼에

 

 

 

"악..쌤 잠만..잠만요!"

 

 

 

쪽쪽쪽쪽. 계속해서 쏟아지는 뽀뽀세레에 정신을 못차리고있자 그제서야 멈춘 담임이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헉. 그리고 나는 날 쳐다보는 담임의 눈빛에 순간 그대로 안길뻔했다. 저렇게 감정을 안숨기고 쳐다보면 반칙이잖아.

 

 

 

"백현아"

"왜요.."

"선생님이"

".."

"진짜 좋아해"

 

 

 

아 못참겠다. 결국 나는 날 쳐다보는 담임의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췄다.

 

 

16

 

 

 

6시 정각, 자연스럽게 떠진 눈을 두어번 깜빡인 나는 한참을 멍때리며 침대에 앉아있었다. 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어제 일을 하나하나씩 차근히 생각하자 얼굴에 피가 확 몰리는 느낌이 들었다. 미쳤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진 나는 다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급하게 찬물로 머리를 헹궈냈다. 생각보다 더 차가운 물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제 나는 담임에게 고백했다.

 

미친놈...얼굴윤곽을 따라 물방울들이 뚝뚝 흘러내렸다.  으아아아! 재빨리 머리에 샴푸칠을 하고 헹군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대충 탈탈 턴다음 거실을 배회했다. 어제..어제...담임한테 고백하고 울고 그다음 담임이 나한테...뽀...뽀..하..고...

 

내가 또 키스하고.

 

"변백현 이 미친놈아!"

 

너 이렇게 감정을 조절 못하는 놈이였니? 주체할 수 없는 마음에 다짜고짜 담임의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조금 놀란듯해보였던 담임의 반응도 곧이어 부드럽게 제 머리칼을 쓰다듬던 담임도 다 기억났다. 끄응....아직 덜마른 머리카락에선 물방울이 떨어져 옷을 적셨지만 그런것따위는 신경도 쓰이지않았다. 소파에 고개를 파묻고 미친듯이 흘러나오는 기억을 없애려고 애를 쓰고있을때 띵동하고 초인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시발 뭐야. 나지금 심란해죽겠는데...

 

옆에 던져놓았던 수건을 대충 머리에 걸치고 몸을 축 늘어뜨린채 겨우겨우 현관으로 가서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을때 또한번 초인종이 울렸다. 아 거참 성격 급하시네...

 

"아 누구ㅅ..."

"변백현"

"...허..헙..."

"잘잤어?"

 

나는 잡고있던 손잡이도 놓고선 뒷걸음 쳤다. 어어? 점점 닫히는 문을 붙잡은 담임이 환히 웃어보이며 날 쳐다봤다. 그 눈빛에 얼굴이 확 붉어지는게 느껴져서 나는 급하게 두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안돼! 보면 안돼! 아까와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얼굴이 빨개졌을거다.

 

"왜그래? 얼굴 좀 보자"

 

담임은 어제일이 아무렇지도 않은건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내 팔목을 잡아왔다. 세상에 난 이렇게나 쑥쓰러운데 이게 바로 어른과 미성년자의 차이인건가. 나는 얼굴을 가린 손에 힘을 더욱 줬지만 담임의 힘에 손수무책으로 얼굴을 내보일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또한번 나와 눈을 맞춰오는 담임에 창피함이 확 몰려왔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지금 그냥 전체적인 내 꼬라지가...

 

"악 안돼!"

 

내 상태가 어떠한지 인식이 되자마자 나는 살짝 힘을 푼 담임을 확 밀어내곤 방으로 쏙 들어갔다. 다급히 전신거울앞에 서자 그자리에서 다리가 풀렸다. 미친 세상에나 이게 사람꼴이니? 어흑...이미 흠뻑 다 젖은 어깨죽지는 흘러내린 수건때문에 다시한번 적셔졌다. 망할 세상아. 전신거울을 붙잡고 있자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백현아 왜그래? 담임의 음성에 잔뜩 설어있는 웃음기를 알아채자마자 나는 잽싸게 젖은 반팔티를 벗어던지고 교복을 다급하게 꺼내입었다.

 

와이셔츠에 조끼까지 대충 껴입고 허겁지겁 거실로 나가자 밥상을 다 차려놓은 담임이 식탁에 앉아 지루하다는듯이 앉아있었다. 허..헉...100m달리기라도 한듯 숨을 헐떡이는 날 쳐다본 담임의 표정이 눈에 띄게 확 밝아지는게 보였다.

 

"여기앉아"

"네..."

 

제 앞자리를 톡톡치며 말하는 담임에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의자에 앉았다. 바로 앞에 놓여진 밥에선 김이 모락모락 나고있었다. 꼭꼭 씹어먹어. 저를 보며 환하게 웃는 담임에게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쌤도 맛있게 드세요. 내 말에 더욱 환하게 웃은 담임이 내 머리에 손을 올려 머리를 쓰다듬었다. 입에 넣었던 밥을 그대로 뱉을뻔했다. 아, 너무 떨리는거 아니야?

 

한참을 밥을 먹다 앞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드니 담임이 날 쳐다보고있는게 보였다. 큽! 순간 사례가 들릴뻔했지만 겨우 넘겼다. 저 눈빛. 내가 어제 저 눈빛에 취해서 담임에게...얼굴이 다시 새빨개졌다.

 

나는 담임의 시선을 피해 반찬에 시선을 두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연애에 이렇게 쑥맥이였나? 장담컨대 정말 아니였다. 고1때까지만 해도 여자친구앞에서 엄청난 젠틀맨이였고 능숙했고 쑥스럼따윈 개나 줘버렸던 그런 남자였었다. 근데 지금은 이상하다. 담임이 날 쳐다만봐도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말문이 턱 막힌다. 내가 이렇게까지 담임을 좋아했던가. 아니였던것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보단 담임이 날 더 좋아했을텐데 근데 담임은 왜저리도 태연한건지. 나는 들고있던 수저를 꾹쥐고는 크게 밥을 한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열심히 밥을 오물거리며 슬쩍 담임의 눈치를 보자 큭큭 웃고있는게 눈에 보였다. 왜 웃고그러ㅈ..

 

"현아"

"으?!"

 

담임의 목소리에 놀래 밥을 가득 문채로 그대로 정지상태가 되었다. 현...현아? 지금 담임이 나한테...그러니까...지금...나한테 애칭..애칭을 부른..

 

"천천히 먹어 현아"

 

아아. 미치겠다. 나는 결국 벌게진 얼굴을 숨기지못하고 그대로 식탁에 이마를 박았다. 어제부터 담임은 너무나도 반칙을 많이 썼다. 분명 날 더 좋아하는건 담임일텐데 왜 내가 더 설레죽어야만 하는건지. 끙.....식탁에 이마를 박은채로 신음을 내뱉자 큭큭거리며 작게 웃음을 내뱉은 담임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게 느껴졌다. 나는 엎어진상태로 억지로 밥을 목구멍뒤로 넘겼다. 넘어가는 밥처럼 제발 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도 넘어가길 바라면서.

 

 

-

 

 

현아현아현아. 다시 차가 아닌 도보를 선택한 담임은 학교에 오는 내내 날 저 애칭으로 불렀다. 그렇게 안부르면 안되요...? 애절하게 부탁했지만 왜?라고 반문해오는 담임에 나는 그저 끙끙거리며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 설레죽을것만 같아서요. 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담임은 그런 내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아마 아는것같다. 알고서 다 눈치채고선 저렇게 계속 의도적으로 부르는것일거다. 얼굴이 식을세가 없다.

 

교무실 앞에 서서 담임에게 꾸벅 인사를 하니 담임이 내 앞머리를 휙 쓸고는 웃으며 들어갔다. 아 이젠 별게 다 멋있어보인다. 저 들어가는 뒷모습까지 멋있어보이니...한참을 교무실 문만 쳐다보다가 뒤를 돌아보니 이젠 물어볼기력도 없다는듯이 서있는 김종대와 박찬열이 보였다. 뭐 왜.

 

"난 너와 수학하고의 관계를 이젠 짐작조차 못하겠어"

"몇달전엔 쌩까. 그다음에 친해져. 그다음에 또 쌩까. 그리고 또 친해져"

"...왜 그게 뭐 어때서"

"아니 이게 안이상해? 너 무슨 담임하고 연애하냐?"

"뭐?!"

 

혼자 찔려 소리를 빽 지르니 김종대와 박찬열의 표정이 보기좋게 썩어들어갔다. 왜 소리는 지르고 지랄이야. 박찬열의 말에 나는 대충 어어 아냐 아냐...이러며 얼버부렸다. 김종대는 그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곧 내 팔을 잡아이끌곤 강당으로 걸어갔다. 야 내가 학교 존나 빨리 와서 맨앞자리 맡아놨어. 종대의 말에 나는 그게 무슨말이지 싶다가 문득 스쳐가는 생각에 눈을 번쩍 떴다. 아 맞다 오늘 축제 둘째날이지. 허....어제 오늘 내 마음상태가 정상이 아니여서 였는지 까먹고있었다. 미친 변백현 축제를 까먹냐

 

강당 맨 앞자리의자에 당당하게 자리잡은 우리 셋은 두다리를 쭉 뻗고 축제가 시작할때까지 기다렸다. 무대위에는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바쁜 학생부애들이 보였다. 몇몇 아는 아이들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준 나는 손을 그대로 입에 가져다대며 하품을 했다. 무대앞도 정신없긴한데 아마 무대뒤는 더욱 정신없을거다. 작년에는 저들 셋이 저 뒤에 있었었으니 그 상황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종대는 옆에서 그런 무대상황을 보며 찡찡댔다. 미친 감기 죽여버릴거라고. 요번에도 장기자랑을 나가려던게 종대의 목상태때문에 무산된게 아까웠던 모양이였다. 나는 혀를 두어번차며 아직도 약간 걸걸한 목소리의 종대에게 생수나 건냈다. 빨리 낫기나 하세요. 내 말에 김종대는 징징대던 걸 멈추고 슬픈 표정으로 물을 들이켰다.

 

한참을 기다리자 점점 축제준비가 끝나갔고 드디어 학생회장과 부회장이 무대위에 서서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우와아아아! 천장이 무너질세라 소리를 지르는 우리 셋을 보던 뒤에 아이들이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작작해 이 비글들아! 그 말에 박찬열은 뒤를 돌아 낄낄거리며 애들과 이야기했다. 야 우리같은 애들이 있어야지 분위기가 사는거야. 반아이들은 그말에 딱히 반박은 하지않았다. 신난다. 점점 달아오르는 축제 분위기에 푹 잠기는 기분이였다.

 

반장기가 끝나고 몇몇 아이들이 준비한 꽁트가 진행중이였다. 미친 존나 웃겨! 얼핏보이는 아는 얼굴들에 배를 잡고 뒤집어질때 저멀리서 몸을 수구린채 최대한 빨리 기어오는 인영이 보였다. 미친 저게 뭐야. 나는 그 인영을 보고선 진짜 놀래 자빠질뻔했다. 머리는 축 늘어뜨리고 기어오는 폼새가 진짜 딱 귀신같았기때문이였다. 야 저거봐. 옆에 종대를 퍽퍽 치자 종대도 놀랬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인영을 쳐다봤다. 꽁트는 이미 관심이 꺼졌고 점점더 내쪽으로 다가오는 인영에 집중을 하자 나는 눈치챌수있었다. 인영이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것을 그리고 그 인영은

 

"변백현!"

 

미친 정수정이라는걸. 내앞에 당도하자 그제야 처녀귀신행새를 끝낸 정수정이 머리를 확 쓸어넘겼다. 아이 미친년아! 박찬열은 그런 정수정의 머리를 대충 정리해주며 욕을 내뱉었다. 존나 귀신인줄알았네. 박찬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동의를 표한 나는 내 손목을 꾹 잡고있는 정수정을 쳐다봤다. 왜부르는데?

 

"너가 필요해"

"뭐?"

"정석호있잖아. 오늘 장기자랑 나가는애"

"정석호 오늘 장기자랑 나가? 그 얌전한 애가? 몰랐네 근데 왜?"

"걔 오늘 아파서 학교 못왔어."

"헐 안됐네. 근데 그게 왜?"

"그래서 너가 대신 대타뛰어야겠다"

 

뭐?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앞에있는 정수정을 어이없게 쳐다봤다. 얘가 뭐라는거야. 정석호 장기자랑에 내가 왜 나가? 정석호가 무슨 장기자랑을 하려고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나가라는건지. 나는 고개를 돌려 김종대를 쳐다봤다. 정수정이 대체 무슨말을 하는건지 알기위해서. 김종대는 나와 같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있다가 갑자기 표정을 확 굳혔다. 그러곤 되물었다. 정석호? 그 말에 정수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왠지모를 눈빛을 보냈다. 둘의 수상쩍은 시선이 얽혔다. 얘네 뭐해? 이번엔 박찬열을 쳐다보자 박찬열은 그냥 상황이 이해가 안가는듯 어깨를 들썩였다.

 

그렇게 대치상태로 있다가 정수정과 김종대의 무언의 계약이 성립된 모양인지 갑자기 김종대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다짜고짜 날 끌고 밖으로 향해 걸어갔다. 아까와 같이 몸을 최대한 수그린채로 기다시피 나가는 둘에게 끌려가면서 나는 어이없는 웃음만을 지어보일수밖에 없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축제중이라 소리도 못질렀다. 둘은 어느 한 대기실에 도착해서야 내 손목을 놓아주었다. 이 시발것들이 뭐하는..!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날 대기실로 밀어넣은 김종대가 잽싸게 도망갔다. 뭐야 이것들?

 

"정수정 뭐하는거야 지금? 나 하나도 이해가 안가!"

"이해안해도 돼. 그냥 여기 가만히 앉아있어 시간 별로 없단말이야"

"뭐?"

"저거 꽁트끝나면 바로 너야. 그러니까 제발 부탁 좀 하자. 석호를 매꿀껀 너밖에 없어!"

"아니 그러니까 정석호가 대체 무슨 장기자랑을 하려고 했는ㄷ...!"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난 입을 꾹 다물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건지 하나둘씩 나타나 내게 이상한걸 들이미는 여자애들때문이였다. 이년들아 뭐하는거야!! 내 머리에 이상한 망을 씌우길래 놀라 쳐다봤더니 오히려 지네들이 가만히 있으라며 더 화를 냈다. 이게 뭐하는거다? 이게 뭐다? 뒤돌아 뭔가 뒤적거리는 정수정만을 쳐다보고있자 곧 뒤를 돈 손에 이상한걸 잔뜩 든 정수정이 내 얼굴을 확 잡아왔다.

 

"백현아"

"...무...뭐야..."

"조금만 참으면 다 끝나있을거야"

 

정수정의 눈에는 왠지모를 투지가 불타오르고있었다. 아니 대체 이게 다 무슨 상황인건데?! 아무리 울부짖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자 이번 순서는 제일 하이라이트죠!"

"그렇죠! 저희 학교 축제에 이걸 빠트릴순 없는데요~ 이번 순서는 바로!"

 

 

여장대회 입니다!

난 누구고 여긴 어딜까. 무대뒤에 멍청하게 앉아있자 정수정이 허벅지를 퍽 쳤다. 미친! 찌르르 느껴지는 따가움에 인상을 팍 쓰고 정수정을 노려보자 쩍벌로 앉지말라며 타박을 들었다. 아나 시발...하나님...전 지금 대체 왜이러고 있는건가요.

 

긴머리가발이 팔에 닿아오는게 미치도록 거슬렸다. 헐렁거리며 아랫도리의 썰렁함이 느껴지는 원피스는 말할것도 없었다. 아 물론 잡아뜯어버리고싶은 스타킹과 벗어던지고싶은 구두도 거지같았다. 정수정때문에 억지로 오무린 다리를 부여잡고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만을 흘렸다. 시발 상남자 변백현 여기서 자존심 다 버립니다...세상에...어머니...아들이 여장을 했어요...아버지...아버지를 닮아 상남자인 제가 여장을 했다구요! 허허. 하하. 호호. 미친 시발.

 

"야 다음 너차례야"

"....그래 그렇구나..."

"나가서 잘해라. 이거 잘해야지 우리 상금받아. 30만원. 단합. 고기"

 

미친 정수정 죽어. 돈에 눈이 멀어 친구를 여자로 만들어버린 널 계속 원망할꺼야 이년아. 나는 계속해서 정수정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지만 상금은 그마저도 자동 필터링을 해주는건지 정수정은 눈하나 깜빡하지않고 날 무대바로 앞까지 밀어넣었다. 너 컨셉 완전 청순가련이니까 나가서 이쁜짓많이해라. 이쁜짓이라니 세상에. 나 남자야 이 계집애야...! 욱하는 마음에 뒤를 확 돌아보려했지만 나는 날 퍽 밀어오는 손길에 어정쩡하게 무대에 등장했다. 등장한번 거지같네

 

우아아아아!

어정쩡한 모양새로 있다가 이미 엎질러진 물 그래 상금이나 따자는 마음으로 최대한 청순하게 무대에 걸어나가니 함성과 함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제일 큰 웃음소리의 정체는 앞에 앉은 김종대와 박찬열의 웃음소리였다. 그래 쳐웃어라. 너넨 죽어도 내가 고기 못먹게할거야.

 

앞에 짧게 자기어필을 하라고 틀어준 노래소리에 맞춰 나는 최대한 청순하게 몸짓을 놀렸다. 일단 가발을 한번 휘날려주고 원피스끝을 살짝 잡아 한바퀴도 돌아주고 무릎을 살짝 구부려 인사까지 해줬다. 그러곤 뒤에 나란히 다른애들과 서있으니 헛웃음만 나왔다. 옆에 서있는 애도 자기 꼴이 웃긴건지 헛웃음을 짓고있었다. 하....미친..고개를 숙여 두어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13반부터 시작된 인터뷰에 나는 살짝 지쳐 멍때리고있었다. 그리고 그때 무대뒤 천막에서 누군가 날 퍽 쳐오는게 느껴졌다. 시발 뭐야? 인상을 팍 구기고 뒤를 보자 얼굴을 빼꼼내민 정수정이 날 바라보고있었다. 뭔데 또....내가 지친듯이 말하자 정수정이 내 정강이를 깠다. 아나 이 이 미친...!

 

"제대로 해라 진짜"

"뭘 제대로하래 계속!"

"아 닥치고 좀따 내가 저기 저쪽에서 어떻게 하라고 시킬꺼야 그거 그대로해"

"....아 싫은데..."

"아 미친...알았어 상금 50%줄게"

 

...50%? 내 물음에 급하게 고개를 끄덕인 정수정이 내게 대답을 강요했다. 콜? 콜.

 

2반까지 무난한게 자기소개를 끝내고 1반이 호명되자 나는 상금만을 떠올리며 더욱 오바스럽게 앞으로 총총 뛰어나갔다. 그 모습에 함성소리가 더욱 세차게 외쳐졌다. 그래 이 놈들아 더 외쳐. 나 15만원 좀 벌게.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아..저..변백혀..ㄴ...아니 변백희요"

 

무대 뒤편에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변백희라는 글씨가 써진 스케치북을 들고있는 정수정을 보자 바로 말을 바꿨다.

 

"아~백..백희씨..와 근데 백희씨는 정말 너무 이쁘시네요. 지금 나온 사람들 중에서 제일 이쁘신것같아요"

"어..어머...그래요? 호호...제가 좀 한 인물 하긴하죠..."

"그런 의미에서 백현ㅆ..아니 백희씨는 남자친구 없으세요? 없으시면 저랑 사귀시죠~"

 

미친 동호야. 나는 순간 표정관리를 하지못하고 학생회장을 쳐다봤다. 동호야 미쳤니 무슨 그딴말을 내게하니. 내 눈빛을 읽은건지 김동호가 살짝 대본을 가르켰다. 그래 대본대로 하고있다 이거지. 이해해줄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고개를 들어 정수정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남자친구 없다그래!] 정수정의 전달사항에 순간적으로 얼굴이 새빨개지는 느낌이였다. 동호의 뒷말때문에 생각치 못하고있었는데 남자친구. 흐아...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어디선가 담임의 '한아'라고 부르던 목소리가 들려오는것같았다.

 

"어어~ 백희씨 얼굴이 빨개지셨는데요! 진짜 있으신거아니에요?"

 

동호의 국어책읽기에도 나는 빨개진 얼굴을 식힐수없었다.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고개를 들어 학생쪽을 바라보자마자 나는 끝에 서있는 담임과 눈을 마주쳤다.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고 있는 그 얼굴에 나는 바로 시선을 확 피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어버버거리며 대답을 못하자 분위기는 점점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는듯했다.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 분위기 수습해야해...!! 다급하게 눈을 돌리던 나는 앞에서 핸드폰을 들고 낄낄거리고있던 박찬열과 눈이 마주쳤다. 1초 2초 3초. 나는 입을 열었고 박찬열의 표정은 보기좋게 썩어들어갔다. 아..안돼...!!

 

"박찬열이요!!"

 

다급한 내 외침이 강당안을 맴돌았다. 그리고 몇초뒤 강당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이상했던 분위기가 풀리는듯했다. 와 살았다. 식은 땀을 닦기도 전에 동호놈은 박찬열을 억지로 무대위로 끌고왔고 나는 또다시 식은땀을 흘려야했다. 무대뒤에서 정수정이 어이가 없다는듯이 웃고있다가 다급하게 스케치북에 무언갈 쓰는게 보였다.

 

"네~ 이렇게 공식커플이 밝혀지는군요!"

"하하..."

"두분 그러고보니 작년에 같이 노래도 부르셨죠?"

 

부회장 여자애의 말에 2학년아이들이 자지러졌다. 맞다 맞아! 여러곳에서 들려오는 함성소리에 귀를 틀어막고싶었다. 시발 내가 무덤을 팠지... 내 앞에 선 박찬열은 날 향해 계속 욕설을 날리고있었다. 시발새끼 개새끼 소새끼 말새끼. 그래요 전 그냥 새끼입니다. 박찬열의 욕설에 나는 그저 박찬열팔을 꾹 잡으며 미안함을 표현할뿐이였다. 미안해 차녀라. 내가 너무 다급했었어.

 

"이왕 나오신김에 커플 노래 하나 부르시죠!"

"뭐요?"

 

박찬열이 참지못하고 마이크에 대고 정색을 했다. 그리고 동시에 정수정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아...앙대...! 나는 박찬열팔을 더욱 세게 잡고선 고개를 저었다. 해야되 박찬열. 내 말에 왜? 라며 정색을 한 박찬열이 옆에 서있는 정수정을 보곤 허! 헛웃음을 내뱉었다. [안하면 고추떼버릴꺼야]. 저게 계집애가 할 말이야? 나는 정수정의 휘날린 글씨체에 작게 몸을 떨고는 부회장을 향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수정은 고자까진 아니여도 고자직전까지는 만들애였다.

 

급하게 가져온 기타를 박찬열이 들고 나는 그옆에서 마이크를 쥐었다. 우리 둘이 고른 곡은 평소 장난처럼 자주 부르던 범키의 곡이였다. 이걸 이 많은 인원앞에서 부르게 될 날이 올줄이야. 끙 신음을 내뱉은 나는 목을 풀었다. 죽이되든 밥이되는 일단 이건 해야하는 상황이였다. 난 몰라.

 

"beautiful girl...."

 

다행히 고음까지 깔끔하게 끝낸 나는 짧게 긴장으로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옆에 앉아있던 박찬열도 잘했다는듯이 살짝 내 어깨를 쳐왔다. 내가 진짜 살다살다 여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날도 오는구나. 뒤에서 저를 쳐오는 방송부애에게 마이크를 건내고 다시 앞에 섰다. 함성은 끊이질않고 나왔다. 특히 앞에 앉은 김종대의 함성이 제일 컸다. 저새끼 저거 지일아니라고 존나 신난것봐....나와 박찬열은 이를 갈았다.

 

"그럼 이제 끝으로~ 자 공식커플 박찬열군과 변백희양 포옹해주세요"

"뭐?!"

 

반말까지 내뱉으며 나와 박찬열이 동시에 동호를 째려봤다. 니가 제정신이냐? 우리의 반응에 김동호는 대본만을 가르키며서 어깨를 으쓱했다. 저새끼 내가 죽일거야...내가 으르렁거리자 이번엔 박찬열이 날 툭쳐왔다. 아 왜? 박찬열이 가르킨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정수정이 서있었다. 저년은 분명 마녀가 일거다. 안그러면 [해라] 저 딱 두글자 써놓고 저런 표정을 짓고있을리가 없다.

 

아씨 해야하나...나는 거슬리는 생머리 가발을 뒤로 쓸어넘기며 박찬열을 쳐다봤다. 힐을 신었는데도 박찬열은 나보다 꽤나 컸다. 아나 시발...자괴감이 밀려들어왔다. 내가 이래가 몬산다 진짜. 헛웃음을 지으며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로 팔을 벌리고있는 박찬열에게 한발자국 다가갔다. 그리고 그때 우연히 돌린 시선끝에 나는 담임을 발견했다.

 

아까 눈이 마주쳤을때도 표정이 좋지는않았던것같지만 지금은 정말 누가봐도 화났구나 싶을정도의 표정과 분위기를 풍기고있었다. 헉. 나는 그 분위기를 읽자마자 그대로 정지해버렸다. 왜 저렇게 화가 난거지? 담임은 눈을 맞춰오는 나를 끈덕지게 쳐다봤다. 절대 시선을 피하지않고 마치 잡아먹을것처럼. 왜...왜...저럴까...싶어 벌렸던 팔을 오무렸다. 그러자 담임의 표정이 살짝 풀리는게 보였다. 뭐지?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자 더 표정이 풀렸다. 어라? 지금 뭐지? 머리속을 물음표가 가득 채웠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담임의 표정은 좋아졌고 분위기는 이상해졌다. 하지만 나에게 분위기따위는 중요하지않았다. 그저 담임의 표정, 담임의 분위기만이 중요했다. 한참을 그러고있어 담임의 표정이 거의 다 풀려갈때쯤 나는 확신했다. 지금 담임 설마 나 질ㅌ...

 

"와! 찬열씨 박력있는데요!"

 

눈을 아무리 감았다 떠도 담임의 모습이 보이지않았다. 그저 누군가의 익숙한 가슴팍만 보였다. 나는 날 꼭 안고있는 박찬열을 올려다봤다. 박찬열은 짜증나죽겠는데 왜 빨리 안았냐며 내 귀에 대고 마구 욕을 내뱉었다. 함성소리와 박찬열의 욕소리가 섞여서 머리속에 들어왔다. 곧 박찬열이 떨어져나갔고 나는 재빨리 담임을 쳐다봤다. 그리고 당황했다. 담임이 서있던 자리에는 담임이 없었다. 어디로 가버린거지? 당황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봐도 담임은 없었다.

 

박찬열을 무대 아래로 내려보내고 순위발표를 위해 무대위에 서있기를 몇분이였을까. 1위 호명과 함께 나는 무대로 튀어나온 정수정에게 등짝을 한대 맞았다. 잘했어 쨔사! 무대 뒤쪽으로 나가면서도 정수정에게 15만을 받으면서도 나는 웃을수가 없었다. 담임은 계속해서 보이지않았다. 표정은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변백현 왜이래? 15만원이 안반가워? 다시 가져갈까?"

"아 몰라...이씨...짜증나게....나 화장이나 지우게 폼클렌징이나 줘"

"여장하더니 진짜 여자라도 됐나. 옛다. 꼼꼼히 지워라 안그러면 피부 난리난다"

 

나는 정수정이 뺏어가려던 15만원을 벗어두었던 바지안에 꼭꼭 넣어두고는 힐만 대충 슬리퍼로 갈아신고 남자화장실로 향해갔다. 담임의 질투에 기분이 좋았었는데 이렇게 나오니 기분이 바닥일수밖에 없었다. 화가 난건가. 하긴 나라도 담임이 다른 놈년들이랑 그러고있으면 짜증날것같긴하다. 아 모르겠다. 복도에 멈춰서서 생각에 잠겼던 나는 다시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씻고 나서 생각해봐야겠다.

 

"으악!"

 

화장실에 거의 다 도착했을때 나는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다른 방으로 들어가졌다. 뭐...뭐야! 놀래서 커진 눈으로 앞을 쳐다보니 입을 일자로 꾹 다문 담임이 서있었다. 쌤...! 담임을 부르려고 입을 열었을때 나는 다시 바로 닫아야만했다. 테이블위에 올라가서 담임과 조금 시선이 맞게된 나에게 담임이 살짝 기대왔기때문이였다. 어..어..쌤...! 어깨에 느껴지는 담임의 숨에 살짝 당황해 담임의 어깨를 잡았다.

 

"현아"

"...네에"

 

나즈막히 울려오는 담임의 목소리에 나는 흡 숨을 들이켰다. 아 놀래라.

 

"현아아..."

 

내 허리를 감싸며 말꼬리를 늘리는 담임을 보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이 상황은 마치 예전에 술을 먹고와서 저에게 잡채를 먹자며 다그챘던 담임이 떠오르는 상황이였다. 그러니까 지금 담임은 제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어리광? 어리과앙?

 

"현아아아"

"왜요 쌤"

 

나는 피식피식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말을 뱉었다. 아침에는 저가 담임에게 계속 휘둘린 느낌이였는데 지금은 내가 주도권을 잡고있는듯한 기분이였다. 그래서 더 무뚝뚝하게 말을 내뱉었다. 내 말에 더 허리를 세게 끌어안은 담임이 한동안 말이 없었다.

 

"...찬열이랑 많이 친해?"

"뭐...그렇죠. 저 여기로 이사와서 처음 사귄 친구니까요"

 

담임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않았지만 표정이 상상이 갔다. 아...어쩌지...너무 재밌다. 나는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현아"

"왜요"

"..선생님은 싫다"

"뭐가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말하는 나에 그제서야 고개를 든 담임이 입을 삐쭉 거리며 날 쳐다봤다.

 

"찬열이도 내 학생이고 내가 많이 좋아하고 아끼는데..."

"네"

"....백현이 너랑 노래부르고 안고 하는거 정말 싫어"

 

그러니까 이건 내가 차별하는게 아니라, 어?

다급하다는듯이 말을 우수수 뱉어내는 담임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니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사람이 이래도 되는건가. 으으....너무 귀엽잖아!! 얼굴을 붉히고 계속 말을 내뱉던 담임은 가만히 있는 날 보고는 한숨을 푹 쉬고 날 품안에 가뒀다.

 

"미치겠다 변백현"

"...왜요 쌤"

"진짜 내가 나이먹고 뭐하는건지..."

 

에휴. 담임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한숨소리에 결국 터져버린 웃음을 감추지 못한 나는 팔을 들어 담임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선생님"

"응"

"제가 아침부터 하려고했던 말인데요..."

"응 말해"

 

 

축축 기운이 빠진 담임의 음성에 품안에서 빠져나온 나는 날 내려다보고있는 담임과 눈을 똑바로 맞췄다. 아침까지만해도 나혼자 너무 좋아하고 나혼자 감정 못 절제하고 그러는 줄 알았다. 어른과 나의 차이도 느끼면서 그렇게 혼자 설레하고 그러는줄 알았는데.

 

스물스물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상대방이 나를 좋아한다는건 정말 숨막힐정도로 기분이 벅차오르는 느낌이였다.

 

"좋아해요"

"..."

"...나도 미치겠다"

 

헤에. 눈을 접으며 담임을 올려다봤다. 한참을 눈을 마주치고있을까. 담임이 날 더욱 꽉 껴안아왔다. 어쩌면 좋냐 진짜. 담임의 웅얼거리는듯한 말에 아무말없이 나도 팔을 들어 꽉 안았다.

 

좋다. 정말로.

 

17

 

 

엣취. 내 옆에 앉은 박찬열의 기침소리가 적막한 교실에 울렸다. 너 감기걸렸어? 내 물음에 몰라..하며 다죽어가는 소리를 낸 박찬열이 목도리에 얼굴을 더욱 파묻었다. 그러길래 왜 겉옷도 안입고 돌아다닌건지.

 

 

비실비실거리던 박찬열은 결국 고개를 파묻고 잠에 들었다. 맨 앞자리인데도 겁도 없이 자는 모습에 혀를 두어번 찼지만 이내 관심없다는듯한 선생님을 보고선 내버려두었다. 기말고사도 끝나고 오로지 방학만을 기다리는 우리나 선생님이나 전부 이 시간이 지루해보이는듯했다. 벌써 3교시째 자습이였다. 2교시내리 잠을 잔 나는 더이상 오지않는 잠을 일부로 청하지않고 그냥 볼펜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3교시가 끝나고 지루하게 하품만 하던 윤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음엔 수업나갈꺼야. 지켜질지 모르는 말을 내뱉으며 윤리는 앞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때 반으로 들어오는 담임에 둘은 잠시 시선이 얽혔다. 어라 나는 느리게 눈을 꿈뻑거리며 둘을 쳐다봤다. 둘의 시선에 먼저 피한건 윤리였다. 이러면 안되는데 슬쩍 올라가는 입꼬리가 느껴졌다.

 

 

담임은 나와 교제를 시작하고나서부터 서서히 단호해져갔다. 뭐만 같이 하실래요? 하면 즉각 됐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담임은 마치 학기초 그때로 돌아간듯해보였다. 윤리는 항상 머쓱한듯이 웃었지만 나는 윤리가 그럴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아 이러니까 나 완전 나쁜놈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그런 반응에도 계속 말을 걸어왔던 윤리는 점점 더 단호해져가는 담임의 태도에 요새는 먼저 피하는듯했다.

 

 

나도 모르게 실실 웃고있던거였는지 교탁앞에 서서 책을 정리하고있던 담임이 내 머리카락을 살짝 만져오는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고 담임과 눈을 마주치자 담임이 입모양으로 물어왔다. 왜그래. 난 그 물음에 대충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내가 지금 윤리를 상대로 이런 마음을 품고있다는건 죽어도 말하지 못한다. 너무 창피하니까.

 

 

"오늘은 뭐할까. 수업 나갈까?"

"에이 쌤!"

"왜 뭐"

"자습해요 자습~"

 

정수정과 옆에서 골골대던 박찬열이 담임에게 절절하게 자습을 요구했다. 특히 박찬열은 열때문에 새빨개진 얼굴로 말하고있었다. 얘 생각보다 더 심각한가보다. 담임도 그렇게 생각한건지 박찬열에게 보건실을 다녀오라고 이야기하며 자습하자고 말했다. 또 자습이야....할거없는데. 물론 책상아래에는 많은 문제집이 구겨넣어져있었지만 풀기 싫었다.

 

 

10분 20분이 지나갈수록 자리에 그대로 엎어지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결국 살아남은 학생은 나와 앞쪽 구석자리에 앉은 전교1등밖에 없었다. 쟤는 공부 정말 열심히 한다. 괜히 볼펜 끝을 물고 입만 삐쭉대던 나는 내 바로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있는 담임을 쳐다봤다. 살짝 내리깐 눈부터 그아래 오똑한 코, 입술, 턱선, 목선....결국 담임의 손가락까지 시선을 옮긴 나는 책상에 볼을 대고 엎어졌다. 아...잘생겼다 진짜. 애들아 저게 내 애인이야. 절대 말못할 사실이였지만 큰소리로 자랑하고 싶었다. 저게 내 애인이라고!!!

 

 

앞에서 내가 계속 쳐다보는데도 시선이 느껴지지도않는건지 담임은 꿈쩍도 않고 계속 손을 놀렸다. 이씨. 괜히 담임의 시선을 끌기위해 텅빈옆자리에 발을 올리기도하고 몸을 쭉 뻗기도 했는데 여전히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다. 아 심심해...., 입을 쭉 내뺀 나는 한참을 또 멍때리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급하게 포스트잇을 찾았다. 맨 위에 조그마하게 글을 적은 다음 눈치를 보다가 담임의 노트북쪽으로 쑥 던졌다. 키보드위에 포스트잇이 가만히 내려앉고 담임의 손이 멈추는게 보였다.

 

포스트잇을 가만히 내려다본 담임은 날 쳐다도 보지않고 옆에 있던 볼펜을 들어 끼적인다음 내게 던졌다. 뭐라 쓴거지? 다급하게 본 포스트잇에 나는 실망을 감추지못했다. 이게 뭐야

 

-쌤 뭐해요~

-일

 

이이일? 이런식으로 나오면 윤리만 처음으로 돌아간게 아니라 나도 처음으로 돌아간것같잖아.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다시한번 꾹꾹 글씨를 눌러썼다.

 

-너무 쌀쌀맞다...ㅠㅠ...

-미안해 백현아 근데 선생님 바빠

 

바쁘다는 글자를 보면서 나는 픽 쓰러지듯 책상에 엎어졌다. 바쁘다는데 내가 뭐라고 그래.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열심히 하세요] 라고 써서 다시 던지자 이젠 답장도 없었다. 에라이. 애인이고 뭐고. 잘생기면 뭐합니까 자랑스러우면 뭐합니까. 지금 롸잇나우 나한테 너무 쌀쌀맞은데. 흑... 두팔을 포갠다음 그곳에 이마를 대고 눈을 꾹 감았다. 서러우니까 차라리 자자.

 

그리고 살짝 잠이 들랑말랑할때쯤 나는 팔에 무언가 툭 닿는 느낌에 부스스 일어나야했다. 뭐야...눈을 비비며 책상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물건을 쳐다봤다. 사탕? 물건의 정체는 작은 막대사탕이였다. 뭐야 왠 막대사ㅌ...아하. 사탕막대부분에 작게 붙여져있는 메세지. '자지마' 대충 날려쓴 글씨였지만 나는 이 글씨의 주인공을 단번에 알아볼수있었다. 미치겠다 진짜....사탕을 손에 꾹 쥐고 몸을 숙였다 들었다 하며 담임을 쳐다봤지만 담임은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듯이 태연하게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받았으니까 나도 답장을 해줘야지. 나는 다시한번 포스트잇을 뜯고 빨간 색연필을 들었다. 한참을 끼적이고서 이번엔 담임의 노트북화면에 턱 붙였다.

 

"....변백현 진짜..."

 

수업시간을 5분 남겨놓고 드디어 담임이 날 쳐다봤다. 한 손을 들어 얼굴을 감싼 담임의 귀는 새빨개져있었다. 분명 나도 지금 얼굴 엄청 빨갈텐데. 으흐흐. 담임의 반응에 작게 웃어보인 날 보며 담임은 손을 들어 내 머리를 마구 비볐다.

 

"너때문에 못살겠다 진짜"

 

노트북중앙에 떡하니 박혀있는 하트. 빨간색으로 야무지게 칠해놓은 커다란 하트는 한동안 계속해서 담임의 노트북에 붙어있었다.

 

 

-

 

 

 

나는 몇일 전부터 살짝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를수가 없었다. 박찬열과 김종대는 솔로천국이라며 날 붙잡고 외쳐댔지만 난 그저 그들의 어깨만 토닥토닥해줄뿐이였다. 짜식들아..너넨 모르겠지만 이 형님은 크리스마스에 혼자가 아니란다.

 

"우리 크리스마스에 만날래?"

"...미친새끼야. 존나 서럽게 그럴래?"

"그래도 따로 따로 혼자 집에 쳐박혀있는것보단 나을거아냐.."

"그런가...변백 너 크리스마스에 만날 수 있어?"

 

예상치못한 김종대의 제안에 나는 눈만 동글동글하게 뜨고있다가 급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안돼! 내 다급한 외침에 눈이 일자로 쭉 찢어진 박찬열과 김종대가 왜? 하고 물어왔다. 어..그러니까..왜 안되냐면...

 

"나...나 할머니집에 가!"

"뭐?"

"강원도 양구있잖아! 나 거기 간다고.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못 놀아"

"....하...변백현 너 이자식..."

 

두손가락으로 미간을 꾹 잡은 박찬열이 내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그런 다음 마치 위로라도 하는마냥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 장면을 보고만 있던 김종대도 내게 다가와 토닥여줬다.

 

"올 크리스마스는 변백현이 제알 불행하구나"
"뭐?"

"맞아...크리스마스에 할머니집이라니. 짜식..힘내라"

 

허....나는 둘의 반응에 멍을 때리다가 대충 고개를 끄덕여줬다. 새끼들. 제일 불쌍한건 너네 둘이야...

 

 

-

 

 

크리스마스에 영화관은 말그대로 지옥이라는걸 알기에 나와 담임은 제일 처음 시작되는 영화를 선택했다. 집에서 무려 5시에 나와야만했다. 평소보다 2시간 더 빨린 일어난 나는 무려 30분을 옷입는데에 투자하곤 집밖으로 나왔다. 깔끔하게 자켓을 입은 담임이 엘리베이터앞에 기대서있는게 보였다. 선생님! 내 부름에 담임이 날 쳐다봤다. 아, 아침부터 저렇게 잘생긴건 반칙아닌가. 옷도 왜저리 잘입는지. 나는...그래도 엄청나게 고심해서 고른 야상이였는데.

 

 

"왜 그렇게 멍하니 서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왜이럴까 우리 백현이. 내 얼굴을 잡고 꾹 누른 담임이 환히 웃었다. 아 진짜 잘생겼네. 나는 또 멍청하게 담임을 쳐다보다가 두팔을 들어 담임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나도 자켓입고 나올걸. 야상을 입으니까 더 어려보이잖아. 나는 괜히 심술을 부리며 담임의 가슴팍에 얼굴을 부볐다.

 

영화관에 도착할때까지 조금씩 이어진 내 어리광이 담임은 퍽 귀여운 모양이였다. 주차장에서 내린 뒤부터 꼭 잡은 손을 놓지않고서 담임은 계속 내 볼을 만지작거렸다. 뭐가 불만인지는 모르겠는데 부풀어오른 볼이 귀엽다고했다. 그렇게 말하면 난 어떡해. 계속 볼 부풀려야지.

 

"백현아, 어쩌지"

"뭐가요?"

"지금 시간 딱 맞는게 겨울왕국밖에 없는데..디즈니영화 좋아해?"

"전 뭐 괜찮은데...선생님은요?"

"아..난"

 

쑥스러운지 이마를 긁은 담임은 고개를 한번 내렸다가 들면서 입을 열었다. 나 디즈니영화 좋아해. 나는 담임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푸핫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안어울리지? 머쓱하게 웃은 담임에게 손사레를 치며 나는 보자고 대답했다. 저도 좋아해요. 사실 그 유명한 라이온킹도 안봤을정도로 디즈니와는 먼 나였지만 담임이 너무 귀여워서 싫다고 할수가 없었다. 아니 뭐, 담임이 안귀여웠어도 난 봤을거지만.

 

겨울왕국의 폭발적인 인기가 조금 지나간 시점이고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은 나와 쌤을 포함에서 10명 안팍이였다. 맨뒷자리에 좌석을 잡은 담임과 나는 밖에서 팝콘을 먹을까 나쵸를 먹을까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가 아슬아슬하게 맞춰 들어갔다. 껌껌한 영화관속에서 겨우겨우 좌석을 더듬어가며 앉은 우리는 편하게 앉아 화면을 쳐다봤다. 화면속엔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가 나오고있었다.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나의 집중력은 흐트러졌다. 노래는 좋았지만 내 머리속어딘가가 디즈니자체를 거부하고있는듯했다. 내용이 보이지않았고 노래가 들리지않았다. 흐어...늘어지게 하품을 한다음 슬쩍 옆을 쳐다봤다. 침떨어지겠네. 빨려갈듯 몰입해서 보고있는 담임의 옆모습을 보자 나도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안어울리는데 또 뭔가 잘 어울린다.

 

영화는 이미 흥미를 잃은지 오래였고 에라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나는 아에 고개를 담임쪽으로 돌려버렸다. 얼굴만 보고있어도 너무 좋다. 괜히 쑥스러운 생각에 살짝 고개를 푹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드니 언제 고개를 돌린건지 담임이 날 보고있었다. 왜그래? 담임의 물음에 나는 그저 두눈만 껌뻑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피식 실없는 웃음을 지어보인 담임이 손을 들어 화면을 가르켰다. 집중하라는 의미를 알아챈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억지로 시선을 앞에 고정시켰다. 지루한데...

 

한참을 억지로 눈을 고정시키고있던 나는 엘사가 성을 지어올릴때부터 나도 모르게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었다. 미친... 성 존나 아름다워. 디즈니의 기술에 감탄을 하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감탄했다. 집에 가서 다운받아야지. 그렇게 다짐을 하며 집중하고있을때 손끝에 무언가 닿아오는게 느꼈다. 아씨 뭐야. 손을 찔끔찔끔 움직이며 그 느낌을 피했다. 나 지금 집중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느낌은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느껴졌다. 아 진짜 뭐야...!

 

"..헉..."

"...너무 영화에 집중하는거 아니야?"

 

내 얼굴 앞에 바로 담임의 얼굴이 놓여있었다. 손은 마디마디가 꽉 찬 느낌이였다. 깍지...나 지금 담임하고 깍지낀거야? 손은 무수히 많이 잡아왔지만 깍지는 처음이였다. 평소에 잡던거랑 깍지랑 둘다 손잡기는 마찬가지인데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거기다 영화관에서의 깍지라니! 꼭 스킨십을 처음 시도하는 풋풋한 커플같은 느낌이였다. 내손을 더욱 옥죄어오는 담임의 손과 내 눈앞에서 날 바라보고있는 담임의 눈. 머리가 핑글핑글도는듯했다. 영화에선 신나는 음악소리가 울려퍼졌지만 신경조차 쓰이지않았다. 영화관엔 나와 담임만 존재하는것같았다.

 

"집중하라고 했다고 너무 집중하는거아니야?"

"..네?"

"....나 디즈니영화 좋아하는데 이제 싫어질것같잖아"

 

나 웃기지?

담임의 말이 무슨 뜻인가 두 눈만 굴리던 나는 그 의미를 깨달은 순간 얼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아 진짜...! 짧게 웅얼거리며 담임을 쳐다봤다. 꼭 붙잡고 있는 손의 반대손을 들어 열심히 부채질을 하며 말문이 막혀버린 입을 겨우겨우 열어 내뱉었다. 아니..선생님이...집중하라고 해서 했는데..쌤도 집중하고 있었으면서...내가 계속 말을 뱉어내는 동안 담임은 시선을 피하지않고 날 쳐다만보고있었다. 아 그렇게 쳐다보면 진짜! 나는 결국 끝맺음을 맺지 못하고 입을 비쭉거렸다. 아씨 망했어. 부채질하던 손으로 눈을 턱 가려버렸다. 담임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백현아"

"...왜ㅇ..."

 

짧게 입술에 입술이 닿고 떨어졌다. 깜짝 놀래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우고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안봐 백현아"

"...아니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내 말이 다 나오기도 전에 나는 다시한번 맞춰오는 담임의 입술에 말을 삼켜야만했다. 이제 영화내용따윈 내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않았다. 그건 담임도 마찬가지인것같았다. 한참을 다시 눈을 맞추다가 쪽. 또 쪽. 아아. 미치겠다. 나는 쓰러지듯 담임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었다. 왜그래 백현아. 아무것도 모르겠다는듯이 말하는 담임의 말에 나는 그저 어깨에 이마만 부비적거렸다. 담임의 손이 내 머리카락을 만지는게 느껴졌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때까지 난 그상태로 가만히 있을수밖에 없었다.

 

-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온 우리는 괜히 영화관주위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게임방을 가기도 하며 시간을 떼웠다. 중간중간 간식거리를 사먹어서 그런지 점심은 대충 넘어갔지만 저녁이 다가오자 허기짐을 숨길순없었다. 배고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어오는 담임에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힐쭉 웃어보였다. 뭐 먹고싶냐는 질문에 스파게티라고 답한 나를 담임은 바로 저번에 갔던 그 곳에 예약하기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아 안돼! 내 외침에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담임을 보며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제..제가 요앞에 스파게티 엄청 잘하는 집 알아요 거기로 가요!"

 

솔직히 말하면 이곳은 태어나서 딱한번 와본 곳이였다. 나는 예전 김종대와 박찬열과 갔었던 스파게티집을 기억해내느라 밖으로 나올때까지 식은땀을 흘렸다. 담임은 그런 나를 이상한듯 쳐다보며 그냥 저번에 갔던데로 가자고 말했지만 나는 또한번 손사레를 쳤다. 미쳤다고 거길가. 거기 가격만 해도...으으...저번에 봤던 메뉴판 속 스파게티 값을 생각해낸 나는 더욱 기억을 상기시키기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다행히도 스파게티집은 가까이 있었다. 스파게티집을 발견하자마자 그제서야 마음이 푹 놓였다.

 

"자리가 있긴한데 창가 쪽이라 많이 추울실거에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급하게 들어간 스파게티집에서 상냥한 직원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직원이 가르킨데는 좀 외진곳의 있는 창가자리였다. 다른 자리는 언제 날까요? 내 물음에 직원은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다른자리는 밀렸다는 것이였다. 어쩌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민하고있자 담임이 날 툭 쳐왔다. 그냥 그곳으로 가자. 그 말에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안돼요 전 여기가 좋아요! 직원에게 저곳으로 하겠다는 말을 하곤 담임이 손목을 확 잡고 질질 끌고갔다.

 

"더 좋은데로 가자니까"

"선생님 여기 정말 맛있어요. 진짜에요!"

"...그래 그럼. 주문해 뭐 먹을래?"

"..어...전..."

 

메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본 나는 그냥 토마토스파게티를 가르켰다. 제일 무난한게 제일 맛있겠지! 사실 난 이곳에서 스파게티를 먹어본적이 없었다. 저번에 왔을때 배탈이 나서 그냥 박찬열과 김종대가 먹는것만 보고있었었는데..., 뭐 그때 걔네 둘다 토마토시켰었으니까 토마토가 나은거겠지. 근데 걔네 표정이 어땠더라...

 

"더 시킬건 없어? 많이 시켜."

"아뇨 괜찮아요!"

 

흐음...날 한번보고 메뉴판을 한번 본 담임은 우리쪽으로 다가오는 직원에게 이것저것 많은걸 시키기 시작했다. 뭐야 왜저리 많이 시켜. 샐러드에 스파게티에 줄줄 시키는 담임때문에 직원도 받아적느라 바빠보였다. 나는 그냥 그 모습을 멀뚱히 쳐다만봤다. 선생님 배고팠구나.

 

직원을 떠나보내고 담임은 테이블위에 올려져있는 내손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잡기도 하고 튀어나온 마디마디를 만지작거리기도했다. 그런 담임을 쳐다보다가 나도 따라 담임의 손마디를 하나하나 만졌다. 커다란게 딱 남자다운 손이였다. 난 약간 여자손같은데. 담임의 손위에 내 손을 올려놓자 담임이 손바닥을 뒤집고 내손을 꼭 잡아왔다. 그 행동에 놀래 살짝 굳었던 나는 잡은 손을 만지작 거리는 행동에 웃음이 터져 긴장을 풀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을때 담임의 핸드폰이 울렸다. 슬쩍 본 핸드폰엔 [왕 눈]이라고 저장되어있었다. 왕 눈? 누구지생각하고 있던 내 머리속에 도쌤이 순간 스쳐지나갔다.

 

"...아씨 도경수"

 

역시 도쌤이였나. 도쌤과 왕눈이라는 별명이 너무 잘어울려 킥킥대던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버리는 담임을 쳐다봤다. 안받아도 돼. 담임의 말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핸드폰을 쥐어주었다. 통화하고 와요. 도쌤 화나겠다. 끊겼던 통화는 다시한번 울려오고있었다.

 

"...진짜 도경수, 그럼 백현아 통화 좀 하고 올게. 음식나오면 먹고있어"

"네에"

 

왜 뭐! 받자마자 저렇게 짜증을 낸 담임은 곧 딸랑하는 문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가버렸다. 음식은 언제 나오지. 괜히 포크만 물며 오물오물 거리던 나는 밖을 힐끔 쳐다봤다. 어? 그리고 밖에서 통화중인 담임을 발견했다. 뭐가 불만인지 길에 놓여있던 돌맹이를 툭 치며 통화중이였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보여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거의 창문에 붙어있다시피 보고있었는데 우연히 위를 올려본듯한 담임과 눈이 마주쳤다. 환하게 눈을 접으며 웃자 담임도 웃어보였다.

 

입을 오물오물 거리는걸로 봐서 계속 통화중인것같은데 담임의 시선은 나에게 머물러있었다. 통화 언제 끝날까. 도쌤은 대체 통화를 몇분을 하는건지 무슨 할말이 많다고..., 전화기를 꼭 붙잡고있는 담임을 보며 그리 생각했던 나는 순간 얼마전에 정수정이 내게 들려줬던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일단 잠시 내게 눈을 뗀 담임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시선을 끌었다. 내 행동에 다시 나와 눈을 마주치는 담임을 보며 나는 창문에 하-하고 입김을 불었다. 입김이 하얗게 창문을 덮었다. 그리곤 손을 들어 하얀곳에 대고 하트를 그렸다. 보일까? 싶어 옆으로 고개를 쏙 빼고 담임을 쳐다보자 얼굴을 감싼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담임이 보였다. 본거야 안본거야. 옆에 그렸던 하트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무슨 반응을 해줘야 본지 안본지 알지. 정수정 구라쟁이. 이런걸로 어떻게 커플이 탄생했단건지.

 

계속해서 담임을 보고있었는데 담임은 고개를 들 생각이 아에 없는건지 한참을 고개만 숙이고있었다. 몰라 됐어 나도 몰라. 에라이. 아까보다 입을 더 삐쭉이며 있자 때마침 음식들이 들어왔다. 음식이나 먹어야지. 계속해서 들어오는 음식들을 생각하며 내 애교아닌 애교는 머릿속 저편으로 밀어넣었다.

 

음식이 다 나오고 먼저 수저를 들까말까 고민하고있을때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누구지 종대인가 찬열이인가. 포크를 놓고 핸드폰을 집어 문자를 확인했다.

 

[밖 좀 봐봐 백현아] - ♥

 

담임에게 온 문자였다. 뭐지? 눈만 껌뻑이던 나는 급하게 밖을 쳐다봤다. 그리고 아까의 담임과 같이 고개를 푹 숙여버릴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바닥에 하트를 그린 담임이 그 옆에 서서 날 보며 웃고있었다. 아아 진짜. 얼굴이 달아올랐다. 문자가 한개 더왔다. [고개 들어봐] 역시 담임에게 온 문자였다. 억지로 고개를 들어 담임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담임은 날 보며 입을 열었다.

 

-사랑해 백현아

 

아 정말 한계다. 난 담임이 가게로 들어와 내 어깨를 칠때까지 고개를 푹 숙인채로 있어야만했다.

 

 

 

 

 

 

18

 

 

 

평소와 같이 6시에 눈을 뜬다음 가만히 앉아 눈을 껌뻑이며 달력을 쳐다봤다. 12월 31일. 이번 년도 마지막 날이네....늘어지게 하품을 한다음 침대에서 내려왔다. 오늘은 오랜만에 담임하고 만나는 날이였다. 나는 박찬열과 김종대, 정수정에게 여러모로 끌려다니느라 담임은 학교일때문에 방학식날 이후로 만난적이 없었으니까.

 

이쁘게하고 나가야한다는 생각에 샤워도 평소보다 더 오래하고 옷도 더 오래 골랐다. 담임보다 많이 어려보이지않기위해서 코트를 입을 생각이였다. 아 좋아 좋아. 나의 패션센스에 감탄을 하곤 고개를 들어 시계를 쳐다봤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많이 준비했는데 아직 만나기로 한 시간은 3시간 넘게 남았다. 1시에 만나기로했는데, 지금은 겨우 9시 30분밖에 되지않았다. 괜히 오버한거같아 머쓱한 마음이 들었다. 나 엄청 설레하네. 이러면 안되는데 내가 더 받는입장이여야하는데...끙... 그저께쯤 저에게 절대 애인관계에서 많이 주면 안된다고 30분동안 연설을 했던 정수정이 떠올랐다. 정수정의 말을 듣고 저는 절대 그러지않겠다고 다짐했것만....말짱도루묵이였다. 근데 너무 좋은걸 어떡해.

 

한참을 멍하니 시계만 바라보다가 나는 시간이라도 때우기위해 티비를 켰다. 티비에서는 마침 무한도전 재방송을 틀어주고있었다. 티비를 많이 즐겨보지는않지만 그래도 뭐 무한도전은 재미있었다.

 

한편 한편씩 어느새 시간가는지 모르고 보고있던 나는 거실 가득 들려오는 초인종소리에 당황했다. 뭐지? 황급히 본 시계는 11시를 가르키고있었다. 만나기로 하기까진 2시간이나 남았는데 담임도 못참고 온건가? 슬슬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꾹 누르며 현관문으로 달려가 벌컥 열었다.

 

"쌔....형?"

"...뭐지 우리 백현이? 형 섭섭하게 만드는 앞에 공백은?"

"...아니.... 안믿겨서...혀엉...형!!"

 

담임이 아닌 것에 당황했지만 나는 금새 그 마음을 잊어버리곤 감격으로 가득 차올랐다. 몇달만에 보는 형얼굴이야. 손을 뻗어 형의 목에 손을 감싸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형 진짜 보고싶었어! 내 말에 어쭈하고 웃어보인 형이 마치 1년전 같이 살때처럼 자연스럽게 날 들쳐매고선 쇼파로 데려가 앉혔다. 내 품에서 떨어진 형에게 손을 뻗어보이며 애같이 칭얼거렸다. 아 혀엉.

 

"변백현 하나도 안변했는데"

"난 당연히 안변하지!"

"근데 왜 그땐 그랬던거야? 형 진짜 상처받았었잖아"

 

살다살다 변백현이 나한테 화낼 일도 보고말이야... 형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때? 그때가 언제지? 잠시 생각하던 나는 여름방학때의 날 떠올렸다. 아 그때는 형...! 내가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자 한번 더 웃어보인 형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오늘 상태보고 다 풀렸어"

"으으...미안해 형 그때 내가 상태가 좀..."

"늦은 사춘기였지. 상태가 꼭"

 

사춘기라니! 낯간지러운 말에 나는 사춘기는 아니라고 빽말했다. 나 그정도로 어린이 아닌데! 내 말에 이게 어린애아니면 뭐냐고 웃어보인 형이 내 옆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근데 형 왜 온거야? 그냥 나 보려고 온거야?"

"뭐...그것도 이유고. 근데 어디 나가?"

"아..응. 좀있다 약속이 있어서.."

"찬열이랑 종대?"

 

형의 질문에 나는 그저 끙...거리며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그냥 약속이 있어! 내 대답에 잠시 날 빤히 쳐다보던 형이 피식웃으며 그럼 빨리 말해야겠다. 라고 했다. 뭘?

 

"백현아"

"응"

"너도 이제 고3이잖아"

"....ㅇ..어..."

"고3은 특히 어른들의 관리가 많이 필요한 시점이란 말이야 그래서 형이 부모님하고 형수랑 이야기 해봤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형의 말을 듣지않고 튀어나가버리고 싶은 심정이였다. 뭔진 모르겠는데 저렇게 뜸들이는게 엄청 수상하잖아...!

 

"같이 살자 백현아"

"....뭐?"
"형수도 동의했어. 이 집은 뭐...계약도 거의 다 끝나가니까 같이 살다가 너 대학가면 대학가주변에 자취방 얻어줄게"

"아...아니..아니 형 잠만"

 

형 집에 내가 들어가산다고? 거기다가 이 집은 팔겠다고? 담임의 옆집인 이 집을? 나는 표정관리를 하지못하고 울상을 지었다. 왜그래 싫어? 차분히 물어오는 형에게 대놓고 싫다고도 못 말한 나는 그냥 계속 울상으로 있었다. 그런 내 반응이 형수가 불편해서 나오는건줄 해석한 형은 최대한 날 설득하려고 애를 썼다. 백현아 고3은 말이야…. 하지만 형의 말은 내 귀에 단 한개도 들어오지않았다.

 

선생님.

 

이게 바로 저와 선생님의 첫번째 시련인가봐요. 고3. 19살. 수능.

 

-

 

형이 떠나버린 텅 빈 거실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않은채 계속 앉아있었다. 형의 말을 듣고있자하니 애초부터 나한테 선택권따윈 없었던것같다. 거기다 부모님이 먼저 원하신거였다니. 그럼 내가 싫다고 할 수 없잖아....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에 이마를 댔다. 기껏 멋있게 준비한 머리는 다 헝크러졌고 옷은 구김이 갔다. 하지만 그딴것따위 신경이 가지 않았다. 나 어쩜 좋아요 선생님.

 

한참을 그러고있자 초인종소리가 울려왔다. 뭐야 또 형이야?! 고개를 번쩍 든 나는 시간이 1시인걸 확인하고는 재빨리 현관문을 열었다. 쌔앰.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담임의 허리를 바짝 안았다. 왜그래 백현아. 내 반응에 놀란 담임이 내 꼴을 보고 한번 더 놀랬다. 무슨 일 있었어? 아무말 못하는 나를 계속 뚫어지게 바라보던 담임이 손을 잡고선 소파에 날 앉혔다.

 

"백현아. 걱정되잖아. 말해봐 무슨일이야?"

"...쌔앰..."

"응 왜?"

"...저 이제 1년동안 쌤 못봐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약간 굳어진 얼굴로 날 쳐다보는 쌤을 울먹이며 쳐다보다가 덥썩 목을 껴안았다. 나 고3이라고 형이 같이 살자고했어요. 나 계속 여기에 있고싶은데... 계속 칭얼거리는 날 가만히 보던 담임이 날 꼭 껴안는게 느껴졌다. 그 느낌에 난 더욱 울컥하는 기분이였다. 떨어지기 싫은데. 계속 담임 옆집에서 살고싶은데

 

"왜그렇게 속상해해. 형이 너 생각해서 한 말 같은데"

"...그래도...쌤은 안 속상해요? 난 속상해서 죽을것같아요..."

"학교에서도 계속 볼테고 그리고 가끔씩 백현이 너가 여기로 찾아와주면 되잖아. 선생님이 형네 집으로 가긴 무리니까"
"...그래도.."

"1년만 지나면 맨날 같이 있을텐데. 1년만 참아보자 백현아"

 

나는 선생님의 마지막말에 순간 멈칫했다가 담임의 어깨에 고개를 더욱 파묻었다. 마지막말속에 포함되있던 나와 담임의 미래.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미래를 아무렇지않게 말하는 담임때문에 얼굴이 새빨개지는 기분이였다. 정작 담임은 자신이 무슨 말을 뱉었는진 모르는것같지만 그래도 좋았다. 할수있지 백현아? 내 등을 토닥이며 말해오는 담임을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래 뭐 1년이야. 1년만 지나면 하루종일 같이 있을꺼니까

 

 

 

 

---

 

 

 

당당하게 백현이에게 1년만 참자고 말한지 벌써 11개월정도 훅 지나가있었다. 수능 전날에 나에게 찾아와 어떡하냐고 울먹이며 말했던게 엊그제같은데, 백현이 수능장을 들어갔다온지도 벌써 2주여가 흘러가있었다. 그리고 지금 현상태 백현이는 그냥 말그대로 정신없음. 혼돈의 가운데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보였다. 고3때도 틈틈이 저에게 찾아오던 백현이는 지금 저에게 2주동안 말한마디 안걸고있었다. 걸어도 그냥

 

"어 쌤! 안녕하세요"

 

이게 끝이였다. 이게....말이 돼? 나는 괜히 신경질이 나 넥타이를 거칠게 풀었다. 아 답답해. 지금 당장이라도 백현을 잡아다가 자신의 앞에 꽁꽁 묶어놓고싶은데.

 

"...아 진짜 김종인 개 정신없네. 가만히 좀 있어. 죽이기전에"

 

계속 안절부절하는 내가 거슬렸는지 준면이형이 날카롭게 말해왔다. 아니 형 내가 지금 진정이 되게 생겼어? 내 말에 혀를 두어번 찬 준면이형이 코코아를 들이키며 입을 열었다.

 

"너 입장도 알겠는데 지금 변백현은 처음으로 가장 큰 결정을 하고있는 중이야"

"..아니...그래도..!"

"억지부리지 좀 마 김종인. 지금 백현이한텐 너보다 대학이 우선이라고!"

 

참다못한 준면이형이 화를 버럭내며 내 의자를 발로 뻥 찼다. 아씨 진짜! 내가 팍 짜증을 내자 형은 한번더 내 의자를 퍽 찼다. 양심도 없는 새끼. 그 말에 또 욱해서 소리를 높히려는데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두명이 교무실로 등장했다. 헉. 나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다른데 상담실이 다 차서 그런데 여기 좀 써도 되죠? 어짜피 두명밖에 없네. 나 쓴다"

"그래 써. 변백현 고생한다"

"괜찮아요 뭐... 오 종인쌤 안녕하세요!"

 

환하게 손을 번쩍 들어 흔드는 백현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웃어보였다. 그리곤 더 말을 걸려고 입을 열었는데 그 사이에 도경수가 바로 변백현을 데리고 구석진 곳으로 끌고갔다. 시발 진짜...또 실패한 말걸기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왜 난 요번에도 2학년을 담당한걸까. 덕분에 백현이랑은 수업에서도 안마주치고...저렇게 상담도 못해주고..., 아 도경수 부럽다. 요번에 처음으로 3학년에 배정된 도경수는 운좋게도 변백현네 반 담임이 되었다. 그래, 그래서 변백현은 2주동안 저에게는 인사만하면서 도경수뒤는 계속 졸졸 따라다녔다. 따지고 보면 백현이의 행동이 잘하는 짓이고 정상적인 짓이지만 그래도.

 

"난 애인이잖아...그치 형...형도 그렇게 생각안해?"

"뭐라는거야. 한대 더 맞을래?"

 

시발 몰라! 괜히 준면이형한테 소리를 빽 지르고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버렸다. 허! 뒤에서 형의 헛웃음이 들려왔다. 이거 30살맞아? 형의 말에 나는 다시 고개를 급하게 돌렸다.

 

"아직 29살이거든?"

 

비록 얼마 안남았지만 그래도 난 아직 20대라고 30대 아저씨야. 나는 어이가 없다는듯이 계속 웃어싸는 형을 무시하고 달력을 쳐다봤다. 2014년도 얼마 안남았는데 백현이와 나는 이렇게 2014년을 아무것도 안하고 보내게 되는구나. 고3담임을 몇번해봐서 잘 안다. 백현이는 아마 1월달이 되서도 정신이 없을거고 도경수뒤를 따라다닐거란걸. 이게 다 어린 애인둔 내 팔자다. 어린 애인, 변백현을 가진 댓가가 이정도면 뭐...싼건가? 나는 한숨을 한번 더 푹 쉬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백현이였지만 백현이 보고싶었다.

 

 

-

 

 

"백현이가 어디과에 넣었는지 왜 알고싶은데?"

"...장난까 나랑 지금?"

 

내가 내 애인 어디넣었는지 좀 알겠다는데 이유가 필요해? 나는 인상을 팍 구기고 도경수를 째려봤지만 도경수는 그 큰눈을 깜빡도 안하고 멀뚱멀뚱히 날 쳐다봤다. 왜에~? 왜 알고싶은데에~? 아 진짜 명치한대만 세게 때리고싶은 심정이였다.

 

"좋은 대, 좋은 과에 넣었어"

"아 좀! 도경수!"

"난 못말해! 백현이가 말하지말랬단말이야. 특히 너한테"

"...뭐?"

"아무튼 그러니까 억지부리지말고 가서 일이나 봐!"

 

2학년애들 생기부정리 밀렸잖아! 나도 바쁘다고! 도경수는 짜증을 확 부리며 날 교무실밖으로 밀어냈다. 미친 야 도경수! 교무실밖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도경수의 대답이 아닌 3학년 부장선생님의 고함소리였다. 김종인 선생 빨랑 돌아가요! 카랑카랑한 그 목소리에 나는 허탈하게 2학년 교무실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씨바알...진짜....기운없이 엎드려있자 혀를 끌끌 찬 준면이형이 말을 걸어왔다.

 

"변백현 방학도 했겠다. 원서도 다 넣었겠다. 그냥 만나면 되는거아냐?"

"...백현이 연락이 안돼"

"헐 그럼 찾아가봐"

"..형 집에서 사는데?"

 

내 말에 형은 답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백현이가 늙은 애인싫어서 도망갔나보네. 아 저딴 말은 농담이라도 하지않았으면 하는데 형은 매번 저렇게 나를 놀린다. 짜증나게 진짜! 나는 머리를 한번 헝크리곤 억지로 2학년아이들의 생기부를 손에 쥐었다. 하....변백현생각만해도 바쁜데 일은 또 왜이렇게 많은걸까.

 

 

2014년의 마지막날이니 오랜만에 크리스형까지 불러서 술한잔하자는 준면이형을 뿌리치고 나는 맥주몇캔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정말 나와 백현이의 2014년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갔다. 이제 몇시간뒤면 2015년인데. 2014년의 추억이 하나도 없다는게 말이 돼? 하 참...,

 

오늘따라 느린것만같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있자 옆에 누군가가 와서 스는게 느껴졌다. 그냥 이웃이겠거니 한 나는 기분이 너무 다운이라 옆을 확인하지도않았다. 그렇게 계속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있을때 옆에서 높은 하이톤의 여자목소리가 들려왔다.

 

"종인씨?"

"....누구세...아"

"어머 종인씨 아닌줄알았잖아요~ 어디갔다오는거에요? 학교? 오늘 야근했어요?"

"아..네..뭐..."

 

백현이가 이사가고 그곳에 들어온 젊은 여자였다. 이사온 첫날부터 저에게 치근덕거리는게 마음에 안들어 일부로 쌀쌀맞게 굴었는데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치근덕거리고있었다. 슬쩍 부딪쳐오는 팔에 기분이 더욱 다운이 되었다. 아, 향수냄새 독하다.

 

"근데 그거 다 맥주에요?"

"...네"

"야밤에 혼자 술먹으시게요?"

"...네"

 

뭐가 이렇게 궁금한것도 많은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질문을 걸던 여자는 이젠 제 손에 들린 맥주에게도 관심을 주고있었다. 오지랖 한번 태평양이네. 내가 사는 층수는 거의 다 와가고 있었고 여자는 점점 더 맥주에 관심을 주고있었다. 왜이러는거야 대체. 이젠 불쾌한 표정조차 숨길 수 없었다. 곧 층수에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열렸고 여자와 나는 같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종인씨 술은 혼자 먹으면 맛없는데..."

"....그러세요"

"그러니까~ 음...제가 오늘 한가하거든요"

"...."

"뭐, 괜찮으시다면 같이 술한잔 어ㄸ..."

"자기야!"

 

여자가 점점 내게 접촉해오고 더욱더 기분이 최악으로 떨어졌을때 앞에서 누군가 빽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래 여자와 나는 둘다 앞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놓쳤다. 맥주가 가득 든 비닐봉지를. 비닐봉지속에 있던 맥주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여기저기로 굴러갔다.

 

"지금 뭐하는거야?"

 

거의 한달만에 보는 얼굴, 방금전까지 내가 생각하고있던 그 얼굴이.

 

"응? 말해봐"

 

내 앞에서

 

"자기야"

 

나를 향해 웃어보이고 있었다.

 

 

-

 

 

화가 부글부글났다. 거의 한달반동안 대입문제때문에 미친듯이 살다가 겨우 숨돌리고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고 돌아와 바로 선생님집으로 향했는데, 선생님 아니 김종인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자랑 붙어먹고 있는 꼴이라니. 순간 화가 확 올라와 다짜고짜 소리를 빽 질렀다.

 

근데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고선 아무말도 없다가 갑자기 손목을 콱 잡고 자기 집으로 끌고가는게 아닌가. 아파오는 손목에 짜증이 더 확났다. 지금 화난 사람이 누군데 누가 화난것처럼 행동하는거야? 집안으로 끌려들어오고나서 나는 손목을 비틀었다. 아 놔요 좀!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면 말할수록 선생님은 더욱 세게 잡아왔다. 미치겠네 진짜!

 

"나 진짜 아ㅍ..."

"백현아"

"...."

"백현이 맞아?"

 

코가 닿을거리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선생님의 눈은 매우 애절해보였다. 그 눈빛때문에 나는 순간 가득 화가 났던 마음이 쏙 사라지는 기분이였다. 한참을 그렇게 날 쳐다보던 선생님은 쥐었던 손목을 놓고선 내 얼굴을 잡았다. 진짜 백현이야?

 

"네 선생님"

"..."

"저 백현이 맞아요. 변백현"

 

그리고 내 대답이 들려오자 선생님의 표정이 알쏭달쏭하게 바뀌더니 날 팍 껴안았다. 아 숨! 숨 막혀요! 내 칭얼거림에도 선생님은 아랑곳하지않고 더욱 세게 안았다. 에라이 나도 이제 모르겠다. 나도 손을 들어 선생님을 꼭 안았다.

 

감동의 재회가 끝난후에 선생님은 그제서야 좀 정신을 차린건지 내 손목을 보며 미안하다고 계속 중얼거렸다. 괜찮다니까요. 나는 선생님에게 또한번 괜찮다는 말을 하고선 선생님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날 걱정해주는 선생님의 모습에 간질거리는 마음이 몽실몽실일어났다. 그렇게 선생님만 쳐다보다가 슬쩍 옆을 봤을때 나는 방금전 선생님이 다시 나갔다가 가져온 맥주를 발견했다. 저 맥주보니까 다시 생각난다.

 

"...근데요 선생님"

"왜?"

"아까 그여자 누구에요?"

"...아, 옆집이야"

"..옆집? 옆집이 막 술먹자고 그래요?"

 

이런 씨발...., 차마 선생님앞에서 욕을 내뱉진못하고 속으로만 계속 열불을 내다가 나는 짜증스럽게 티비를 켰다. 왜 갑자기 티비는 키고 그래?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담임의 말에 나는 표정관리를 열심히 하며 그냥 보신각종소리 들으려고 켰다고 둘러댔다. 티비속엔 여러 커플들의 모습이 나오고있었다. 나도...나도....아 시팔 진짜 내가...

 

"그 여자랑 친해요?"

 

이런 질문 스스로가 너무 싫어해서 안물어보려고했는데 아까의 그 팔짱이 오버랩되면서 안물을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무슨뜻이냐는 듯이 날 쳐다보다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변백현..."

"....대답이나 해주세요"
"으음...그렇지 뭐 꽤나 친해"

 

당연히 안친하다고 말할줄알았는데 친하다고 대답하는 선생님을 보며 나는 표정을 굳혔다. 뭐요? 친하다고? 나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담임은 뭐가 웃긴건지 계속 웃고있었다. 오호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아~ 나도 옆집형이랑 엄청 친한데"

"...뭐?"

"옆집형이요~ 서울대생이여서... 나 고3때 많이 가르쳐주고했는데...보고싶다"

"뭐라는거야 변백현"

"저 형이 저번에 나한테 좀 이상한 말 하긴했는데...막...뭐랬더라, 백현이 너는 입술이 참 이쁘다고 했었나..."

"변백현!"

 

소리를 지르는 선생님에 나는 놀랜 척 눈을 멀뚱멀뚱뜨고 쳐다봤다. 왜요? 왜 화를 내는거지? 아까의 선생님같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선생님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게 보였다. 그러게 누가 먼저 건드리래. 마음속으로 메롱을 백번정도 더한 나는 티비에 시선을 돌려버렸다. 사실, 저런 옆집형은 존재하지않았다. 서울대생은 맞지만 단 한번도 내 과외를 해준적도 없고 말을 해본적도 없었다. 헤헤. 옆에서 괜히 넥타이를 푸르고 와이셔츠를 걷어올리는게 티비액정을 통해서 슬쩍슬쩍 보여왔다. 아 재밌어

 

슬쩍슬쩍 계속 곁눈질로 선생님의 상태를 살피던 나는 어느순간부터 그냥 티비를 보고있었다. 계속 혼자 화를 식히는걸 보는것도 몇번재밌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관심이 떨어졌다. 한참을 멍하니 티비를 보던 나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2015년까지는 20분여밖에 안남은 상태였다.

 

"...변백현"

 

힉! 나는 또한번 하품을 하려다가 갑자기 목에 느껴지는 숨결에 놀래 숨을 들이켰다. 뒤에서 날 껴안은 자세로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선생님에게서 약간 떨어지려고 몸을 움직였지만 선생님은 더욱 세게 날 안아왔다.

 

"선..선생님 왜이러.."
"백현아"

"...."

"선생님이 했던 말 전부 거짓말이야. 선생님 옆집여자랑 하나도 안친해 정말이야"

"...진짜로?"

"진짜로!....백현이 너는 정말 옆집놈이랑 친한거야?"

 

슬쩍 물어오는 선생님이 너무나도 귀엽게 느껴져서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소리를 냈다. 왜 웃어. 뒤에서 날 안고있던 선생님은 날 휙 돌려서 눈을 맞췄다. 변백현 진짜야? 애절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제발 아니라고 말하라는듯한 선생님을 보며 나는 또한번 웃었다. 미치겠다 진짜.

 

"선생님"

"...."

"긴장풀어요"

 

제 옆집형 트럭채로 가져다줘도 선생님한테는 비교도 안되니까.

 

그 말을 끝으로 선생님은 그대로 내게 입을 맞춰왔다. 자연스럽게 팔이 선생님의 목을 감쌌고 내 허리를 감은 담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죽겠다. 살짝 입술이 떨어지고 선생님을 쳐다봤을때 나는 정말 행복해죽을것만 같은 느낌이였다. 몇년째 변함없는 저 눈. 눈만으로도 제게 사랑고백을 하고있는것같아 나는 나도모르게 눈에 입을 맞췄다.

 

"...하...변백현"

"응응."

"불러줘"

"...뭘요?"
"아까 현관밖에서 나에게 불렀던 애칭"

 

애칭? 한참을 선생님에게 눈을 맞추던 나는 선생님의 요구에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다시 내게 입을 쪽하고 맞춰오는 선생님과 함께 기억이 떠올랐다.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까 너무 화가 나서 무작정 지른 말이였는데...내가 얼굴이 붉어진상태로 멈춰서있자 작게 큭큭거린 선생님이 목에 입을 맞추며 다시한번 말했다. 불러줘 백현아

 

"...기야.."

"잘 안들려"

"..ㅈ...기야.."

"안들린다니까"

"...자기야!"

 

두 눈 꼭 감고 말하자 선생님의 행동이 뚝하고 멈춰버렸다. 왜그러지? 슬쩍 눈을 떠서 선생님을 쳐다보자 나만 뚫어지게 쳐다보고있는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왜...왜그래요...내가 우물쭈물거리며 붉어진 얼굴을 가리기위해 손을 올리자 선생님이 그런 내손을 잡고 아래로 끌어내렸다.

 

"백현아"

"으..왜요..."

"내가 진짜 사랑해"

 

사랑해 백현아. 그 말과 함께 선생님이 다시 입을 맞췄다. 쪽. 금새 떨어진 입술에 혀로 입술을 쓴 나는 날 쳐다보는 선생님을 올곧이 쳐다보며 말햇다.

 

"나도"

"...."

"나도 사랑해요 자기야"

 

 

보신각종소리가 거실 가득히 울려퍼졌다. 나의 10대의 끝자락속에 20대의 처음에 그대가 있어줘서 고마워요. 내 사랑하는 선생님. 나의 김종인.

 

 

fin.